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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재미있는 경제 동화
톰 브라운 지음, 조영희 옮김, 팽성일 각색, 손영기 감수 / 명진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그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졌다. 그가 손가락을 딱 튕기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소리, 움직임, 냄새까지도 죽어버린다. ‘희소성의 원칙’ 때문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그의 제의가 달갑지 않다. 그와 밥을 먹음으로써 치러야 하는 시간의 비용이 아깝기 때문이다. 내일이 시험인데! 하지만 그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졌고 세상이 멈춘 동안 그들은 여유있는 점심을 즐긴 후 음식점을 빠져 나온다. 그야말로 공짜 점심이었던 셈,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가방을 음식점에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벌써 버스를 타고 사라져버린 뒤였고, 그녀는 음식값 떼먹고 뺑소니 친 부도덕한 시민이 되어 주인 아저씨에게 일장 훈계를 들으며 음식값을 치룬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라고.
‘대한상공회의소 하이경제’에는 키득거림이 살고 있다. 딱딱한 경제 용어와 개념을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문장으로 말랑하게 녹여놓는 사람이 있다. 그는 경제에 ‘경’자만 들어도 머리에 쥐들이 오락가락하는 나 같은 사람조차 ‘헤이, 경제 그거 별 거 아닌데?’라며 건방지게 다리를 떨 수 있게 만든다. 그런 그가 10대를 위한 <재미있는 경제동화>를 내놓았다. 톰 브라운이라는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의 글을 각색한 것이기는 하지만 읽다보면 팽성일이란 남자의 능글맞은 유머와 딱딱 마주친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잭, 럼플십스킨 등 모르면 외계인일 동화 속 주인공들을 데려다 현재를 살게 한다. 그들의 구차한 삶에 구원이 되는 것은 당연히 백마 탄 왕자도, 유리구두도, 하늘에서 떨어진 우연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 경제 원리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고, 그것에 입각한 균형 잡힌 시각과 현실에 응용하는 부단한 노력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했다. 준비물을 사야 한다거나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손바닥에 동전이나 지폐가 떨어졌다. 땅거미가 가무룩해질 때까지 골목을 누비다 보면 언제나 손바닥이 텅 비곤 했다. 부모님이 어떻게 돈을 벌고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현실 경제에서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발생하는 기회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수입은 곧 지출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느냐고? 말해 뭐해, 생각하기도 싫다.
기존의 경제 관련 서적들이 돈 버는 것이나 자산 관리, 금융 지식에 치우쳐 있는 반면 이 책은 청소년들이 경제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치관 입장에서 접근한다. 앞서도 말했듯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 원리와 그것의 장단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시장경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너무 재미있다. 백설공주와 반지원정대가 만나고 럼플십스킨과 치타가 만나고 돼지 세 자매와 지킬하이드씨가 만난다. 게다가 그 깜찍한 문장들이라니! 7편의 동화와 각각의 동화에서 ‘배우는 경제 지식’을 팁으로 하나의 챕터가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10대를 위해 정말 좋은 책이 나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