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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정원 ㅣ Jimmy Fantasy 1
지미 지음, 백은영 옮김 / 샘터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비 온다. 커다란 빛이 몇 개인가 지나갔고 그 뒤를 빠르게 따라온 굉음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머리맡에 떨어졌다. 친구에게 몸도 마음도 젖지 말라고 당부한 뒤 발코니를 서성였다. 푸른 빛이 또 한번 세상을 가르고 뒤이어 묵직한 탁음이 머리를 흔들었다.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픈가 물으면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힘겨움은 이제 낯익은 소문이다. 너무도 익숙한 소식이므로 사람들은 더 이상 타인의 고독 따위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흔하다고 해서 슬픔과 절망 따위의 부박한 감정들이 제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숨통을 조일 채비를 하고 검은 날개를 편 채 공중을 상회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 외면당할까봐 지레 겁먹고 안으로 안으로 숨어들지만 어느 때보다도 마음 토닥여주는 손길을 필요로 한다.
《내 마음의 정원》, 시가 있는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그림이 있는 독백이라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 축제 때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시화전’이었다. 난 멋들어지게 시를 쓰고 황홀하게 밑그림을 그려놓고도 번번이 색을 입히는 것에 서툴러 작품을 망치곤 했다. 시가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이 엉망이면 묻히게 마련이다. 반대로 그림이 멋져도 시가 부족하면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미의 글과 그림은 천칭의 수평을 가능케 한다. 그림도, 글도 무척이나 따뜻하다. 우리가 수없이 지나치는, 그러나 조곤조곤 짚어보면 꽤나 달착지근하고, 또한 씁쓸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어느 해 봄 혈액암에 걸렸다가 몇 년 후 다시 봄이 왔을 때 그것이 흔적을 감추는,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이라서일까.
지미는 집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끊겨 절망적인 순간에도, 하늘에 떠 있는 달과 아직 내 안에 있는 상상력과 그곳에 있는 천사들에 안도하며 절망을 신나는 모험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행복한 순간에 느끼게 되는 불안이며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의심 때문에 서서히 얼어붙는 우정, 꼭 필요한 순간이면 벽으로 나타는 자동응답기 등을 통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쓸쓸함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한쪽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또 다른 눈으로 지미의 글을 읽으며 한없이 나른해졌다가 짧은 순간 미소를 짓기도 하고 평범한 문장 뒤에 숨어있는 깊이있는 사색에 감탄하기도 한다. 색감은 풍부하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고 그림 속의 지미는 무척이나 친근하다. 가끔 동굴에 갇힌 듯 답답해 큰숨 내쉬며 쉬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미의 우화 속에서 잠시나마 유년을 돌아보며 미소지을 수 있으니 좋고, 사람이 위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나 이 작은 책에서, 잠깐의 휴식과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비 온다. ‘내 마음의 정원’이 소리도 없이 파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