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브레이크가 고장난 현대 한국사회

 

                       - 아전인수(我田引水)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저자 강준만은 회색이다. 회색은 흑과 백의 경계다. 흑백의 이분법이 난무하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기우뚱거리는 세상에서 회색은 기회주의로 낙인 찍힌다. 회색은 검지도 희지도 않은 경계에 서서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쉽게 판정 내리려는 사람들은 회색을 손가락질하며 회색이 가리키는 달은 보려 하지 않는다.

    회색의 눈은 사물과 현상이 빚어내는 빛과 그늘을 함께 바라보는 눈이다. 눈으로 바라볼 때만 사물의 거리를 적확하게 측정할 있다. 그래서 흑백으로만 바라보는 외눈은 슬프다. ‘거리두기 실패할 있기에 외눈은 다른 외눈을 만나야만 온전히 바라볼 있는 외눈박이 물고기다.

    저자는 거침없는 실명 비판과 발빠른 현실 비판으로 정평이 있다. 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을 회색의 눈으로 조망하며 한줄 한줄 풀어낸 한국인 코드는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지닌 이중성, 한국인의 얼굴을 부끄러워 하거나 자랑스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국인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뿐이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한국적 사회과학대중적 한국문화론 바로 회색의 눈으로 바라보며 추구하는 세계다. 그동안 한국 학계는 서구 이론을 직수입하여 억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여 제대로된 한국 사회 분석에 실패하였다. 한국문화를 살피려면 모름지기 학술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잘못된 학술성 편견은 대중을 위한 한국문화론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그는이론적 뼈대학술성 몰두하는 질적 연구보다는 대중적 한국 · 한국인 탐구를 선택했다.

    한국인,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때론 내가 아는 나보다 남이 아는 내가 오히려 정확할 때도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한발짝 물러서 들여다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처럼 한발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려는 노력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세대 남짓한 일제 식민 지배와 동족간 비극의 상흔으로 남은 6·25 전쟁, 그리고 독재와 압축 근대화. 지난 20세기는 숨막힐 듯한 시련과 고난으로 고를 여유마저 빼앗긴 한국인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고간 역사였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은 가족 단위로 목숨을 연명할 처세술을 발휘해야만 했다. 주체 못할 속력으로 달려온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볼 겨를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골로 가는생활, ‘곪아 터질 때까지내버려 두는 삶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성찰과 반성 계기를 마련하고자 저자는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국 ·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을 이상 방치할 없었기에 대중과 대화를 시도했다.

    자신에겐 없이 관대하면서도 타인에게 잔인하리만큼 엄격한 한국인의 이중잣대. 잣대는 나와 남의 경계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지난 세기 동안 수차례 다가온 역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특권층은 무책임한 행태로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국 서민층에겐 오로지 줄대기와 눈치만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권한과 권리는 책임과 의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탐욕스럽고 뻔뻔하게 권한과 권리를 누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그러다 보니 엄중한 책임 규명도 없이 사회 갈등을 쉽게 덮어버렸다마치 세월이 약이라는 망각을 관용이라 착각하며 잊히길 바랄 뿐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브레이크가 얼마나 소중한 장치인지 잊을 때가 있다. 굽은 길에 들어서기 전에는 속력을 늦춰야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길을 달릴 있다. 혹시라도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 굽은 길에서 한참을 벗어나 생명의 갈림길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공적 영역에서 냉소적이고 불신이 가득하며 소극적인데 비해 사적 영역에서는 정열적이고 신뢰감이 충만하며 적극성을 띠는 한국인. 단기적으로 때는 극단을 치닫는 보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중용을 지키려는 한국인. 정치적으로는 진보성을 지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한국인. 역동적이면서 조급한 한국인잠시나마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못한 , 앞만 보며 내달린 한국인은 불나방과 같다.

    지나친 희망도 때이른 푸념도 생각조차 못할 상황에 처한 한국인. 희망을 심어줄 정치마저 혐오의 나락으로 떨어진 지금, 우리가 그린 자화상에 웃음소리가 한아름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가 강조하는혈구지도(絜矩之道)’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실증과 솔직과 성실의 자세로, 자신보다 남에게 관대하고 남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성찰의 자세로행복을 즐기는 한국인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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