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가 다섯 살 때였을 거예요.
사다리 연극 놀이에서 노숙자, 거지, 부랑자, 뭐 그런 주제로 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노숙자의 개념을-물론 그 단어를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더라도-비교적
제대로 알고 있었대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신호대기로 버스가 잠시 멈췄을 때였죠.
그 때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길바닥에 앉아있는 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이 때다!'
지금이야말로 '노숙자'라는 단어를 알려 줄 수 있는 가르칠만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아저씨는 어떤 사람이지?"
길고 덥수룩한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는 그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의 후즐그레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아이에게는 그 남자의 입에서 용가리처럼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먼저 보였나 봅니다.
나는 그날,
노숙자라는 말을 가르치지 못했죠.

2.
길을 가는데 어떤 아빠가 아들을 심하게 야단치는 장면을 아이와 나는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애를 키우다 보면,
교양이고 나발이고 다 없어질 때가 부지기수지만,
내가 애한테 쏟아부을 때는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다른 부모가 이성을 잃고 자기 자식을 대하는 것을 볼
때면,
'어머, 저 엄마 너무 무식하다.'라고 말해 버리곤 합니다.
어쨌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들고 제 아들의 면상을 내리치려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제게는
몰상식,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현우에게 물었죠.
"저 아빠 너무 나쁘다. 니 생각은 어때?"
"나도 저 아빠가 나쁘다고 생각해."
간만에 아이가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 줘 내심 흡족해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저 아빠가 왜 나쁘다고 생각해?"
"봐봐. 저 아빠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잖아. 애하고 얘기할 때 저렇게 담배를 들고 있으면,
애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지거든. 근데, 애들은 담배 피우면 안 되잖아."
3.
아이와 길을 가다 보면,
담배 피우는 어른과 청소년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팔 아래로 담배를 내리면,
불이 붙어 있고 연기를 내뿜는 담배는 딱 우리 아이들 얼굴 쪽으로 내려 옵니다.
그런 섬뜩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지요.
아이들에게 금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준다면,
나라면,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써 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게 되는 것이니까요.
4.
아이들을 대상으로 출판한 금연 관련 동화를 읽어 보았습니다.
꽤 유명한 아동문학가가 쓴 글이라는데,
저는 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금.연.하.자!"고 목청껏 외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담배 피우는 거리의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해 줘야 하는지,
그 싸가지 없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온 담배꽁초를 생각하며 써 줘야 한다고 봅니다.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목적성이 강한 글은
아이들에게 역효과를 줍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문제를 이해하기 전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무장했을 때,
우리 어른들은 최고로 유치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유치 찬란한 책들이 담배 연기처럼 퍼져 있습니다.
담배 연기로부터, 담배 연기와 같은 책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