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여자친구가 우리집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보고나서 (나는 보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와 섹스, 섹스에서 하루키로 이어지는 일종의 '하루키론'을 내게 설파한 적이 있다. 그녀는 대부분의 전업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키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은데, 그녀가 여태껏 읽은 하루키 책이 상실의 시대 뿐이었음에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1Q84를 기점으로한 <전향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상실의 시대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근 10년만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내가 처음 책을 훑어서 확인한 것은,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대화 부분이었다. 과거에 한 친구(저~ 아래에 있는 페이퍼에 썼던, 우연히 알게된 메일친구)가 보내준 이 책의 짧은 대화에선 서로가 반말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책이 잘 못 된것이 아니냐고 물었었다. 알고보니 판본에 따라 존댓말 여부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었는데. 그녀의 것이 더 최신.


생각해보면 둘은 같은 학년에다 나오코가 더 생일도 빠른데, 왜 그녀가 와타나베에게 말을 높이도록 번역을 했을까? 물론 연상인 여자친구가 나에게 말을 높을 때도 있고, 나는 반말로 답할때도 있지만 이건 아예 다른 이야기이고.. 미도리가 자주 하는 대사처럼 번역자 유유정씨가 파시스트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그럴리는 없고... 원문의 일본어에 그런 느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나의 기억과 일치하는 옛날의 상실의 시대.


다시 보고나니, 그동안의 내 기억이 이 책을 상당히 담백하게 받아들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앞뒤를 바꿔서 기억하는 것이 많았고, <쿨>함이 문제가 되는 소설이었지만 나는 더 쿨하게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코를 10년전 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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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1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에디님은 변함없이 상실의 시대가 좋다는 뜻인가요?

전 처음 읽었을 때는 대학생이었는데, 그때는 상실의 시대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들을 좋아했고 [위대한 개츠비]도 사서 읽게 되었지만 말예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는 어려서 읽은것보다 더 좋았어요.

음,
전 아무리 생각해도, 음, 하루키가 좋아요.

에디 2011-04-11 12:18   좋아요 0 | URL
네. 여전히 좋아요. 저도 생각할 것도 없이 하루키가 좋아요 : )

치니 2011-04-1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일어 원문 자체가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존대하게 되어 있다면,
하루키가 무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겠다, 싶네요. 음, 궁금하네 그 의도가 뭔지.
<상실의 시대>는 오래 전에 읽어서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는 라디오헤드의 조니가 음악을 맡았다기에 급 관심이 올랐는데 본 사람 말이, 별로래요. 히잉.

저는 하루키가 좋다기보다, 하루키를 작가로 인정해요. 그만큼 잘 쓰는 사람도 드물다,에 한표.

에디 2011-04-12 20:10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렇다면 굳이 다음판(쇄?)에서 다시 반말로 바꾼 이유는 뭘까요?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하루키 작품들은 반말을 하는 주인공과 존댓말을 하는 여자가 익숙한 것 같아요. 실제로 상실의 시대처럼 나이가 명확한 작품이 거의 없지만...

버벌 2011-04-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하게 하루키가 좋아지지가 않더군요. 그의 책을 많이는 아니어도 몇 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좀처럼 손이 나가질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상실의시대" 조차도 읽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읽고 싶다기 보다. 아 상실의 시대가 다른 이에게는 이렇게 읽히는구나. 라는 생각뿐입니다. 왜 그러지?

에디 2011-04-12 20:30   좋아요 0 | URL
제가 본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은 뭐랄까 각자 싫어하는 이유를 대기도 했지만 가장 상업적인 영향력이 큰 작가 (게다가 작가 본인은 그것이 탐탁치 않고, 조앤 롤링이나 스티븐 킹처럼 <장르소설> 이란 낙인을 찍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라는데 거부감을 좀 가지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런 이유는 아니실까요? : )

물론 전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ㅋ


버벌 2011-04-13 21:4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장르 소설 너무 좋아합니다. 스티븐 킹을 정말 좋아하죠. 하루키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제가 재미가 없었어요. 그게 다에요. ^^ 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구서 좋아한다 싫어한다 판단을 하는것도 이상하네요. ^^ 읽어보고 다시 말해드릴게요.. 좀 노력이 필요한데. ㅠㅠ

루쉰P 2011-04-1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아하는 작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한 번 책을 들었을 때 쉬지 않고 읽을 수 있느냐라는 점인데 그 점에서는 하루키 책은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을 잘 하지는 못 했지만 말이죠. ㅋㅋㅋ

후루야 미노루와 하루키로 이어지는 에디님과의 이 호흡...뭐랄까? 평행이론이 시작되네요. <상실의 시대>부터 시작해 하루키의 책은 모두 읽어 왔어요. 글 쓰는 그의 태도는 가히 감탄할 만 합니다. 내용의 평가는 둘째치고 그의 글에 대한 태도는 존경합니다. ^^ 그리고 전 하루키 책 좋아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