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여자친구가 우리집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보고나서 (나는 보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와 섹스, 섹스에서 하루키로 이어지는 일종의 '하루키론'을 내게 설파한 적이 있다. 그녀는 대부분의 전업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키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은데, 그녀가 여태껏 읽은 하루키 책이 상실의 시대 뿐이었음에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1Q84를 기점으로한 <전향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상실의 시대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근 10년만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내가 처음 책을 훑어서 확인한 것은,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대화 부분이었다. 과거에 한 친구(저~ 아래에 있는 페이퍼에 썼던, 우연히 알게된 메일친구)가 보내준 이 책의 짧은 대화에선 서로가 반말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책이 잘 못 된것이 아니냐고 물었었다. 알고보니 판본에 따라 존댓말 여부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었는데. 그녀의 것이 더 최신.
생각해보면 둘은 같은 학년에다 나오코가 더 생일도 빠른데, 왜 그녀가 와타나베에게 말을 높이도록 번역을 했을까? 물론 연상인 여자친구가 나에게 말을 높을 때도 있고, 나는 반말로 답할때도 있지만 이건 아예 다른 이야기이고.. 미도리가 자주 하는 대사처럼 번역자 유유정씨가 파시스트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그럴리는 없고... 원문의 일본어에 그런 느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나의 기억과 일치하는 옛날의 상실의 시대.
다시 보고나니, 그동안의 내 기억이 이 책을 상당히 담백하게 받아들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앞뒤를 바꿔서 기억하는 것이 많았고, <쿨>함이 문제가 되는 소설이었지만 나는 더 쿨하게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코를 10년전 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