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3일(목)-15일(토) 오후 3시 30분에 대잠 그린파크에서 3일 클럽 전도를 하다. 나예원(8살) 어린이가 출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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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4:12 진영 바깥에서 사르되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 어른이 사망을 진단했습니다. 코 밑에 솜을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곡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의사가 사망을 진단합니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박동(맥박)이 멈추면 심전계(심장박동에 의해 생겨나는 전류를 그래프로 그리는 기계)가 0으로 떨어질 때 사망진단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있고 죽어있고는 얼굴이 예쁜가 미운가가 아니고 심장이 뛰고 있느냐 멈춰 있느냐가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심장은 어디일까요?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성경의 심장이기 때문에 레위기를 알면 성경을 아는 거고 레위기를 모르면 성경을 모르는 겁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날로 속죄제입니다. 속죄제는 실수로 죄를 저질렀을 때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는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고,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고, 화목제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나머지를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제물의 종류(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나 고운가루)에 관심을 가졌다면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의 신분(대제사장이나 장로나 족장이나 평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바쳐야할 제물이 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같은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누구의 죄가 더 클까요? 제가 지은 죄가 더 심각합니다. 3절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 13절의 ‘이스라엘 온 회중’은 국가나 도시의 지도자인 장로를 가리킵니다.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레4:3,13) 짐승 중에서 가장 비싼 수송아지로 드렸습니다. 제사장이나 장로는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키고 그 수송아지를 잡아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그 피를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찍어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렸습니다. 그리고 성소의 분향단 뿐들에 그 피를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혹시 어느 쪽부터 쏟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북쪽에서부터 쏟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북쪽을 죄의 근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북쪽, 서쪽, 남쪽, 동쪽 순으로 쏟았습니다. 그리고 내장에 붙은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기름과 피는 하나님이 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번제는 번제단에서 불태웠고 화목제는 나누어 먹었지만 속죄제는 이스라엘 진영 바깥 재 버리는 동쪽에서 불살랐습니다.(레4:12) 번제는 번제단에서 불살랐는데 속죄제는 진영 바깥에서 불살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속담에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도 속을 썩어서 선생님하기가 어렵다는 속담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는 선생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는데 성경에서는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어 바친 제물은 아무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막 안에 있는 번제단이 아니라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습니다. 그만큼 제사장이나 장로가 지은 죄는 중차대하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백성에게도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해야 하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으니 누가 죄를 사해줄 수 있겠습니까?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지휘관을 먼저 쓰러뜨려야 부하들이 우왕좌왕 합니다. 사탄은 저격수가 지휘관을 노리듯이 목사를 쓰러뜨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를 노리지만 가정에서는 가장을 노립니다. 마귀는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아다니듯이 가장을 유혹해서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접대문화를 개선해야 하는데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60명 중에 1명꼴로 유흥업소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고 된 숫자가 그러니 신고 되지 않은 숫자를 합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돈을 쉽게 벌려고 죄를 조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자나 깨나 몸가짐을 반듯하게 해야 합니다. 잠깐 방심하면 엄청난 후유증이 따릅니다. 마귀의 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족장이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숫염소를 드렸고, 평민이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레4:23,28) 요즘은 암컷이 비싸지만 구약시대에는 수컷이 비쌌습니다. 족장은 부족의 지도자인데 족장이 지은 죄는 평민이 지은 죄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권사님이 지은 죄는 집사님이 지은 죄보다 무겁다는 말씀입니다. 족장이나 평민은 그 숫염소와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고 그 숫염소와 암염소를 잡아 그 피를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뿐들에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내장에 붙은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제사장이나 장로가 바친 속죄제물은 중차대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 바깥 재 버리는 동쪽에서 불살랐는데(레4:11-12) 족장이나 평민이 바친 속죄제물은 제사장이 성막 뜰에서 먹었습니다.(레6:26) 족장이나 평민이 지은 죄는 제사장이나 장로가 지은 죄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웠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포청천을 보면 사형을 시킬 때 귀족은 용작두로 죽이고 평민은 개작두로 죽였는데 성경에서는 제사장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중차대하기 때문에 더 거룩한 지성소의 휘장에 피를 뿌리고 분향단 뿔에 피를 바르고 나머지를 번제단에 쏟았으나 족장이나 평민이 죄를 지으면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를 번제단 주변에 쏟았습니다. 목사나 장로는 직분이 무거운 만큼 언행도 권사나 집사보다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속죄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고,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고, 화목제는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였습니다. 속죄제는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회복시킨 예수님이 바로 속죄제이십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몫인 기름을 번제단에서 불태웠고 피를 번제단에다 쏟았고 나머지는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3장 12절을 통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죄제물이 진영 바깥에서 불태워졌듯이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성 바깥으로 가져나가 완전히 없애셨습니다. 속죄제가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며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를 보며 살았는데 아들은 글공부는 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르고 타일렀지만 아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회초리로 때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자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 부치고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종아리가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어머니를 말렸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으니 맞아도 싸다며 회초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종아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아들은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타일렀듯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이르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듯이 하나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속죄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피를 보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빌었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흘린 피로 인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살렸듯이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는 우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씻으셨는데 우리가 죄를 저질러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하나님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깨끗이 세차를 했는데 누가 더럽힌다면 화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와를 회복시키셨는데 우리가 또 다시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우리와를 단절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회복시키셨으니 우리는 죄를 멀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시켜야 합니다. 제임스 패커 교수는 거룩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다고 말했습니다.(거룩의 재발견) 우리가 죄를 멀리하려면 신앙적으로도 깨끗해야 하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해야 합니다. 몸도 깨끗해야 하고 영혼도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집니다. 우리 올 한해는 신앙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깨끗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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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일(주일) 최훈석 어린이가 동생인 최정원 어린이를 교회로 인도하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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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3:17 기름과 피를 사를지니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요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는 예수님의 머리이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발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는 어디일까요? 레위기는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얼굴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심장이 멈춰 있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성형하기가 어렵더라도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심장은 살아 있고 죽어 있고를 가릅니다. 레위기는 심장이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심장인 레위기를 안다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날로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다면,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만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도 드리고 제사장에게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면 공동식사를 하는데 화목제는 애찬의 기원이었습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할머니 권사님들에게 어떤 제사가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화목제가 좋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 금천교인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시고 고향정 보리밥 뷔페에서 식사를 하셨는데 음식을 드시고도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는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화목제는 제물의 피를 흘려 죄를 용서받는 엄숙한 제사이자 제물을 나누어 먹는 즐거운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드렸습니다.(레3:3-5,9-11,14-16) 우리나라는 내장으로 내장탕을 끓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장에 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식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고,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3: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기름과 피를 먹지 말고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오봉달 장로님이 쓰신 [성경이 말하는 건강 상식]을 보니 동물은 죽음을 예견하면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독소를 피에 남긴다고 합니다. 살에는 남지 않고 피에만 남는데 그 독소가 아드레날린입니다. 피에는 독소가 남아있으니 몸에 해롭습니다. 선지해장국에도 독소가 남아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인병은 콜레스테롤과 관련이 있는데 내장에 붙은 기름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데 60세 이상이 되면 60%가 보청기를 끼고 백내장에 걸리고 고혈압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기 위해 내장에 붙은 기름은 하나님께 불태워서 드리고 피는 죄를 씻기 위해 번제단 주변에 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는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주었습니다.(레7:30-34)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닭 가슴살을 먹잖아요. 가슴살에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근육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도 뒷다리 살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담백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가슴은 짐승의 중심이니 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가슴살을 주듯이 목사님에게 마음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싫어하면 말씀이 시빗거리로 들립니다. 자신을 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좋아하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립니다. 말씀에 은혜 받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멈춰버리듯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주십시오./ 뒷다리는 가장 강한 신체부위로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뒷다리를 주듯이 목사님에게 힘을 실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 눈치를 보면 소신 있게 목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면 이도 저도 못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하고 추진하는 일에는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나머지 부위를 먹었습니다.(레7:15-18) 화목제는 하나님께는 조금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어느 정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로 드린 고기를 당일에 먹었습니다. 남으면 불태웠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이 예배에 있지 식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지 애찬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천집사님이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오셔도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나서 육신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화목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다면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이가 갈라졌을 때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화목제는 고기를 나누어 먹는 제사다 보니 먹을 것이 없는 비둘기는 드리지 않고 소와 양과 염소를 드렸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나 암컷을 모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위해서도 여자를 위해서도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얼마 전에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개통됐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전쟁터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고지를 지키려는 아군과 고지를 빼앗으려는 적군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적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아군의 전선이 끊어졌습니다. 적군은 쳐들어오는데 무전기를 연결하는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본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나섰습니다. 병사는 전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포탄을 맞아 땅이 움푹 폐였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잡아 당겼지만 길이가 짧았습니다. 병사는 누워서 두발로 한쪽 전선을 잡았고 두 손으로 다른 쪽 전선을 잡았습니다. 전기가 통했습니다. 병사는 몸이 저렸지만 전선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지에 있는 아군은 포격지원을 요청했고 본부에서는 포격지원뿐만 아니라 지원군까지 보내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병사를 찾아 나섰는데 병사는 전기에 감전돼 새까맣게 타있었습니다. 병사가 죽었기 때문에 고지에 있던 아군이 살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포탄에 전선이 끊어졌듯이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고 감전되어 죽었듯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사는 예수님처럼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은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1장 20절을 통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화해자시니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화해자가 돼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이 집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옮겨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이간질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간질 집사는 없고 이연지 집사가 있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 집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마음이 상했을 때 두 사람을 풀어주는 화해자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화해자 집사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피이스 메이커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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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8-16 하나님 제일주의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2004년 5월 13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만 15세 이상 남녀 1,728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를 조사했습니다. 좋아하는 인물분야에서 전, 현직 대통령 중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정치인 중에서는 박근혜 대표를, 기업인 중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소설가 중에서는 이문열 선생을, 가수 중에서는 이미자 씨를, 영화배우 중에서는 안성기 씨를, 탤런트 중에서는 최불암 선생을, 코미디언 중에서는 고 이주일 선생을, 스포츠 선수 중에서는 이승엽 선수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자연분야에서는 꽃은 장미를, 나무는 소나무를, 산은 설악산을, 계절은 가을을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음식분야에서는 한국음식 중에서는 된장찌개를, 중국음식 중에서는 자장면을, 생선 중에서는 고등어를, 음료 중에서는 커피를, 술중에서는 소주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취미와 문화 분야에서는 취미 중에서는 등산을, 운동 중에서는 축구를, 노래 중에서는 노사연의 만남을, 한국영화 중에서 인상 깊게 본 연화는 실미도를, 외국영화 중에서는 반지의 제왕을, 옷 색깔 중에서는 검은색을, 직업 중에서는 공무원을, 국가 중에서는 미국을, 도시 중에서는 파리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천 대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20: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긴 사람에게는 삼사 대까지 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출20:5)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 아합이었습니다. 아합 왕은 총각 때는 하나님을 섬겼으나 결혼하면서부터 우상을 섬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시돈 왕국과 동맹을 맺고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시돈 왕국의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돈 왕국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전쟁이 없이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는 교역을 통하여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세벨과 결혼하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세벨을 위하여 바알 신전을 짓고 신전 안에 바알 제단을 쌓고 바알의 아내인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습니다. 아합 왕은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이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뭄을 주셨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5장 17절을 통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가뭄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자 논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밭작물이 누렇게 타들어 갔습니다. 먹을 물이 없어 소방차에서 물을 실어 오면 물지게를 지고 날랐습니다. 우리나라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지만 사막인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사람과 짐승이 굶어 죽게 됩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이슬이라도 내린다면 농작물이 살아남을 수 있으나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내리지 않았다면 견뎌볼 수 있으나 몇 년이라 살아남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습니다. 봄철이면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도 땅이 황폐화되어 모래가 돼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거잖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황폐화 되었습니까? 아합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 시절에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오늘날은 시간과 물질이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고 물질에 얽매입니다. 하나님은 아합 왕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자 가뭄을 주셨듯이 우리들이 시간과 물질을 섬긴다면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뭄을 내려서 아합 왕을 굴복시키셨듯이 우리들에게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돈 왕국의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 왕에게 기근을 선포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 시냇가로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듯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을 보내셔서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엘리야 선지자를 시돈 왕국에 있는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시돈 왕국으로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돈 왕국은 북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물들게 한 이세벨 왕비의 고향이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은 우상을 없애기 위해서 엘리야 선지자를 우상 숭배의 본고장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르밧에 사는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음식을 제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과부에게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습니다. 이삭을 주워서 먹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에게 복을 주시려고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과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복을 받을 수도 있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도착해 보니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과부는 가난에 쪄들어 몰골이 형편없었습니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의복은 갈기갈기 헤어졌습니다. 엘리야 선지가 과부를 불렀습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왕상17:10b) 엘리야 선지자는 물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과부는 아무 말 없이 물을 뜨러갔습니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 물도 귀했으나 과부는 형편은 어려워도 인심은 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한 술 더 떴습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17:11b) 엘리야 선지자는 밥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과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 과부는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대담하게 요구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17:13-14) 엘리야 선지자는 마지막 식사를 자신에게 먼저 가져오고 과부와 아들은 나중에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가뭄이 끝날 때가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벼룩의 간을 먹는다.’ 는 속담처럼 가난한 과부의 마지막 식사를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자신과 아들이 먹을 것이냐? 하나님의 선지자를 줄 것이냐? 를 놓고 망설였습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지막 식사를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었습니다. 과부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나뭇가지를 지펴서 부침개 같고 피자 같은 얇고 둥근 빵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하나님께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처럼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과부에게 있어 가루와 기름은 가장 귀중했습니다. 과부는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섬겼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과 물질이 가장 귀중합니다. 우리가 시간이 가장 귀중할 때 너무 바빠서 교회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주일에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물질이 가장 귀중할 때 너무 쪼들려서 헌금을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서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십니다.

미국에 록펠러라는 전설적인 부자가 있었습니다. 록펠러를 악덕 기업주라고 비나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록펠러의 신앙은 역할모델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록펠러는 대학교를 12개나 세웠는데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시카고 대학교가 록펠러가 세운 대학교입니다. 록펠러는 교회도 4,928개나 지었습니다. 록펠러는 아내가 86세에 세상을 떠나자 시카고 대학교 내에 아내를 기념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봉헌식에 참석한 시카고 트리뷴지의 경제부 기자가 록펠러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록펠러 씨, 당신은 26년 동안 세계 제일의 부자인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록펠러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게 어떤 유산입니까?” “내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은 내게 십일조를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부모님께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없으나 신앙은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그게 첫 번째 비결입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을 40명이나 두었다고 합니다. 기자는 비교인이라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사업을 하여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를 해도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십일조를 하고도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다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비교인들은 월급을 전부 저축해도 돈이 모자라다고 하지만 교인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저축해야 돈이 쌓이게 됩니다. 록펠러가 말했습니다. “두 번째 비결은 교회의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록펠러는 주일 성수는 기본이고 교회의 앞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이 800명 정도인데 구경꾼들이 800명 정도 몰려들어 1,600명 정도가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앞자리에 앉기 위해 예배시간 40분전에 도착하였고 구경꾼들은 늦게 왔기 때문에 록펠러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뒤통수를 보았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92세에 하늘나라로 갈 때 까지 앞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비결은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록펠러는 교회에서 하는 일은 찬성하였고 목사님의 속을 썩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게 록펠러가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초가 되면 덕담을 나눕니다. 요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인사가 ‘부자 되세요.’입니다. 우리나라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에 빠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제일로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나중으로 밀쳐놓은 아합 왕은 가뭄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제일로 여긴 사르밧 과부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우리 창대교회 교인들도 새해에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제일로 섬겨 과부처럼 기적을 체험하고, 록펠러처럼 전설적인 부자가 탄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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