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3:17 기름과 피를 사를지니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요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는 예수님의 머리이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발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는 어디일까요? 레위기는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얼굴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심장이 멈춰 있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성형하기가 어렵더라도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심장은 살아 있고 죽어 있고를 가릅니다. 레위기는 심장이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심장인 레위기를 안다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날로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다면,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만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도 드리고 제사장에게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면 공동식사를 하는데 화목제는 애찬의 기원이었습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할머니 권사님들에게 어떤 제사가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화목제가 좋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 금천교인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시고 고향정 보리밥 뷔페에서 식사를 하셨는데 음식을 드시고도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는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화목제는 제물의 피를 흘려 죄를 용서받는 엄숙한 제사이자 제물을 나누어 먹는 즐거운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드렸습니다.(레3:3-5,9-11,14-16) 우리나라는 내장으로 내장탕을 끓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장에 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식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고,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3: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기름과 피를 먹지 말고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오봉달 장로님이 쓰신 [성경이 말하는 건강 상식]을 보니 동물은 죽음을 예견하면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독소를 피에 남긴다고 합니다. 살에는 남지 않고 피에만 남는데 그 독소가 아드레날린입니다. 피에는 독소가 남아있으니 몸에 해롭습니다. 선지해장국에도 독소가 남아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인병은 콜레스테롤과 관련이 있는데 내장에 붙은 기름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데 60세 이상이 되면 60%가 보청기를 끼고 백내장에 걸리고 고혈압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기 위해 내장에 붙은 기름은 하나님께 불태워서 드리고 피는 죄를 씻기 위해 번제단 주변에 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는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주었습니다.(레7:30-34)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닭 가슴살을 먹잖아요. 가슴살에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근육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도 뒷다리 살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담백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가슴은 짐승의 중심이니 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가슴살을 주듯이 목사님에게 마음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싫어하면 말씀이 시빗거리로 들립니다. 자신을 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좋아하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립니다. 말씀에 은혜 받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멈춰버리듯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주십시오./ 뒷다리는 가장 강한 신체부위로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뒷다리를 주듯이 목사님에게 힘을 실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 눈치를 보면 소신 있게 목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면 이도 저도 못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하고 추진하는 일에는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나머지 부위를 먹었습니다.(레7:15-18) 화목제는 하나님께는 조금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어느 정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로 드린 고기를 당일에 먹었습니다. 남으면 불태웠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이 예배에 있지 식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지 애찬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천집사님이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오셔도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나서 육신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화목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다면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이가 갈라졌을 때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화목제는 고기를 나누어 먹는 제사다 보니 먹을 것이 없는 비둘기는 드리지 않고 소와 양과 염소를 드렸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나 암컷을 모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위해서도 여자를 위해서도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얼마 전에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개통됐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전쟁터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고지를 지키려는 아군과 고지를 빼앗으려는 적군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적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아군의 전선이 끊어졌습니다. 적군은 쳐들어오는데 무전기를 연결하는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본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나섰습니다. 병사는 전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포탄을 맞아 땅이 움푹 폐였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잡아 당겼지만 길이가 짧았습니다. 병사는 누워서 두발로 한쪽 전선을 잡았고 두 손으로 다른 쪽 전선을 잡았습니다. 전기가 통했습니다. 병사는 몸이 저렸지만 전선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지에 있는 아군은 포격지원을 요청했고 본부에서는 포격지원뿐만 아니라 지원군까지 보내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병사를 찾아 나섰는데 병사는 전기에 감전돼 새까맣게 타있었습니다. 병사가 죽었기 때문에 고지에 있던 아군이 살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포탄에 전선이 끊어졌듯이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고 감전되어 죽었듯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사는 예수님처럼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은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1장 20절을 통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화해자시니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화해자가 돼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이 집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옮겨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이간질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간질 집사는 없고 이연지 집사가 있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 집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마음이 상했을 때 두 사람을 풀어주는 화해자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화해자 집사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피이스 메이커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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