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23-32 뉘우치고 갔으니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일렀습니다.(28절 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맏아들이 시원스럽게 대답했습니다.(29절 상) “아버지, 가겠나이다.” 맏아들은 연장을 챙겨들고 포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을 대견스러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도 일렀습니다.(30절 상)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둘째 아들이 짜증을 냈습니다.(30절 하) “싫소이다.” 둘째 아들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들이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거역하면 아버지는 엄청난 수치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안타까우셨습니다. 언제 철이 들지 걱정이었습니다.

맏아들이 포도원에 가고 있었습니다. 맏아들 친구들이 원두막에 둘러앉아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맏아들을 보고 말했습니다. “여보게, 어디가나?” “포도원에 일하러 간다네.” 친구들이 제안했습니다. “자네는 허구한 날 소처럼 일만 하는가. 이리 와서 우리와 한 잔 하세나.” “미안하지만 나는 포도원에 가야 한다네.” 친구들이 간청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딱 한 잔만 하게나. 술 한 잔 마시면 일도 더 잘 되지 않는가? 싫으면 말고.” 맏아들이 망설였습니다. “그래, 그럼 딱 한 잔만 할까.” 맏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습니다. 한 잔만 마시려 했으나 술은 마실수록 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이렇게 계속되다 보니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맏아들은 원두막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말해놓고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투망에서 고기를 건지며 신나했지만 둘째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습니다. 자꾸만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요즘 아버지가 부쩍 쇠약해진 것도 같았습니다. 둘째는 도저히 시시덕거릴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자네, 고기를 잡다 말고 어딜 가려고?” “응, 나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친구들은 둘째가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다녀오게나. 우리가 매운탕 맛있게 끓여 노을 테니.” 둘째는 잘못을 쏜살같이 포도원을 향했습니다. 둘째는 포도원에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31절 상)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종교지도자들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31절 중) “둘째 아들이니 이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해놓고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일하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포도원에 갔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맏아들은 말로는 순종하고 행동으로는 불순종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불순종하고 행동으로는 순종했습니다. 두 아들 다 불순종했지만 그나마 둘째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31절 하-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들과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맏아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소문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사자인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해놓고 포도원에 가지 않은 맏아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맏아들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교회에서는 경건한 신앙인인척 위장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끼여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둘째 아들은 세리들과 창녀들을 가리킵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은 율법을 어긴 죄인들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동으로는 죄를 지었으나, 세례자 요한에게 찾아가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이 말씀할 때에 눈물을 흘리며 아멘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포도원에 간 둘째 아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둘째 아들은 새 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 교인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쏙쏙 받아들여 신앙이 날마다 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습관적으로 드리다 보니 신앙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주범은 맏아들을 자처하는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맏아들처럼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해놓고 딴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종교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을 잘 믿는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둘째 아들처럼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가겠습니까? 세리들과 창녀들처럼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입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맏아들처럼 입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뉘우치고 둘째 아들처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다처럼 잘못을 후회하고 자살할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깊이 뉘우치고 다시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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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메시아
월터 C.카이저 지음, 류근상 옮김 / 크리스챤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구약성경신학(구약에서의 메시아)]로 번역하였다가 다시 제목을 [구약에 나타난 메시아]로 바꾸어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돌럭(August Tholuck)처럼 구약에 나타난 예언을 3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직접적인 예언은 구약의 저자가 메시아 시대를 직접보고 독자들도 메시아 예언이라고 인식한 경우이고, 상징적인 예언은 당시에 그 예언이 지시하는 대상과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대상이 서로 다른 경우이고, 인용구는 신약에 인용된 예언이다. 저자는 상징적인 예언은 본문과 함께 그것이 앞으로 이루어질 실체의 모형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인용구는 구약의 본문이 신약에 인용되었기는 하나 구약에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고 신약의 저자들도 이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고, 직접적인 예언을 근거로 메시아적 교리를 세운다. 저자는 예언의 점진성에 초점을 맞추어 시대별로 예언의 발전과정과 상호관련성을 설명한다.

오경에는 여섯 개의 직접적인 예언이 있는데 두 개는 족장시대 이전 것이고(창3:15,9:27), 두 개는 족장시대 것이고(창12:3,49:10), 가장 중요한 나머지 두 개는 모세 시대의 것이다.(민24:17,신18:18) 다윗 왕조 시대에는 세 개의 예언이 있는데 한나(삼상2:1-10), 엘리에게 제사장 직무를 박탈할 것이라 선언한 하나님의 사람(삼상2:27-36), 다윗의 집에 대한 유명한 예언을 한 나단(삼하7장)을 통해서이다. 저자는 스미스(James E. Smith)처럼 메시아적 시를 16개로 분류한다. 메시아에 대한 전반적인 예언은 시편 100편과 2편에서 발견되며, 메시아의 수난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예언은 22편에서 나타나고,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 가장 분명한 언급은 16편에서 언급한다. 메시아적 예언은 16 명의 후기 선지자들을 거치면서 점점 확대된다. 그들은 메시아와 그의 사역에 관한 계시를 근간으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셨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지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부록을 통해 신약에서 성취된 메시아 예언과 구약에서 약속된 65개의 메시아 관련 본문을 제시한다. 성경의 중심주제인 메시아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과 신약에서의 성취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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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0:1-16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요즘 포도 철입니다. 시장에 나가면 포도가 천지네요. 포도는 전 세계 과일 생산량의 3분의 1일 차지한다고 합니다. 과일 가운데 압도적인 1위죠. 포도에는 당분(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들어있어 피로 회복에 좋고, 비타민이 풍부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고 합니다. 포도는 BC 3천년 무렵부터 재배했다고 하는데 성경을 보면 노아가 대홍수가 일어난 이후에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말씀합니다.(창9:20) 포도의 주요 생산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에스파냐인데 이스라엘에서도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포도나무를 많이 언급하는데 포도원을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사용하였고(사5:1-7),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1-11)

예수님은 ‘천국은 포도원에서 일할 품꾼(일꾼)들을 고용하려고 집을 나간 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1절)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6시)에 장터로 나갔습니다. 장터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들과 일손을 구하려는 주인들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인력시장입니다. 주인은 일꾼들과 한 데나리온으로 일당을 합의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일하고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일꾼들이 포도원에 가보니 포도가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일꾼들은 아이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포도를 땄습니다. 햇살은 따갑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습니다. 포도는 익어 가는데 허리를 펴지 않고 작업을 해도 일이 더뎠습니다. 아무래도 일꾼들을 더 데려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주인은 일꾼들을 더 고용하려고 제 삼시(아침 9시)에 장터로 나갔습니다. 일감을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제안했습니다.(4절)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 주인은 일꾼들에게 상당하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꾼들은 일을 늦게 시작했으니 일당을 다 못 받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일꾼들을 더 투입했지만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포도는 시간을 잘 맞추어 따야지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지 늦으면 상품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주인은 제 육시(정오)와 제 구시(오후 3시)에 장터로 나가 일꾼들을 데려왔습니다. 주인은 이들에게도 상당하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2시에 온 일꾼들은 일당의 절반쯤 받겠거니 생각하였고, 오후 3시에 온 일꾼들은 일당의 4분의 1이라도 받아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데 작업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일과가 오후 6시에 끝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습니다. 주인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주인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제 11시(오후 5시)에 장터로 나갔습니다.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빈둥거리는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7절 상)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일꾼들이 푸념했습니다.(7절 중)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 이다.” 주인이 제안했습니다.(7절 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주인은 얼마를 주겠다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꾼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니 일당은 고사하고 상품 가치가 없는 포도라도 얻어다 처자식의 주린 배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었습니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꾼들은 일을 마무리하고 일당을 받으려고 모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일당을 당일에 지급했습니다.(레19:13,신24:14-15) 일꾼들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옷은 소금기가 배여 허옜습니다.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고 다리는 휘청거렸습니다. 그래도 배고프다고 보채는 자식들을 먹일 생각을 하니 참을 만 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 지시했습니다.(8절)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주인은 관리인에게 나중에 온 일꾼들부터 일당을 지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청지기는 오후 5시에 온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없는 포도송이라도 받으면 감지덕지할 판이었는데 온전한 하루치 일당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무언가 착오가 있지 않냐 는 표정을 지었더니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들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주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부리나케 달아났습니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들에게 일당을 주었기 때문에 먼저 온 일꾼들은 은근히 더 받을 걸로 기대했습니다. 청지기는 오후 3시에 온 일꾼들에게도, 12시에 온 일꾼들에게도, 오전 9시에 온 일꾼들에게도 그리고 오전 6시에 온 일꾼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먼저 온 일꾼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12절)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일꾼들은 일감을 준 주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일꾼들은 1시간 일한 사람들과, 3시간 일한 사람들과, 6시간 일한 사람들과, 9시간 일한 사람들과, 12시간 일한 사람들이 똑같이 받을 수는 없다고 항의하였습니다. 이들의 불만이 타당해 보였습니다. 일한 시간이 다른데 일당을 똑같이 주는 것은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인이 이들 중 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13-15절)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한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일꾼들은 거칠게 항의했지만 주인은 차분하게 대꾸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일꾼들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일꾼들이 옳다면 주인이 틀린 것인데 그렇다고 주인이 틀린 것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당은 한 데나리온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약속한 일당을 주었습니다. 하루 근무시간을 채웠든 채우지 못했든 똑같은 일당을 주었습니다. 근무시간을 채운 일꾼들에게는 정당한 일당을 주었고 채우지 못한 일꾼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서 주었습니다. 근무시간을 채우지 못한 일꾼들이 일당을 받았다고 근무시간을 채운 일꾼들이 일당 이상을 받으려는 것은 욕심이었습니다. 주인이 자비를 베풀었다고 일꾼들이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일꾼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일당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일꾼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일꾼들은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은 주인의 호의로 일당을 받았습니다. 포도원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은 서성거릴 뿐이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온 일꾼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도 이방인들입니다. 나중 온 일꾼들입니다. 일당은 이른 아침에 일하러 온 유대인들만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나중에 온 우리들을 불쌍히 보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일당을 받을 만한 아무 자격 아니 구원 받을 자격도 없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우리는 일당을 받을 자격 아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공로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12년 믿었든, 9년 믿었든, 6년 믿었든, 3년 믿었든 그리고 1년 믿었든 똑같은 일당 아니 구원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찍 예수님을 믿었다고 나중에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구원받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주인이 인자하기 때문에 후하게 베푸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12살짜리, 9살짜리, 6살짜리, 3살짜리, 1살짜리 자녀가 있다면 누가 더 예쁠까요? 똑같이 예쁘지 않습니까? 이 아이는 이래서 예쁘고, 저 아이는 저래서 예쁘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믿었든 임종 전에 믿었든 똑같이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온 자든 나중 온 자든 똑같이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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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21-35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우리가 살다보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평생 지워지지 아픔으로 남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피부가 곪아가면서 주변을 아프게 하듯이 그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 집니다. 상처를 방치한다면 살이 썩어가듯이 그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 집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을까요? 유대교 랍비들은 다른 사람이 상처를 주면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몇 번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21절)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베드로는 자신이 랍비들보다 관대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파격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22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 곱하기 일흔 번은 490번입니다. 예수님은 490 번을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생생한 표현을 위해서 과장법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무한대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23-34절) 예수님은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결산을 해보니 만 달란트가 부족했습니다. 만 달란트는 계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만 달란트를 봉헌했고(대상29:4), 하만이 유대인들을 멸족시키기 위해 바사 왕에게 만 달란트를 바쳤습니다.(에3:9) 성경배경주석을 보면 은 일 달란트는 노동자의 6천 일분 일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 만 달란트는 하루 일당의 6천 만 배가 되니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신문을 보니 일본 우체국 여직원이 창구 단말기를 조작해 92년부터 얼마 전까지 2억 엔을 횡령했다고 합니다. 1엔을 십 원으로 계산하면 20억 원 정도가 됩니다. 아마 이 종도 돈을 담당했었나 봅니다. 그 종이  돈을 차용했던지 횡령했던지 했나 봅니다. 임금은 그 종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고대사회는 돈을 갚기 위해 재산도 팔았고 가족도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 종은 엎드려 절하며 갚겠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입니다. 임금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 놓아 주며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임금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 종이 나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습니다. 일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일당을 5만 원이라 계산하면 5백만 원이 됩니다. 그 종은 동료의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습니다. 그 동료는 엎드려서 갚겠다고 간구했으나 그 종은 빚을 갚으라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동료는 재산을 팔거나 친척이 갚아주지 않는 한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을 탕감해 주었으나 그 종은 마음만 먹으면 갚을 수 있는 금액을 갚으라고 그 동료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종은 무자비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그 사실을 임금에게 알렸습니다. 임금은 노했습니다. 그 종은 더 큰 빚을 탕감 받았으나 다른 동료의 더 작은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그 종을 불러다가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임금은 그 종이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그 종은 그 돈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평생 감옥에서 썩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종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적은 금액을 받아내려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을 갚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종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가 훔친 고기를 입에 물고 강을 건너다 강물 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고기를 빼앗으려고 물어뜯으려다 고기 조각을 물속에 빠뜨렸던 것처럼 동료에게 적은 빚을 받아내려다 자신의 많은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35절)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2절을 통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14-15절을 통해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종들은 우리들을 가리키고, 결산은 최후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임금에게 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임금이 빚을 탕감해 주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1절을 통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 데나리온 빚진 다른 사람에게 빚을 받아내려 합니다. 우리는 더 큰 빚을 탕감 받고도 더 큰 죄를 용서받고도 더 작은 빚을 받으려 합니다. 더 작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남을 칭찬하기 보다는 험담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세워주기 보다는 깎아내리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더 작은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더 큰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심과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줘야 합니다. 우리가 더 큰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더 작은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KBS 1TV에 [아름다운 용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순간의 잘못으로 악화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의뢰인이 용서를 구하면 초청인이 용서를 해줌으로서 관계를 회복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 중 <두 번의 배신>이란 내용이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아버지처럼 따르던 교회 장로에게 1억 5천만 원을 빌렸으나 사업이 부도나자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장로의 가족들은 거금을 빌려주고 딸의 학원비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의뢰인은 장로에게 실망을 끼쳤다며 죄책감에 빠졌고 장로의 가족들은 의뢰인이 사기를 쳤다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10년이 지나 의뢰인이 용서를 구하러 나타나고 장로는 어이없어 합니다. 의뢰인이 진심으로 사과하자 장로는 용서를 결심합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아름답게 퇴장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죄스러워 해서도 그렇다고 남을 미워해서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죄를 지었다면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야 하고 남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를 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더 큰 죄를 용서해줬기 때문에 나는 더 작은 죄를 용서해 주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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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5일(월)-28일(목) 수원 흰돌산 수양관에서 열린 제38차 회자부부 영적세미나에 창성교회, 백석교회, 예수비전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참석하고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기도회를 하기로 하다.

9월 7일(주일) 창성교회에서 회의를 하고 기도회를 하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4개 교회를 순회하며 기도하고 전도하기로 하다.

 9월 26일(금) 창성교회에서 기도회를 하다.

10월 2일(목) 예수비전교회에서 기도회를 하고 효자동 일대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하다.

10월 10일(금) 창대교회에 모여 현대아파트 주변을 전도하다.

10월 17일(금) 백성교회에 모여 간담회를 하다.

10월 24일(금) 창성교회에 모여 전도를 하다.(교역자 수양회를 가다.)

11월 7일(금) 예수비전교회에 모여 전도를 하다.(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하다.)

11월 21일(금) 창대교회에서 기도하고 포항공대 지곡회관 주변을 전도하다. 날이 추워져 노방전도하기 어려우니 기도회로 바꾸자고 합의하다.

12월 3일(수) 수요일 예배를 마치고 창성교회에서 모여 9시부터 10시 반까지 기도회를 가졌다.

12월 10일(수) 백석교회에서 기도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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