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6-38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 또는 천상모후(天上母后)라고도 부르며 공경합니다. 마리아의 조각상을 성모상(聖母像)이라 하고, 마리아에게 바치는 기도를 성모송(聖母誦)이라 하고, 마리아를 공경하는 호칭을 부르며 드리는 탄원기도를 성모호칭기도(聖母呼稱祈禱)라고 하고, 마리아가 보여준 신앙의 모범을 따르고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리아 축일[Marian Feasts]을 만들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하늘의 여왕이라고 떠받들지만, 개신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연약한 인간이라고 여깁니다. 마리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마리아의 숭고한 신앙은 본받을 만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었다.

마리아는 유대 나라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렛은 인구가 2천 명 정도인 시골 마을로 나사렛 사람들은 양을 치거나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당시 목자나 농부는 가난했습니다./ 마리아의 나이는 12살에서 14살 정도로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란 청년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 당시는 약혼을 하고 1년 동안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살다가 결혼을 하고나서 함께 살았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중학생이지만 평균 수명이 짧았던 2천 년 전에는 결혼적령기였습니다./ 마리아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난했고, 성인 남자만을 사람으로 여겼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미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마리아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28절)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 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인사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보고 놀랐다기보다 인사를 듣고 놀랐습니다.(29절) 마리아가 인사를 받을 만한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안심시키며 기절초풍할 소리를 전했습니다.(30-31절)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사회적인 신분이 높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3장 23절-24절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롬3:21-26,고후5:14-21,갈2:15-21,딤후1:9,딛3:3-7)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었다.

마리아는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어 가브리엘에게 물었습니다.(34절)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은 27절과 29절을 통해 마리아가 순결한 처녀라고 말씀합니다. 마리아도 남자와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미생물 특히 단세포 세균은 하나의 세포가 2개나 여러 개로 분열되어 무성생식을 하지만 생물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유성생식을 합니다. 사람도 생물인데 마리아가 남자 없이 임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대답했습니다.(35절)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은 계속하여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불임 여성인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여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지 못하시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십니다. 성경에는 불임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였습니다.(창21:1-7)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남편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창25:21-26) 야곱의 아내 라헬은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소원을 들어주셔서 아들 요셉을 낳았습니다.(창30:22-24) 마노아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가 아들을 낳으리니 나실인으로 바치라고 하고 아들 삼손을 낳았습니다. (삿13:2-25)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하고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삼상1:19-20))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19장 26절을 통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27)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을 통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빌립보서 4장 13절을 통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집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마리아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38절)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성경에는 불임 여성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했을 때에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그 말씀을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창18:9-15)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그가 웃다.’라는 뜻으로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는 그 말씀을 의심하였습니다.(눅1;18) 그래서 벙어리가 되었다가 아들을 낳고 천사의 말대로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 주자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시골 처녀 마리아는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당시 약혼한 여자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다면 엄청난 시련이 따랐습니다. 약혼자가 결혼을 거절하면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여자가 직업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에 거지가 되거나 창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고 말한다면 미친 여자라고 취급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마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순종하였습니다. 믿음은 전자계산기로 두드려서 수지타산을 맞춰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약속을 믿고 모험을 감수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려서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 보다는 위험을 감수해서 라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리아처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머리로 판단해 보고 결정하십니까?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한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거름으로 삼아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라는 열매를 맺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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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양식 - 2009 가정예배서
KMC 편집부 엮음 / KMC(기독교대한감리회)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하늘양식은 감리교회가 자랑하는 가정예배서입니다. 해마다 업그레이 되어 나오는데 올해는 감리교회 교역자들의 원고 뿐만 아니라 초교파 적으로 한국교회 중견 목사님들의 옥고도 실려 있어 보기 좋네요. 더군다나 특별예배가 보강되어 있어 실용적이네요. 출산 후에 드리는예배, 첫돌을 맞아 드리는 예배 등 다양한 예배가 있어 목사님이 심방오시지 않아도 가장이 예배를 인도할 수 있네요. 예배는 가족이나 동료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며 마음문을 열고, 본문과 설교문을 읽으며 하늘문을 열고, 본문을 묵상하면서 세상문을 열게 구성되었네요. 그리고 본문과 병행하여 맥체인 성경읽기표 방식을 따라 성경을 통독할 수 있게 이끌어 주네요. 1년이 지나면 구약은 2번 신약과 시편은 2번을 읽을 수 있어 설교를 통해서도 성경을 통해서도 은혜받을 수 있게 편집됐네요. 얼마전 신문을 보니 이혼숙려제도 때문인지 어떤지 4년째 이혼율이 감소하고 있다는데 이제부터는 하늘양식을 통해 단순히 동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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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ay 소모임 성경공부 - 구역.목장.셀그룹 교재, 2009
요단출판사 편집부 엮음 / 요단출판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청장년 성경연구 자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초신자들이 신앙의 기초를 잡는 책이라기 보다는 성경을 책별로 연구하는 책이라야 맞을 듯 하네요. 1분기에는 마태복음을 2,3분기는 창세기를 4분기는 사도행전을 공부하네요. 1과를 보면 본문이 마태복음 1:1-2:23절까지를 배경으로 먼저 본문의 개요를 다루고 핵심말씀을 연구하고 당신이 어떻게 할지 결단을 촉구하네요. 학습문제는 생각을 요구하기 보다 단순히 본문을 설명하는 수준이고 적용문제가 그나마 본문과 당신과 스파크가 일어나게 하네요. 저의 경우 예전에는 강의식 성경공부 교재가 좋았으나 최근에는 단답형 답변보다 학습자의 삶을 오픈할 수 있는 귀납법적 성경공부 교재가 더 좋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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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4일 김태선 집사와 아들 박준휘가 주일 낮예배에 참석하다. 김 집사는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에도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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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9-28 주의 길을 곧게 하라.

요한이 등장하였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세례 요한이라 부르지만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나옵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 요한이라는 뜻이죠. 제가 요한을 좋아하는 이유는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참석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갈급해 지잖아요?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했습니다. 그때 요한이 유대 광야에 등장했습니다.(유대 광야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습니다.(왕하1:8) 요한은 낙타털로 짠 거친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옷이 내려가지 않도록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고 광야에서 흔한 석청(야생 들꿀)을 채취해서 먹었습니다.(막1:6) /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길에서 잠 잤습니다./ 요한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눈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하였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는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요한이 설교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니요? 유대 백성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지 행동으로는 떠나 살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자꾸만 빗나갔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과 생각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오늘날의 교인들도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행동으로는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세상에서는 맘몬(돈)을 할아버지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만 교인이지 세상에서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가 C_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한이 유대 백성들에게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했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회개하였고 종교지도자들은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 지방과 요단 강 사방에서 요한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마3:5)(유대광야에서 요단강까지는 가깝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인기 가수가 콘서트를 열면 팬들이 몰려들듯이, 요한이 설교하면 백성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요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이 백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항할까 봐 바짝 긴장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고 요한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진상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오늘날도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교인은 은혜의 강물이 흐르지만, 말씀의 꼬투리를 잡는 교인은 영혼의 우물이 말라버립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다.

진상조사단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요1:19) 혹시 그리스도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숨기지 않고 대답했습니다.(요1:20)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음이 같은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가차)/ 진상조사단은 “그러면 엘리야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2:11) 유대 백성들은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말4:5-6)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요1:21/) 진상조사단은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입니다.(신18:15,18) 유대 백성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요1:21)/ 진상조사단은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고 물었고, 요한은 그 때마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 요한의 인기는 60년대 록 그룹인 비틀즈를 능가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요한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면 유대 백성들은 신으로 떠받들 것이고 진상조사단은 굽실거릴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 선지자로 의심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고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10절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시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표준새번역을 통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공동번역을 통해서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합니다. LAB 주석을 보니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이라고 말하더군요. 나도 걸작품, 너도 걸작품. 이 구절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자기비하를 한다면 하나님의 걸작품을 훼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볼품없는 인간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것도 하나님의 걸작품을 손상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독특하게 만드신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알았다.

요한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지도 아니라고 하자 진상조사단이 짜증을 내며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느냐?” 고 추궁했습니다.(요1:22) 진상조사단은 혹시 거짓 선지자가 아닌 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요한은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하여 “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행차하기 전에 사자(messenger)가 앞서 가서 왕이 오신다고 알리고 오실 길을 평평하게 닦았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요한은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상을 회개시키려고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mission)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도 모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도 압니다. 요한의 사명은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사명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란 자의식이 없을 때는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란 자의식을 가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고 써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의 앞길을 열어주실 겁니다.

요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것처럼, 우리는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알았기에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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