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9-28 주의 길을 곧게 하라.
요한이 등장하였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세례 요한이라 부르지만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나옵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 요한이라는 뜻이죠. 제가 요한을 좋아하는 이유는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참석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갈급해 지잖아요?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했습니다. 그때 요한이 유대 광야에 등장했습니다.(유대 광야는 사막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습니다.(왕하1:8) 요한은 낙타털로 짠 거친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옷이 내려가지 않도록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고 광야에서 흔한 석청(야생 들꿀)을 채취해서 먹었습니다.(막1:6) /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길에서 잠 잤습니다./ 요한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눈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하였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는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요한이 설교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니요? 유대 백성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지 행동으로는 떠나 살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자꾸만 빗나갔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과 생각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오늘날의 교인들도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행동으로는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세상에서는 맘몬(돈)을 할아버지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만 교인이지 세상에서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가 C_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한이 유대 백성들에게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했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회개하였고 종교지도자들은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 지방과 요단 강 사방에서 요한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마3:5)(유대광야에서 요단강까지는 가깝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인기 가수가 콘서트를 열면 팬들이 몰려들듯이, 요한이 설교하면 백성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요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이 백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항할까 봐 바짝 긴장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고 요한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진상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오늘날도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교인은 은혜의 강물이 흐르지만, 말씀의 꼬투리를 잡는 교인은 영혼의 우물이 말라버립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다.
진상조사단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요1:19) 혹시 그리스도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숨기지 않고 대답했습니다.(요1:20)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음이 같은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가차)/ 진상조사단은 “그러면 엘리야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2:11) 유대 백성들은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말4:5-6)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요1:21/) 진상조사단은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입니다.(신18:15,18) 유대 백성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요1:21)/ 진상조사단은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고 물었고, 요한은 그 때마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 요한의 인기는 60년대 록 그룹인 비틀즈를 능가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요한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면 유대 백성들은 신으로 떠받들 것이고 진상조사단은 굽실거릴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 선지자로 의심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고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10절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시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표준새번역을 통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공동번역을 통해서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합니다. LAB 주석을 보니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이라고 말하더군요. 나도 걸작품, 너도 걸작품. 이 구절은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자기비하를 한다면 하나님의 걸작품을 훼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볼품없는 인간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것도 하나님의 걸작품을 손상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독특하게 만드신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알았다.
요한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지도 아니라고 하자 진상조사단이 짜증을 내며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느냐?” 고 추궁했습니다.(요1:22) 진상조사단은 혹시 거짓 선지자가 아닌 가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요한은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하여 “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행차하기 전에 사자(messenger)가 앞서 가서 왕이 오신다고 알리고 오실 길을 평평하게 닦았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요한은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상을 회개시키려고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mission)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도 모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도 압니다. 요한의 사명은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사명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란 자의식이 없을 때는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란 자의식을 가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고 써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의 앞길을 열어주실 겁니다.
요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기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것처럼, 우리는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알았기에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