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TV 중학 영어 3-1 - 2010년 1월 25일 ~ 7월 4일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지음 / EBS(한국교육방송공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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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영어교과서와 다르다고 불만이지만 저는 EBS 방송강의를 꼭 보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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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3:18-22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성경에는 2,930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저는 그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2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몇 주간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갈급해 지잖아요?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던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했는데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빗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죄를 고백했다는 내적인 정결이라면 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외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주문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요한은 유대 백성들에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0-11) 유대 백성들은 옷을 한 벌 밖에 갖지 못했고, 오늘 먹을 양식도 부족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남는 것을 움켜쥐지 말고 나눠주는 겁니다./ 세리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3) 세리들은 로마제국에서 부과한 세금보다 과중하게 거둬들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요 흡혈귀라고 증오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는 겁니다./ 군인들에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4) 여기서 군인들은 로마 군인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했던 유대 군인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찰관입니다. 군인들은 권력을 악용해 백성들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비록 부족할지라도 지금 받는 급료에 만족하는 겁니다. 결국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바른 삶을 가리킵니다. 신앙을 가졌으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과 그분을 비교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능력이 달랐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겁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상징이었지만 그분의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체험이었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그분의 성령세례와 물세례를 준비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신분이 달랐습니다. 요한은 천한 종이었고 그분은 귀한 손님이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날이 덥다 보니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고 사막이다 보니 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었습니다. 발이 지저분하고 더럽다 보니 신발은 종중에서도 천한 종이 들고 다녔는데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보다 능력과 신분이 다른 그분이 오시면 무엇을 하실까요?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은 심판을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와 ‘손에 들려있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농부가 도끼를 들고 과수원에 갑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버립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키를 들고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키는 갈퀴인데 도리깨로 두드리고 나서 쭉정이를 골라내고 알곡을 남게 합니다. 콩을 두드릴 때를 생각하면 됩니다.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립니다. 쭉정이는 불쏘시개로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상징하고,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농부가 도끼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나누듯이,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이 의인과 악인을 가리십니다.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상징이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도 죄를 지으셨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요8:46,고후5:21,히4:15,요일3:5)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개미에게 사과하려면 개미가 돼야 하듯이 사람들의 죄를 씻으려면 사람이 돼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지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떠나 이 땅으로 내려오셨고, 사람들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죄인들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시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눅3:21-2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에게만 보였습니다.(마3:16) 하늘이 열렸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을 시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도 보았고 요한도 보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심증은 가졌지만 물증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물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임하는 사람이 성령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요1:33)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도 들었고 요한도 들었고 백성들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식은 예수님의 신분선포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독생자입니다. 외아들입니다. 우리는 양자이고 예수님이 친자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 위격이지만 하나의 본질입니다. 삼위일체는 사람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하나님의 신비입니다.(삼신론은 세분의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하고, 양태론은 하나님이 다른 역할을 한다고 주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처럼 자신을 낮추시고 세례를 받으시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낮추시자 하나님이 높이셨고, 예수님이 겸손하시자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교만하라고 부추기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석에 앉으라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지만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높이시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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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라(유20) 

 

제자훈련 과정 

<새가족 훈련(10주)> 유기성 목사,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제자훈련 1(40주)> 매일성경 순-묵상훈련 

                           유기성 목사,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신앙훈련 

                           주서택 목사, [마음에 숨은 속사람의 치유]-내적치유 

                           테리홀 교수, [성경 파노라마 & 성경 익스프레스]-성경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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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드라마다 -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생동하는 성경 이야기
마이클 고힌 외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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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알버트 알터스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악은 창조의 필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창조 세계는 악이 없는 완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바르톨로뮤와 고힌은 그의 사상을 토대로 삼아 이 책에서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반역을 일으켜 세상이 훼손되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회복하시고자 기나긴 구속의 행로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선택하셔서 모든 민족의 빛이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창조 세계를 회복시켜야 하는 소명을 받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시키고자 인간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그 사명을 교회에 위임하셨다. 알터스는 저자들의 멘토이며 그의 사상은 이 책의 씨실이다./ 톰 라이트는 이 책의 날실이다. 그는 기독교의 목적은 세상 전체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이야기로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저자들은 그의 명제를 이어받아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진정한 이야기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이 이야기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대성당으로 비유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언약(구약)과 하나님 나라(신약)라고 주장한다. 약속이나 임재 등은 옆문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에 초점을 두셨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의 빛이 돼야 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과 창조 세계 전체를 염두에 두었다. 언약과 하나님 나라는 주 출입구의 양문으로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창조로부터 시작해 새창조로 나아가는 성경의 점진적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톰 라이트는 성경의 이야기를 연극처럼 창조, 죄, 이스라엘, 그리스도, 교회라는 5막으로 나눴으나 저자들은 여기에 새창조의 도래를 덧붙였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자신과 화해시키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목적을 성취하셨으나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성령님의 강림과 예수님의 재림 사이에 산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분을 증언해야 한다. 그가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목적은 완성될 것이다. 이 책은 성경신학과 기독교 세계관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우리교회 제자훈련 2연급 교재로 사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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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저는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서문을 꼼꼼히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서문 다시 말해 머리말에는 지은이가 책을 쓴 목적을 설명하고 책의 내용도 간추려서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서문은 조감도와 같아요. 우리가 건물의 조감도를 보면 이 건물을 어떻게 짓겠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서문을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되겠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18절까지는 요한복음의 서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을 읽어보면 요한복음 21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나와 있습니다. 여러 개가 나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절-3절을 통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인데 유대적인 개념과 헬라적인 개념에서 로고스는 모두 시작과 관련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인데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다른 성경구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1장 15절을 통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을 통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광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모습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고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사람이란 말씀에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오 빛이시다.
하나님은 1장 4절-5절을 통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은 헬라어로 ‘조에’인데 요한복음에서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뿐만 영원한 생명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빛이 비춰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빛을 비추셨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주고 빛을 비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고 빛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둠에 머물다보니 죽음을 맞게 됩니다. 죽음은 헬라어로 ‘다나토스’인데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영원한 죽음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환영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요1:12) 권세는 권한이나 허가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둠에 머물러 죽음을 맞이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빛으로 나아와 생명을 얻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둠에 머물지 마시고 빛으로 나아와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시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하나님은 1장 14절을 통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사람이시라는 말씀은 다른 성경구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2장 9절을 통해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인성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7절을 통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으시지만 사람과 똑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성막에 머무셨듯이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어 자기 백성들 가운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지만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셨습니다. 영광은 헬라어로 ‘세키나’인데 성막 안에서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시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은혜와 진리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다.(요1:18)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신학 용어로 incarnation, 다시 말해 성육신(成肉身)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신비중의 신비인데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집에 성육신을 알기 쉽게 설명한 예화가 나오더라고요. 인도에서 사역하는 어떤 선교사님이 어떻게 하면 힌두교 인에게 복음을 전할까 고민하다 어느 날 함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실수로 개미집을 밟았습니다. 그 바람에 개미집이 부서졌고 수많은 개미들이 발에 밟혀서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힌두교 인이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당신 때문에 수많은 개미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선교사님은 너무 미안해서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고 저도 모르게 실수로 그랬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저 개미들에게 사과할 수 있을까요?" 힌두교 인이 정색을 했습니다. "당신이 개미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거든 죽어서 개미로 태어나야 할 거요." 힌두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설을 믿잖아요? 그들의 사상에 의하면 개미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개미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선교사님의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주신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선교사님은 힌두교 인의 말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군요. 개미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개미로 태어나야 하듯이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로 물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고,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해 짐승들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속죄의 피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사시고자 사람이 되셨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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