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3:18-22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성경에는 2,930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저는 그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2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몇 주간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갈급해 지잖아요?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던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했는데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빗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죄를 고백했다는 내적인 정결이라면 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외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주문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요한은 유대 백성들에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0-11) 유대 백성들은 옷을 한 벌 밖에 갖지 못했고, 오늘 먹을 양식도 부족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남는 것을 움켜쥐지 말고 나눠주는 겁니다./ 세리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3) 세리들은 로마제국에서 부과한 세금보다 과중하게 거둬들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요 흡혈귀라고 증오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는 겁니다./ 군인들에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요구했습니다.(눅3:14) 여기서 군인들은 로마 군인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했던 유대 군인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찰관입니다. 군인들은 권력을 악용해 백성들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비록 부족할지라도 지금 받는 급료에 만족하는 겁니다. 결국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바른 삶을 가리킵니다. 신앙을 가졌으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과 그분을 비교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능력이 달랐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겁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상징이었지만 그분의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체험이었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그분의 성령세례와 물세례를 준비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신분이 달랐습니다. 요한은 천한 종이었고 그분은 귀한 손님이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날이 덥다 보니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고 사막이다 보니 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었습니다. 발이 지저분하고 더럽다 보니 신발은 종중에서도 천한 종이 들고 다녔는데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보다 능력과 신분이 다른 그분이 오시면 무엇을 하실까요?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은 심판을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와 ‘손에 들려있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농부가 도끼를 들고 과수원에 갑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버립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키를 들고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키는 갈퀴인데 도리깨로 두드리고 나서 쭉정이를 골라내고 알곡을 남게 합니다. 콩을 두드릴 때를 생각하면 됩니다.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립니다. 쭉정이는 불쏘시개로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상징하고,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농부가 도끼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나누듯이,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이 의인과 악인을 가리십니다.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상징이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도 죄를 지으셨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요8:46,고후5:21,히4:15,요일3:5)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개미에게 사과하려면 개미가 돼야 하듯이 사람들의 죄를 씻으려면 사람이 돼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지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떠나 이 땅으로 내려오셨고, 사람들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죄인들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시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눅3:21-2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에게만 보였습니다.(마3:16) 하늘이 열렸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을 시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임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도 보았고 요한도 보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심증은 가졌지만 물증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물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임하는 사람이 성령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요1:33)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도 들었고 요한도 들었고 백성들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식은 예수님의 신분선포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독생자입니다. 외아들입니다. 우리는 양자이고 예수님이 친자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 위격이지만 하나의 본질입니다. 삼위일체는 사람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하나님의 신비입니다.(삼신론은 세분의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하고, 양태론은 하나님이 다른 역할을 한다고 주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처럼 자신을 낮추시고 세례를 받으시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낮추시자 하나님이 높이셨고, 예수님이 겸손하시자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교만하라고 부추기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석에 앉으라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지만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높이시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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