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33-46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저는 울진에서 목회할 때 딸아이의 출생을 기념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구덩이를 얕게 파고 뿌리를 펴서 흙에다 퇴비를 섞어 덮어주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지지대를 만들어 포도나무가 자랄 때마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묶어주었습니다. 원순은 자라도록 그대로 두고 곁순은 따 주었습니다. 3년째가 되니 포도 알이 맺혔습니다. 색깔은 연두색이었고 크기는 좁쌀만 했습니다. 포도는 수분이 필요하기에 아침마다 물을 주었고, 영양분이 부족할까 비료를 퇴비에 섞어주었습니다. 포도 알이 점점 커지면서 자주색으로 변해갔습니다. 포도가 익어가자 말벌이 몰려와서 포도 알 속의 당분을 빨아먹었습니다. 포도송이를 신문지로 싸면 익어가는 게 보이지 않을까봐 붉은 색 양파자루로 덮어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가장 색깔이 진한 포도송이를 골라 지하수로 씻어 한 알씩 잎에 넣었습니다. 금방 딴 포도 알이라 싱싱했고 산자락에서 자라 머루 맛처럼 진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포도를 먹는 여름 내내 행복했습니다.
포도는 전 세계 과일 생산량의 3분의 1일 차지한다고 합니다. 과일 가운데 압도적인 1위 라죠. 포도에는 당분(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들어있어 피로 회복에 좋고, 비타민이 풍부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포도를 많이 언급합니다. 지지난 주에는 포도원에 일하라고 들여보낸 일꾼들에 관한 말씀이었고, 지난주는 포도원으로 일하러 보낸 두 아들에 관한 말씀이었고, 오늘은 포도원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땅을 가진 지주입니다. 주인은 야생동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포도원 주변을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통을 만들고, 도둑이 들어오나 감시하기 위해 망대를 세웠습니다. 주인은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완벽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주들은 도시에 살면서 시골에 사는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농부들은 먹고 살기위해 한 평이라도 더 소작을 붙이고 싶어 했습니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아마 3년에서 5년은 지났을 겁니다.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습니다.(34절) 소작료는 추수 때 수확량의 많게는 50%에서 적게는 25% 정도를 냈습니다. 소작농들은 소작료를 내기는커녕 주인이 보낸 종들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종 한 명은 심히 때리고, 한 명은 때려서 죽이고, 한 명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35절) 주인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작농들이 종들을 죽인 것은 주인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이고, 주인은 소작농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명예에 수치를 입었습니다. 주인은 화를 참고 지난번보다 더 많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소작농들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주인은 당장 사병들을 이끌고 달려가 소작농들을 요절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한 번 더 참았습니다. 주인은 소작농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소작농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소작농들이 아들을 존중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37절) 주인은 소작농의 만행을 참을 줄 아는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은 어떻게든 소작농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렸으나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을 보고 엄청난 음모를 꾸몄습니다.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이 상속자이니 그를 죽이고 유산을 차지하자고 흉계를 꾸몄습니다. 소작농들은 갈수록 악해져갔습니다. 죄는 죄를 낳기 마련입니다.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을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고 가서 죽였습니다. 소작농들이 상속자를 죽인다 하더라도 포도원을 차지하기 어려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자비로운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주인은 소작농들이 죄를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인자하신 분입니다. 주인이 만든 완벽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소작농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주인이 소작료를 받아오라고 보낸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자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렸고(렘26:7-11,38:1-28), 세례자 요한은 죽였습니다.(마14:1-12)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40절)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은 아무리 자비로운 주인이라도 이 지경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41절)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 로 줄지니 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악한 소작농들을 징계하고 다른 소작농들에게 소작을 줄 것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의 정곡을 찌르셨습니다.(42-44절)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버린 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했지만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이셨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심판돌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소작료를 내지 않는 소작농들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아 소작료를 내는 다른 소작농들에게 포도원을 맡겼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에게서 거룩한 나라(출19:5-6)의 지위를 빼앗아 예수님을 영접한 이방인들에게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권을 주실 겁니다.
우리도 포도원을 일구는 지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소작농입니까? 악한 소작농처럼 포도원을 경작하면서 소작료를 떼먹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 값으로 구원해 주시고 직분을 맡겨주셨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세월을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선한 소작농이 되어 소작료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착하고 부지런한 종이 되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원래의 소작농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았듯이 우리가 소작료를 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빼앗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4:2) 우리는 제 때에 열매를 바치는 착한 소작농이 돼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