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2:15-2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공산당 전술 중에 ‘통일전선’ 전술이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우익 개량주의자와 일시적으로 협력하여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는 전술입니다. 흔히 여러 당파나 단체나 계층이 독자적인 주장을 견지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연합하는 전술입니다. 공동전선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공공의 적인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하여 공동전선을 펼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는 종교집단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자 예수님을 증오하였습니다./ 헤롯 당원들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찬성하는 정치집단입니다. 헤롯 당원들은 헤롯 대왕의 후손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바랐는데 예수님이 백성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킬까봐 예수님을 위협적인 인물로 감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도 헤롯 당원들에게도 눈의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흉계를 꾸몄습니다.(16-17절)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 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는지 어긋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63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제국에 3종류의 세금을 냈습니다. 첫 번째는 소득세로 곡식의 10분의 1과 과일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냈습니다. 두 번째는 인두세로 14세부터 65세까지는 하루의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를 세금으로 냈습니다. 세 번째는 관세로 항구와 성문을 통과하는 상품의 2%에서 5%를 세금으로 냈습니다. 로마제국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세리로 고용해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제국이 부과한 세금보다 몇 배나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백성들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가혹한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억지로 세금을 냈습니다. 백성들은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인 로마인에게 협력하고 세금을 갈취하는 세리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세금이 이방 신전을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로마제국의 부유층들이 사치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로마제국에 순응하는 매국노라고 비판을 받게 됩니다./ 헤롯 당원들은 세금을 순조롭게 징수해야 헤롯 대왕의 후손이 집권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찬성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납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다고 반역죄로 고발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금을 납부하라고 말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납부하지 말라고 말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저의를 간파하셨습니다. 유대와 헬라 세계에서 유명한 스승은 재치 있는 대답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18-20절)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로마제국의 은전인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예수님이 질문하셨습니다.(21절)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의 황제는 디베료(티베리우스) 가이사였습니다. 은전에는 티베리우스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고, ‘가이사는 신이다.’ 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가이사의 것이니 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은전은 가이사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로마황제가 주인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22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은전을 소유하는 것은 은전을 주조한 나라의 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로마제국의 은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로마황제가 신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징수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그러나 로마황제는 백성들의 영혼을 소유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영혼을 소유할 권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제국의 백성으로서 세금을 낼 의무가 있듯이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헌금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3장 1절을 통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7절을 통해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 전서 2장 17절 하반 절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하고 위정자를 존경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동시에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우리는 이중국적자입니다. 우리가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 이중국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것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우리는 선량한 국민인 동시에 신실한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 번째로 장로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감리교회 장로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건국에 공헌했지만 부정선거를 저질러 대통령에서 하야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여 하와이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 충현교회 장로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지만 IMF 사태를 맞는 바람에 죄인 취급을 받고 상도동으로 물러났다가 요즘에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소망교회 장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화를 제창했지만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는 바람에 모든 국민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까봐 난리를 쳤었고 지금은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 여파로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올라가고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단기외채의 만기는 도래하고 이러다가 또다시 외환위기가 빠지지는 않나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위기에 빠졌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모든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금식하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다는 소리를 듣고 블레셋이 공격해 오자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아마도 강력한 폭풍우였던 것 같습니다.) 어지럽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패배하게 만드셨습니다.(삼상7:2-14) 이스라엘이 국가의 위기상황 속에서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우리도 선량한 국민으로서 그리고 신실한 성도로서 국가의 위기극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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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열공 2학기 기말 기출문제집 중1 - 2008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열공으로 열공하고

성적이 월등히 향상되어

학업진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마무리 하는데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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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1-14 청함에서 택함으로


미국 베델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로버트 스타인 박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난 방법과 메시지를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치셨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진리를 일상생활과 연관시켜서 가르치셨습니다. 설교를 친숙한 사물과 연결시켜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은 제자들은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비교인들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결과 제자들은 비유를 보고 듣고 깨달았지만 비교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마13:11-13)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무엇 무엇과 같다.’고 직유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절을 통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을 혼인시키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딸을 시집보내는 가정은 왠지 서운한 기색이고, 아들을 장가보내는 가정은 무언가 들떠있는 기분이더라고요. 왕이 아들을 결혼시키자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왕은 종들을 보내 손님들을 정중히 초청하였습니다. 아마 귀족들을 초청했을 겁니다. 손님들은 기꺼이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왕에게 초청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혼인날이 되었습니다. 혼인 잔치는 1주일에서 2주일 간 진행됩니다. 왕은 온갖 진귀한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고 초청을 수락한 손님들에게 종들을 보냈습니다. 손님들은 처음에는 잔치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막상 당일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습니다. 손님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자 왕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손님들이 초청을 거절하면 왕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왕은 손님들에게 다른 종들을 보내 간곡히 초청하였습니다.(4절 하반 절)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왕은 최고급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롯데호텔 뷔페를 예약했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표준새번역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공동번역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남은 사람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왕의 초청을 거절하면 왕을 모욕하는 겁니다. 왕이 보낸 종들을 죽인 것은 왕에 대한 반역행위였습니다. 왕은 분노했습니다. 왕은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처음 초청받은 손님들은 잔치에 참석하지도 않고 왕이 보낸 종들까지 죽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왕은 종들에게 다른 손님들을 초청하라고 지시했습니다.(8-9절)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왕은 요즘 같으면 푸드 뱅크에 기탁하면 되지만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큰길로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마 평민들까지 초청하라는 말일 겁니다. 종들은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가리지 않고 만나는 대로 잔치에 데려왔습니다. 잔치 자리는 금세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왕은 손님들을 접견하러 들어왔습니다. 잔치 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혼인잔치에 참석하려면 더러운 옷이 아니라 깨끗한 옷을 입는 것이 에티켓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12절)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왕은 예의를 갖춰 물었으나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음식을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렸는지 어떤지 예복을 갖춰 입지 않았습니다. 왕에게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왕이 종들에게 명령했습니다.(13절)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왕은 안타까웠습니다.(14절)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나중에 초청받은 손님 중에 한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아 잔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왕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결혼하는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혼인잔치는 천국잔치를 가리킵니다. 잔치에 참석하라고 심부름을 갔던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처음 초청받은 손님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왕이 혼인잔치를 베풀고 종을 보내 손님들을 초청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택하시고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이 초청을 거절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리를 대신했습니다. 손님들이 종들을 죽이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왕이 살인자들을 죽이고 동네를 불사르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게 멸망당하여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온갖 멸시를 당하다 1948년에 독립 국가를 건국했습니다.

나중에 초청받은 손님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입니다. 종들이 만나는 대로 잔치에 데려왔듯이 교회 안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아직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 훈련소입니다.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쭉정이를 알곡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나 잔치에 참석하려면 깨끗한 예복을 입어야 하듯이 교회에 다니려면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예복을 바른 믿음과 바른 삶으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천국잔치에 참석하려면 바른 믿음과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왕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잔치에서 쫓아내듯이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엉터리로 살았더라도 교회에 다니고 나서도 바르게 살지 않는다면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단지 천국잔치에 초청을 받은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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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33-46 제 때에 열매를 바칠만한

저는 울진에서 목회할 때 딸아이의 출생을 기념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구덩이를 얕게 파고 뿌리를 펴서 흙에다 퇴비를 섞어 덮어주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지지대를 만들어 포도나무가 자랄 때마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묶어주었습니다. 원순은 자라도록 그대로 두고 곁순은 따 주었습니다. 3년째가 되니 포도 알이 맺혔습니다. 색깔은 연두색이었고 크기는 좁쌀만 했습니다. 포도는 수분이 필요하기에 아침마다 물을 주었고, 영양분이 부족할까 비료를 퇴비에 섞어주었습니다. 포도 알이 점점 커지면서 자주색으로 변해갔습니다. 포도가 익어가자 말벌이 몰려와서 포도 알 속의 당분을 빨아먹었습니다. 포도송이를 신문지로 싸면 익어가는 게 보이지 않을까봐 붉은 색 양파자루로 덮어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가장 색깔이 진한 포도송이를 골라 지하수로 씻어 한 알씩 잎에 넣었습니다. 금방 딴 포도 알이라 싱싱했고 산자락에서 자라 머루 맛처럼 진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포도를 먹는 여름 내내 행복했습니다.

포도는 전 세계 과일 생산량의 3분의 1일 차지한다고 합니다. 과일 가운데 압도적인 1위 라죠. 포도에는 당분(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들어있어 피로 회복에 좋고, 비타민이 풍부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포도를 많이 언급합니다. 지지난 주에는 포도원에 일하라고 들여보낸 일꾼들에 관한 말씀이었고, 지난주는 포도원으로 일하러 보낸 두 아들에 관한 말씀이었고, 오늘은 포도원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땅을 가진 지주입니다. 주인은 야생동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포도원 주변을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송이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통을 만들고, 도둑이 들어오나 감시하기 위해 망대를 세웠습니다. 주인은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완벽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주들은 도시에 살면서 시골에 사는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농부들은 먹고 살기위해 한 평이라도 더 소작을 붙이고 싶어 했습니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아마 3년에서 5년은 지났을 겁니다.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습니다.(34절) 소작료는 추수 때 수확량의 많게는 50%에서 적게는 25% 정도를 냈습니다. 소작농들은 소작료를 내기는커녕 주인이 보낸 종들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종 한 명은 심히 때리고, 한 명은 때려서 죽이고, 한 명은 돌로 쳐 죽였습니다.(35절) 주인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작농들이 종들을 죽인 것은 주인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이고, 주인은 소작농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명예에 수치를 입었습니다. 주인은 화를 참고 지난번보다 더 많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소작농들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주인은 당장 사병들을 이끌고 달려가 소작농들을 요절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한 번 더 참았습니다. 주인은 소작농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소작농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소작농들이 아들을 존중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37절) 주인은 소작농의 만행을 참을 줄 아는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은 어떻게든 소작농들이 돌이키기를 기다렸으나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을 보고 엄청난 음모를 꾸몄습니다.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이 상속자이니 그를 죽이고 유산을 차지하자고 흉계를 꾸몄습니다. 소작농들은 갈수록 악해져갔습니다. 죄는 죄를 낳기 마련입니다. 소작농들은 주인의 아들을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고 가서 죽였습니다. 소작농들이 상속자를 죽인다 하더라도 포도원을 차지하기 어려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자비로운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주인은 소작농들이 죄를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인자하신 분입니다. 주인이 만든 완벽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소작농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주인이 소작료를 받아오라고 보낸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자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렸고(렘26:7-11,38:1-28), 세례자 요한은 죽였습니다.(마14:1-12)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40절)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은 아무리 자비로운 주인이라도 이 지경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41절)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 로 줄지니 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악한 소작농들을 징계하고 다른 소작농들에게 소작을 줄 것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의 정곡을 찌르셨습니다.(42-44절)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버린 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했지만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이셨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심판돌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소작료를 내지 않는 소작농들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아 소작료를 내는 다른 소작농들에게 포도원을 맡겼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에게서 거룩한 나라(출19:5-6)의 지위를 빼앗아 예수님을 영접한 이방인들에게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권을 주실 겁니다.

우리도 포도원을 일구는 지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소작농입니까? 악한 소작농처럼 포도원을 경작하면서 소작료를 떼먹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 값으로 구원해 주시고 직분을 맡겨주셨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세월을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선한 소작농이 되어 소작료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착하고 부지런한 종이 되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원래의 소작농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았듯이 우리가 소작료를 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빼앗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4:2) 우리는 제 때에 열매를 바치는 착한 소작농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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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23-32 뉘우치고 갔으니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일렀습니다.(28절 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맏아들이 시원스럽게 대답했습니다.(29절 상) “아버지, 가겠나이다.” 맏아들은 연장을 챙겨들고 포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을 대견스러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도 일렀습니다.(30절 상)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둘째 아들이 짜증을 냈습니다.(30절 하) “싫소이다.” 둘째 아들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들이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거역하면 아버지는 엄청난 수치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안타까우셨습니다. 언제 철이 들지 걱정이었습니다.

맏아들이 포도원에 가고 있었습니다. 맏아들 친구들이 원두막에 둘러앉아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맏아들을 보고 말했습니다. “여보게, 어디가나?” “포도원에 일하러 간다네.” 친구들이 제안했습니다. “자네는 허구한 날 소처럼 일만 하는가. 이리 와서 우리와 한 잔 하세나.” “미안하지만 나는 포도원에 가야 한다네.” 친구들이 간청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딱 한 잔만 하게나. 술 한 잔 마시면 일도 더 잘 되지 않는가? 싫으면 말고.” 맏아들이 망설였습니다. “그래, 그럼 딱 한 잔만 할까.” 맏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습니다. 한 잔만 마시려 했으나 술은 마실수록 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이렇게 계속되다 보니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맏아들은 원두막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말해놓고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투망에서 고기를 건지며 신나했지만 둘째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습니다. 자꾸만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요즘 아버지가 부쩍 쇠약해진 것도 같았습니다. 둘째는 도저히 시시덕거릴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자네, 고기를 잡다 말고 어딜 가려고?” “응, 나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친구들은 둘째가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다녀오게나. 우리가 매운탕 맛있게 끓여 노을 테니.” 둘째는 잘못을 쏜살같이 포도원을 향했습니다. 둘째는 포도원에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31절 상)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종교지도자들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31절 중) “둘째 아들이니 이다.” 맏아들은 포도원에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해놓고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일하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포도원에 갔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맏아들은 말로는 순종하고 행동으로는 불순종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불순종하고 행동으로는 순종했습니다. 두 아들 다 불순종했지만 그나마 둘째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31절 하-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들과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 비유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맏아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소문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사자인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해놓고 포도원에 가지 않은 맏아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맏아들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교회에서는 경건한 신앙인인척 위장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끼여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는 둘째 아들은 세리들과 창녀들을 가리킵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은 율법을 어긴 죄인들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동으로는 죄를 지었으나, 세례자 요한에게 찾아가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이 말씀할 때에 눈물을 흘리며 아멘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포도원에 간 둘째 아들과 같습니다. 오늘날 둘째 아들은 새 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 교인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쏙쏙 받아들여 신앙이 날마다 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습관적으로 드리다 보니 신앙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주범은 맏아들을 자처하는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맏아들처럼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해놓고 딴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종교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을 잘 믿는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둘째 아들처럼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거역해놓고 뉘우치고 가겠습니까? 세리들과 창녀들처럼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입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맏아들처럼 입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뉘우치고 둘째 아들처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다처럼 잘못을 후회하고 자살할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깊이 뉘우치고 다시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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