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3:24-37 깨어 있어 기도하라.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재림하신다.)’는 말씀이 318번 나옵니다.(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네요.) 1년은 365일이죠. 주일은 52일이고 평일은 313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루에 한번 꼴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만 말씀하셔도 믿을 텐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을 통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임신한 여자가 반드시 해산의 고통을 겪듯이 반드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징조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3장 5절부터 23절까지 재림하실 징조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땅에서는 대환난이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13장 24-25절을 통해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이 지난 뒤에는 하늘에서는 대격변이 일어납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립니다.(아마 지구가 태양계를 이탈하나 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모습은 눈으로도 보입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듯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에 휩싸여 재림하십니다.(구름은 예수님의 자가용인가 봅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모으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모습은 귀로도 들립니다. 대통령이 입장할 때 팡파르가 울려 퍼지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집니다.(살전4:16, 이 소리가 하나의 소리인지 세 가지 소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징조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28-31절)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고 잎과 열매가 동시에 맺히는 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습니다. 건기동안 열매를 맺죠. 처음에는 잎도 작고 열매도 작고 당도도 적다가 차차로 잎도 커지고 열매도 커지고 당도도 높아집니다. 무화과나무는 우기인 나머지 기간에는 가지가 앙상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았습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은 땅에서의 대환난과 하늘에서의 대격변이 일어나면 재림이 가까운 줄을 알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징조를 보여주고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시각을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시간을 알려 주신다면 우리는 실컷 놀다가 막차를 타려고 할 겁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32절) 예수님도 모르시는데 사람이 안다면 뭔가 잘못된 거겠죠.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을 통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알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이 갑자가 들어오듯이 갑자기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주인은 언제 도둑이 들지 모르기 때문에 늘 집단속을 해야 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다른 사본에는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재림하시기 때문에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깨어 있는 거고 어떻게 하면 자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은 문지기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34-37절) 어떤 주인이 타국(다른 나라)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사무를 맡겼습니다. 주인은 문지기를 따로 불렀습니다. 문지기는 주인의 열쇠를 보관하였고 방문객을 관리하였고 다른 종들을 감독하였습니다. 문지기의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자유민 여성과 결혼하기도 하였습니다. 주인은 언제 올지 모르니 문지기에게 깨어 있어라 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주인이 저물 때에 올는지, 밤중에 올는지, 닭 울 때 올는지, 새벽에 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유대인은 밤을 셋으로 나눴으나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이 하듯이 밤을 넷으로 나눴습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인을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이고 문지기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재림하셔서 성도들이 깨어 있으면 어떠실까요? 흐뭇해하실 겁니다. 예수님은 깨어있는 성도들을 칭찬하시고 상을 주실 겁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참을 가지고 들에 가보니 일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다음에 그 사람을 일꾼으로 또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자고 있다면 어떠실까요? 탐탁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은 자고 있는 성도들을 꾸중하시고 벌을 내리실 겁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참을 주려고 들에 가보니 일꾼들이 농땡이를 치다가 주인이 오니 그제서 일하는 척 합니다. 주인의 마음이 탐탁지 않습니다. 다음에 그 사람을 쓰고 싶지 않아집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충성하면 상주시고 싶고 불충하면 벌주시고 싶어질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목이 터져라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재림불감증에 걸리지는 않았습니까? 재림불감증에 걸리면 언제 재림하실지 무감각해져서 맡겨주신 사명을 멀리하고 세상에 얽매입니다. 일꾼이 아무리 일했더라도 주인이 올 때 놀고 있으면 당황하게 되듯이 우리가 과거에 아무리 충성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놀고 있으면 난감해 집니다. 과거의 수고가 감안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앙은 사골 곰탕이 아닙니다. 사골 곰탕도 어지간히 우려야 국물 맛이 진하지 너무 우려내면 맛이 연해집니다. 여러분, 과거를 자랑하지 마시고 현재에 충실하십시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으로 감당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에서의 삶보다 훨씬 더 부요해 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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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14-30 주인과 결산할 새

어떤 사람이 타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여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 사람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 당시 부자는 전문적인 회계사에게 재산 관리를 맡겼습니다. 요즘도 재산관리사(Financial Planner)가 있잖아요. 그 당시 회계사는 자유민들 중에서도 있었고, 종들 중에서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종들 중에서 능력에 맞게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달란트는 원래 금과 은의 무게 단위였으나, 나중에는 화폐 단위가 되었습니다. 한 달란트는 대략 노동자의 15년 품삯이었습니다. 노동자의 일당을 \50,000으로 계산한다면 \273,750,000이 됩니다. 대략 3억 원이 됩니다. 이 사람은 어떤 종에게는 15억 원을, 어떤 종에게는 6억 원을, 어떤 종에게는 3억 원을 맡겼습니다. 이 사람은 종들을 믿었고 또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을 맡겼습니다.

종들도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16절) 그 당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사를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장사를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17절) 그 당시는 돈보다 명예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종들은 주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아무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열심히 일해서 주인의 돈을 갑절로 불렸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를 하자니 손해를 볼 것 같고, 빌려주자니 떼일 것 같아, 그 돈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18절) 그 당시는 전쟁이 자주 터지고, 도둑이 들어오다 보니 땅을 파고 돈을 묻어두었습니다. 그러다 주인이 죽어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돈을 보관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오랜 후에(얼마 뒤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불러 맡긴 돈과 남긴 돈에 대해 결산하였습니다.(19절)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보고합니다.(20절)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칭찬합니다.(21절)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자 더 큰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보고합니다.(22절)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합니다.(23절)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주인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자 보상으로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주인의 칭찬 한 마디에 그동안의 고생이 눈이 녹듯이 녹아 내렸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똑같이 칭찬해 주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의 능력에 맡게 달란트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핑계를 댑니다.(24-25절)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은 재산 증식의 귀재라 원금을 잃으면 어쩌나 두려워하여 장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예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칩니다.((26절)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의 핑계를 일축했습니다. 그 당시 은행의 연이율은 25% 정도이었고, 사채의 연이율은 60% 정도 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돈을 꾸어주기만 했더라도 상당한 이자를 받았을 겁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리대금을 금지했으나(출 22:25, 레 25:36-37, 신 23:19-20) 이방인에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 수건에 싸서 묻어두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렇게도 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원금을 잃으면 어떠하나 걱정한 것으로 보아 소심하였고, 돈을 수건에 싸서 묻어두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성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만 남겼어도 칭찬받았을 텐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심판을 내립니다.(28-30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쫒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남은 한 달란트를 주었고,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둔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주인은 충성한 종들에게는 보상을 해 주었고, 불충한 종에게는 심판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가듯이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주인이 다시 돌아오듯이 예수님은 다시 돌아오십니다./ 종들은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종은 주인의 달란트를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주인 것입니다. 주인이 달라고 하면 내 것이라고 고집부리지 말고 내어 드려야 합니다./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시간도 되고 물질도 되고 외모도 되고 재능도 되고 지식도 되고 건강도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많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작게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왜 맡기셨을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달란트를 잘 활용하라고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하고 있습니까? 달란트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땅에 묻어 두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인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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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7:11-19 감사 그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은 암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671명이 죽었는데, 악성신생물(암)으로 185명(27.6%), 뇌혈관 질환으로 81명(12%), 심장 질환으로 59명(8.8%), 고의적자해(자살)로 34명(5%), 당뇨병으로 31명(4.6%), 운수사고 21명(3.1%)이 죽었습니다. 암은 전체 사망자의 4분의 1이 넘었습니다. 1,000명 중에서 276명이었습니다.

1.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병을 가장 무서워했을까요? 나병을 가장 무서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갗에 부스럼이나 뾰루지나 얼룩이 생기면 혹시 나병인가 싶어 제사장에게 데려갔습니다. 제사장은 피부를 살펴보고 나병이 아니면 ‘정하다.’고 선언하고 나병이면 ‘부정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제사장이 검진하다 보니 한센병도 나병으로 판정하였고, 악성피부병도 나병으로 판정하였습니다. 나병으로 판정하면 입은 옷을 찢어버리고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손가락으로 코밑수염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소리 질렀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마을에서 쫓겨났고 회당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육체적으로 고통 받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고, 종교적으로 버림받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마을 밖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록도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려 집단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병은 암처럼 전염될 확률은 적었으나 에이즈처럼 격리되었습니다.

2. 나병환자는 격리되어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부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북부인 갈릴리와 중부인 사마리아의 경계를 지나셨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던 나병환자들 10 명이 예수님을 보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습니다.(12-13절)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5장 13절을 통해 나병환자에게 안수 기도도 해주시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수 기도도 해주지 않으셨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개떡같이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나병환자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병이 나았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진단을 받아라.’ 로 이해하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찾아갔습니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23절을 통해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3. 나병환자들은 믿음으로 병을 고쳤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걸아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너무 기뻤습니다. 영화 [벤허]에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흘리신 고귀한 피가 빗물에 씻겨 내려와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적시는 순간 나병이 나았습니다. 벤허 가족은 다시 모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 9 명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나병이 나으면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찾아 갔습니다.(레14:2-4) 제사장은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의 질그릇 안에서 잡고 피를 빼고 다른 새와 홍색 실과 백향목과 우슬초를 핏물에 찍어 나병환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정하다.’고 선언하고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나병환자는 병이 나았다고 판정받았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회당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9 명은 ‘정하다.’는 선언을 듣고 싶어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1 명은 제사장에게 가지 않고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제사장의 ‘정하다.’는 선언보다 예수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4.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온 1 명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간 9 명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의 혼혈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경멸하는 인종이었습니다. 요즘은 국제 결혼하는 가정이 많아 혼혈아들이 많아졌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은 온갖 차별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도 그랬으니 민족주의가 강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얼마나 멸시하고 천대했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정하다.’는 선언을 듣고 싶어 제사장에게 찾아갔고, 사마리아인은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기 위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감사를 잊은 유대인들이 안타까우셨습니다.(17-18절)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이 기특하셨습니다.(19절)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9명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육신의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1명의 사마리아인은 말씀을 믿고 육신도 치유되었고 감사를 하여 영혼도 치유 되었습니다. 육신이 치유되면 병이 낫지만 영혼이 치유되면 구원을 받습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작은 것은 얻었지만 1명의 사마리아인은 큰 것까지 동시에 얻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보는 잡지에 만화 만평이 나왔습니다. 저울이 있는데 기울어져 있더군요. 한쪽의 저울추는 올라갔고 한쪽의 저울추는 내려같더군요. 내려간 쪽에는 ‘간구’라고 쓰여 있었고 올라간 쪽에는 ‘감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간구는 무거워서 내려갔고 감사는 가벼워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아쉬워서 간구는 많이 하지만 평소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저울추는 어떻습니까? 간구와 감사와 균등합니까? 아니면 기울어져 있습니까? 우리의 저울추가 균형을 이루거나 아니면 감사 쪽으로 기울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감사할 일들을 더 많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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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6일 주일 오후에 정선희 사모와 조원자 성도에게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 첫 번째 주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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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월)부터 7일(금)까지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제81기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참석하고 제자훈련의 열정을 전수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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