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26-34 씨를 뿌림과 같으니


이현주 목사님이 지은 [밥을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詩)가 있습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이현주 목사님의 시처럼 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기나긴 시간과 수많은 수고를 거쳐야 합니다. 옛 사람들은 쌀 미(米)자를 가르칠 때 八十八 (팔십팔/88)자가 합쳐져서 쌀 미자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쌀이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88번의 손길을 거쳤으니 소중하고 감사하게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4:26) 씨 중에서도 겨자씨 하나(막4:31)를 뿌림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실제로는 난초씨가 가장 작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당시에 가장 작은 씨로 알려진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하려면 씨가 작더라도 땅에 뿌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밭에 씨를 뿌릴 때 땅 속에 돌이 많다 보니 가래질을 하지 않고 나귀의 등 위에 씨앗 자루를 실고 구멍을 내어 씨를 뿌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내기를 할 때 씨앗(종자)을 소금물에 담가 소독하고 불린 다음 요즘에는 고운 흙을 넣은 모판에 뿌리고 논 한쪽에 물을 대주어 그 위에 올려놓고 비닐하우스로 덮어줍니다. 모가 싹이 트면 찬 공기에 적응하는 기간을 갖기 위해 점차적으로 비닐하우스를 걷어 주고 어느 정도 자라면 이양기로 모내기를 합니다. 모내기를 할 때는 줄을 맞추는데 통풍이 잘돼야 병충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모내기를 하기 전에 논에 밑거름을 주고 모내기를 하고 나서 적당하게 물을 대주고 모가 논에 뿌리를 내리면 웃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가끔씩 농약을 쳐줍니다. 그러면 모가 잘 자랍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면 농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4:27) 씨가 자라는 과정이 신비롭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농부가 모를 심고 물을 대주고 거름을 주면 모가 자라서 벼가 되고 벼 속에서 목이 올라오면서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태풍이 불어오면 벼가 수정이 안 돼 쭉정이가 됩니다. 사람이 지하수를 끌어와 물을 대주고 농약을 뿌려 병충해를 예방해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태풍을 막아 주시지 않으면 벼가 수정을 할 수 없고 햇빛을 적당하게 비춰주시지 않으면 벼가 토실토실하게 여물 수 없습니다. 농사도 사람이 짓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지으시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씨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복음을 가리킵니다. 농부는 씨가 작더라도 뿌려야 하듯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천국 시민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땅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리면 싹이 트듯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언젠가는 신앙의 싹이 트게 됩니다. 땅에 뿌려진 씨가 싹이 트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신비롭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가 너무 속을 썩이다 보니 마음을 잡으라고 교회로 보내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목을 매려다가 전도하러 온 교인이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느냐 안 전하느냐 이지 복음을 영접하고 거부하고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내심을 받아야 전파하고 전파해야 듣고 들어야 믿고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였습니다.(롬10:13-15) 사람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야 가문이 계승되듯이 전도자가 복음을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면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세상의 모든 풀보다 커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4:32) 겨자씨는 보통 1,2미터까지 자라는데 갈릴리 호수 주변에는 3미터까지도 자라고 어떤 것은 4,5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강가에 가보니 가느다란 갈대에 참새가 머물었는데 공중의 새들이 가느다란 겨자초 가지의 그늘에 깃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씨는 작지만 뿌리고 뿌리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자라면 엄청나게 커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욥기 8장 7절을 통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지만 나중에는 대단해 질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도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지금은 창대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12제자를 남기셨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12제자들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개신교인만 8억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체인구의 20%가 조금 안 돼는 9백만 명 정도가 개신교입니다. 겨자씨처럼 작았는데 겨자초처럼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자라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댄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4:29) 하나님은 요엘서 3장 13절을  통해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낫으로 벼를 벴지만 요즘은 콤바인으로 벼를 벱니다. 농부는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여가면 논에 물을 빼고 콤바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논바닥을 말립니다. 성경에서 추수 때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고 말씀합니다. 농부가 도끼질을 하여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베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농부의 아내가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천국)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웁니다.(지옥, 마3:10-13) 지금은 영적으로 추수 때입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심판 날은 가까웠는데 전도자는 적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꾼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마9:37-38) 우리는 추수할 일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농부처럼 씨가 작더라도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전도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싹이 트게 하십니다. 복음이 마음의 밭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것도 놀랍게 자라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또 전도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고구마 한 뿌리를 캐면 여러 뿌리가 나오듯이 연쇄적으로 확장돼 갑니다. 우리교회는 지금 겨자씨처럼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씨를 뿌린다면 가장 작은 겨자씨가 가장 큰 겨자초로 자라듯이 개척교회인 우리교회가 포항에서 제일가는 감리교회로 성장할 겁니다. 그날까지 저와 여러분은 땅에 씨를 뿌리는 농부가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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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성경이해 3
고든 웬함 지음, 박대영 옮김 / 성서유니온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학생과 평신도 리더들이 개론서로 사용하기 좋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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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17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바리새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산헤드린 공회는 종교재판을 담당했습니다.)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걸로 보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명망 높은 공회원이었고 예수님은 시골 출신의 순회설교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밤중에 찾아온 걸로 보아 그의 영적인 상태가 어두웠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체 높은 공회원이었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겁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요3:2)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니 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 이다.” 니고데모가 영적으로 어둡다는 것은 그의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랍비 그 이상인데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았습니다.(표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적을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모양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분이 궁금했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시지 않고 새로운 출생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요2: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라서 바리새인이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지 유대 민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아래로 태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거듭나야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했습니다.(요3:4)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는 거듭남을 육체적으로 한 번 더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남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요3:5-8)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내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을 각각 따로따로로 보면 물은 육체적인 탄생을 성령은 영적인 탄생을 의미하고, 물 즉 성령을 하나로 보면 성령으로 거듭남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6절과 8절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씀하시는 걸로 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사람을 만들지만 성령님은 사람을 교인으로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라는 육체적인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목사의 아들이라는 모태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이 불 때 소리는 들려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모르지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거듭나는 것도 신비로운 과정으로 결과를 통해서 식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바람이 부니 나뭇잎이 흔들렸고 성령님을 만나니 사람이 변했다고 알 뿐입니다. 그가 놀라워하였습니다.(요3:9)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는 영적인 출생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거듭남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땅의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셨습니다.(요3:10-12)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예수님은 그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설교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자 안타까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땅의 일 다시 말해 바람이 어디서 불며 어디로 가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 다시 말해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믿겠느냐며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하늘의 일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도 하늘의 일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가 잘 아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하늘의 일을 설명하셨습니다.(요3:13-17)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라 하늘의 일을 말씀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겁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유랑하고 있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하고 반역하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민21:4-9) 백성들이 회개하고 죄를 자복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대 위에 놋뱀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들이 놋뱀을 쳐다보자 살아났습니다. 하늘의 일은 이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겁니다. 그러면 불뱀에 물렸더라도 놋뱀을 보면 살듯이 죽을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다시 살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값비싼 선물을 주어도 아깝지 않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을 희생 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아드님을 믿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는 겁니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마음의 왕좌를 예수님에게 넘기는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요16:9) 우리가 믿지 않고 거부한다면 놋뱀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죽듯이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영접하면 영생하게 됩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이 살듯이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아드님을 통해서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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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설교 - 설교를 준비하고, 작성하고, 전달하는 실제적 지침서
테리 G. 카터 외 지음, 김창훈 옮김 / 성서유니온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성경적인 설교를 위해 날카로운 적용이전에 분명한 해석이 선행되야한다고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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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16 너희와 함께 하리니

저는 재작년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로마교황청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 보니 천장과 벽면에 그림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을 받아 4년 동안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 창조부터 노아의 방주까지 9가지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4번째 그림인 [아담의 창조]입니다. 벌거벗은 아담이 비스듬히 기대고 왼손을 구부정하게 뻗칩니다. 흰 수염을 흩날리는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 오른손을 힘차게 뻗칩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담의 손가락에 닿기도 전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하나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쳐다봅니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손끝으로 아담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그 생명의 기운이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아담을 만들어 생명의 기운인 성령님을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은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인 성령님이 임하셔야 생명력 있는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님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휘발유요, 마이크를 소리 나게 하고 실내를 환하게 밝히는 전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성령님에 관해 4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요한복음 14장 1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새번역은 변호해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으로, 공동번역은 협조자로 번역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난처할 때 변호해 주시고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리자입니다. 성령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하실 겁니다. 성령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14장 2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실 겁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실 겁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신학자들은 교인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작용을 조명이라고 합니다. 불을 켜야 방안이 환해지듯이 성령님이 조명해 주셔야 우리가 성경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도 가르치실 겁니다./

세 번째 약속은 15장 26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이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언하실 겁니다. 어떻게 증언할까요? 강에 돌을 던지면 물의 파장이 점점 퍼져나가듯이 제자들은 지금 있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지구촌 전체까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전파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준비시키시고, 복음을 이해시키시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증언하십니다. 성령님은 농부가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듯이 우리의 영혼을 갈아엎어서 복음이 싹 트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증언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증언하실 겁니다./

네 번째 약속은 16장 8절-11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 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 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 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새번역은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로, 공동번역은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지만 성령님은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실 겁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3:18)라는 것을 깨우치실 겁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실 겁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사탄이 이미 심판과 정죄를 받았다는 것을 깨우치실 겁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깨우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깨우치실 겁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증언하시고, 우리를 깨우치실 겁니다. 예수님은 지금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를 돌보시듯이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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