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7일(주일) 이동초등학교 4학년 김정민 어린이(2010-24)가 서영우 어린이의 인도로 출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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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13-35 눈이 밝아져

우리나라 격언 중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듯이 기대치가 크다보면 실망감도 커지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습니다. 국민들은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16강을 당연시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갤럽에서 여론 조사를 했더니 무려 93.2%가 16강 이상을 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기대가 커진 겁니다. 결과는 1승 1무 1패 조 3위로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컸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여론 조사를 했더니 78.9%가 16강 이상을 할 걸로 기대했습니다. 지난번보다는 기대가 낮아졌습니다. 다행히 1승 1무 1패 조 2위로 16강이 됐습니다. 기대는 항상 커지기 때문에 실망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축구 대표 팀에 기대를 걸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제자들은 장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되기는커녕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실망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돌아갑니다. 13-14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여기서 ‘그 날’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주일에 ‘그들 중 둘’은 예수님의 12제자 말고 다른 제자 두 명이 예루살렘에서 왼쪽으로 11km 떨어진 엠마오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들 중 둘이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는 두 제자는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부활주일 새벽에 여자 제자들이 무덤에 갔더니 예수님의 시신은 없어졌고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제자들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며 여자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자 제자들이 갔더니 시신을 쌓던 세마포는 있는데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졌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믿어봐야 별 볼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제자들은 출세하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듯이 우리도 교회를 섬기려고 다녀야 행복하게 됩니다. 대접을 받으려고 다녔다간 실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죄악 가운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교회에 다녀야 하겠습니다.

두 제자가 서로 이야기 하면서 걷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산속에 강도가 숨어있었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안전을 위해 무리를 지어 다녔습니다. 16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두 제자는 눈이 가리어져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두 제자는 눈은 있으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 신체적인 맹인이 아니라 신앙적인 맹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자기 욕심을 충족하려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이 목사가 되면 교인들을 낭떠러지로 이끌고 갑니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죽입니다.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이 장로가 되면 교회가 혼란스러워 집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을 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신앙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눈이 떠져야 섬기게 되고 섬겨야 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앙의 눈이 떠질까요?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셨습니다. 27절을 봉독합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두 제자는 설교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32절을 봉독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우리가 신앙의 눈이 떠지려면 첫째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다면 아직 신앙의 눈이 떠지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7절을 통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듯이 매일 말씀을 묵상한다면 신앙의 눈이 떠지게 됩니다.

두 제자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손님이 오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떡이 나오면 집주인이 기도를 하고 떼어주는데 이 날은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두 제자에게 떼어주셨습니다. 30-31절을 봉독합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성경에서 나오는 떡은 쌀로 만든 떡이 아니라 밀가루나 보리로 얇고 넓고 둥글게 만든 게 꼭 피자처럼 생겼습니다. 학자들은 이 날의 식사를 애찬식으로 봅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이 떠지려면 둘째 애찬식을 하며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친해지려면 같이 밥 먹으면 됩니다. 싫은 사람과는 같이 밥 먹기 싫잖아요?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 42절을 통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애찬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그냥 집에 가는 것 보다 애찬을 하면서 교제를 나누면 더 친해지게 되고 신앙의 눈도 더 빨리 떠지게 됩니다.

두 제자는 신앙의 눈이 떠진 다음 어떻게 했을까요? 두 제자는 위험을 무릎 쓰고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습니다. 35절을 봉독합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두 제자는 신앙의 눈이 떠져서 강도의 위험을 무릎 쓰고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습니다. 신앙의 눈이 떠진 사람은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누군가 복음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5절을 통해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신앙의 눈이 먼저 떠져야 합니다. 신앙의 눈은 말씀을 자꾸 들어야 떠지고 애찬을 자주 나눠야 떠집니다. 저는 말씀을 읽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집안은 할머니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별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다 학생 때는 안 다니다 청년 때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통성 기도하는 것이 어색해 밖으로 나가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땅콩을 먹으면서 고소한 땅콩을 먹으려면 딱딱한 껍질이 필요하듯이 교회에도 믿음이 있는 알곡 교인도 필요하고 저 같은 껍데기 교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기꺼이 껍데기 같은 교인이 되어 알곡 같은 교인들을 뒷받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믿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저는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을 원하시는 구나, 껍데기 같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알곡 같은 신앙생활을 원하시는 구나, 깨닫고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4장 12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의 신앙적인 눈을 뜨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하듯이 우리가 신앙이 튼튼해지려면 말씀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묵상훈련은 여러분이 날마다 먹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새가족 훈련은 여러분의 신앙을 튼튼하게 다지는 기초공사입니다. 제자훈련은 여러분의 신앙을 아름답게 수놓은 인테리어입니다. 우리 창대교인들은 묵상훈련과 새가족 훈련과 제자훈련을 통해 신앙의 눈이 떠져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전도자로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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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22:1-20 은금을 줄지라도
 

호주의 원주민들은 마법사가 저주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뒤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부두 죽음(Voodoo Death)'이라고 하는데 마법사가 저주해서 죽은 사람이 꽤 된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데 의사가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면 환자는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하는데 의사가 약을 처방하고 효과가 없을 거라고 말하면 실제로 차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말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부두 죽음이고 노시보 효과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말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하고 합니다.) 이 사실을 모압 왕 발락은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광야를 지나 요단 강 동편에 있는 모압 평야에 이르자 심히 두려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백성들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민22:3)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민 갔을 때는 인구가 70-75명이었는데 400-430년이 지나자 성인남자가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60만 3천 5백 5십 명이었습니다.(민1:46) 성인 남자 한 명당 아내가 있고 아이가 2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60만 곱하기 4하면 240만 명이 됩니다. 우리 집으로 가정하면 300만 명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히 미약했으나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도 지금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사방에 있는 먹을거리를 다 먹어치울까 걱정이 됐습니다.(민22:4) 옛날에 먹고 살기 힘들 시절에는 입 하나가 느는 것이 걱정거리였잖아요? 그래서 모압 왕 발락은 전쟁을 하면 모압이 불리하니까 브돌에 사는 예언자 발람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모압은 오늘날로 말하면 레바논이고 브돌은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이라크입니다. 거리로 환산하면 640km가 넘는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20km 정도가 되니까 굉장히 먼 거리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브돌 예언자 발람을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브돌 예언자 발람이 복을 빌면 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하여 모압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민22:6) 모압 왕 발락은 부두 죽음 다른 말로 하면 노시보 효과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여러분 혹시 장난으로라도 자녀에게 저주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저주가 내릴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브돌 예언자 발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믿는데 고고학자들이 발람이 실제 인물이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967년 ‘프랜켄’이 이끄는 네덜란드의 고고학 원정대가 ‘데이르 알라’라는 지역에서 회반죽으로 된 석고 조각 몇 점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발람이 밤중에 신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이웃이 기대하는 메시지가 아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과 과학이 상충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성경이 비과학적이 아니라 초과학적이라 과학이 성경의 기적들을 규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압 사신들은 ‘복채’를 가지고 브돌 예언자 발람에게 이르러 모압 왕 발락의 부탁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발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민22:8)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브돌 예언자 발람은 모압 사신들이 먼 길을 걸어서 왔으니 일단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시면 모압 사신들에게 통보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브돌 예언자 발람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설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발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했듯이 설교자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해서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민22:12) 이것은 중요한 말씀이니 함께 읽읍시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하나님은 발람에게 모압 사신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복을 받은 자'란 수동분사는 과거에 이미 ‘복을 받았던 자’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복을 받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복을 받을 수 있듯이 우리도 이미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복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과거에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복’(삼상7:12)을 받았고 하나님이 지금 나와 동행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복’(마1:23)을 받고 있고 나중에는 주님이 준비하신다는 ‘여호와 이레의 복(창22:14)’을 받을 줄 믿습니다.

모압 사신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모압 왕 발락은 더 높은 고관들과 더 많은 복채를 딸려 브돌 예언자 발람에게 보냈습니다.(민22:15) 발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발람이 사신들에게 말했습니다.(민2:18-19)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은 아무리 많은 은금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 전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브돌 예언자 발람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설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또 발견하게 됩니다. 발람이 하나님이 말씀을 가감해서 전하지 않았듯이 설교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 전하지 않아야 합니다. 금에 이물질이 혼합되면 그것은 순금이 아니듯이 설교에 자신의 생각이 가미되면 그것은 순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전하라는 것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은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모압 사신들과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신들이 다시 오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또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민22:20)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나님은 지난번에는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처럼 말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다 왜 다시 가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을 알면 브돌 예언자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며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발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했고 그것도 가감 없이 전했기 때문에 오늘날 설교자의 역할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른 본문에서는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아야 그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5-16절을 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발람이 불의의 삯을 사랑하여 모압 왕에게 갔기 때문에 그의 나귀가 미친 행동을 저지했다고 말씀합니다. 발람의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아선 것을 보고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잖아요? 이번에는 유다서 11절을 봅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친형제인 유다는 발람이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을 갔다고 말씀합니다. 발람의 가는 길은 잘못된 길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가서 처음과는 다르게 반전이 일어나는데 발람도 처음과는 다르게 반전이 일어났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발람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는데 신약성경은 발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구약성경과 구약성경이 다른 경우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조명아래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우선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왜 발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발람이 다시 물은 데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발람이 다시 묻자 그냥 마지못해 가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추정해 봅니다. 발람은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 은금이 탐이나 가도 되느냐고 다시 물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가라고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발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진실한 예언자였지만 나중에는 은금을 탐내다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브돌 예언자 발람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설교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발람이 진실한 예언자였지만 은금을 탐내 타락했듯이 저도 돈을 탐낸다면 타락하게 된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비단 저에게만 주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은금 때문에 실족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나서 은금을 감추었기 때문에 가족들과 몰살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은금을 숨겼기 때문에 부부가 같이 죽지 않았습니까? 돈은 우리가 사는데 꼭 필요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우리를 타락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선용하면 축복의 도구가 되지만 악용하면 파멸의 도구도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뚝이는 중심이 있기 때문에 흔들어도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돈을 인생의 중심으로 삼는다면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삼는다면 잠깐 흔들리더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발람처럼 처음에는 신실했지만 돈 때문에 나중에는 타락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삼아 물질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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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6일(화) 김수영 집사에게 구원상담을 하여 확신을 심어주었고 27일(수) 새가족 훈련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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