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3-35 눈이 밝아져

우리나라 격언 중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듯이 기대치가 크다보면 실망감도 커지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습니다. 국민들은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16강을 당연시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갤럽에서 여론 조사를 했더니 무려 93.2%가 16강 이상을 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기대가 커진 겁니다. 결과는 1승 1무 1패 조 3위로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컸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여론 조사를 했더니 78.9%가 16강 이상을 할 걸로 기대했습니다. 지난번보다는 기대가 낮아졌습니다. 다행히 1승 1무 1패 조 2위로 16강이 됐습니다. 기대는 항상 커지기 때문에 실망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축구 대표 팀에 기대를 걸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제자들은 장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되기는커녕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실망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돌아갑니다. 13-14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여기서 ‘그 날’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주일에 ‘그들 중 둘’은 예수님의 12제자 말고 다른 제자 두 명이 예루살렘에서 왼쪽으로 11km 떨어진 엠마오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들 중 둘이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는 두 제자는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부활주일 새벽에 여자 제자들이 무덤에 갔더니 예수님의 시신은 없어졌고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제자들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며 여자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자 제자들이 갔더니 시신을 쌓던 세마포는 있는데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졌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믿어봐야 별 볼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제자들은 출세하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듯이 우리도 교회를 섬기려고 다녀야 행복하게 됩니다. 대접을 받으려고 다녔다간 실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죄악 가운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교회에 다녀야 하겠습니다.

두 제자가 서로 이야기 하면서 걷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산속에 강도가 숨어있었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안전을 위해 무리를 지어 다녔습니다. 16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두 제자는 눈이 가리어져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두 제자는 눈은 있으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 신체적인 맹인이 아니라 신앙적인 맹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자기 욕심을 충족하려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이 목사가 되면 교인들을 낭떠러지로 이끌고 갑니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죽입니다. 신앙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이 장로가 되면 교회가 혼란스러워 집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을 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신앙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눈이 떠져야 섬기게 되고 섬겨야 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앙의 눈이 떠질까요?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셨습니다. 27절을 봉독합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두 제자는 설교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32절을 봉독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우리가 신앙의 눈이 떠지려면 첫째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다면 아직 신앙의 눈이 떠지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7절을 통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듯이 매일 말씀을 묵상한다면 신앙의 눈이 떠지게 됩니다.

두 제자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손님이 오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떡이 나오면 집주인이 기도를 하고 떼어주는데 이 날은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두 제자에게 떼어주셨습니다. 30-31절을 봉독합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성경에서 나오는 떡은 쌀로 만든 떡이 아니라 밀가루나 보리로 얇고 넓고 둥글게 만든 게 꼭 피자처럼 생겼습니다. 학자들은 이 날의 식사를 애찬식으로 봅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이 떠지려면 둘째 애찬식을 하며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친해지려면 같이 밥 먹으면 됩니다. 싫은 사람과는 같이 밥 먹기 싫잖아요?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 42절을 통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애찬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그냥 집에 가는 것 보다 애찬을 하면서 교제를 나누면 더 친해지게 되고 신앙의 눈도 더 빨리 떠지게 됩니다.

두 제자는 신앙의 눈이 떠진 다음 어떻게 했을까요? 두 제자는 위험을 무릎 쓰고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습니다. 35절을 봉독합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두 제자는 신앙의 눈이 떠져서 강도의 위험을 무릎 쓰고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했습니다. 신앙의 눈이 떠진 사람은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누군가 복음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5절을 통해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신앙의 눈이 먼저 떠져야 합니다. 신앙의 눈은 말씀을 자꾸 들어야 떠지고 애찬을 자주 나눠야 떠집니다. 저는 말씀을 읽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집안은 할머니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별로 믿음이 없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다 학생 때는 안 다니다 청년 때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통성 기도하는 것이 어색해 밖으로 나가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땅콩을 먹으면서 고소한 땅콩을 먹으려면 딱딱한 껍질이 필요하듯이 교회에도 믿음이 있는 알곡 교인도 필요하고 저 같은 껍데기 교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기꺼이 껍데기 같은 교인이 되어 알곡 같은 교인들을 뒷받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믿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저는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을 원하시는 구나, 껍데기 같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알곡 같은 신앙생활을 원하시는 구나, 깨닫고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4장 12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의 신앙적인 눈을 뜨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하듯이 우리가 신앙이 튼튼해지려면 말씀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묵상훈련은 여러분이 날마다 먹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새가족 훈련은 여러분의 신앙을 튼튼하게 다지는 기초공사입니다. 제자훈련은 여러분의 신앙을 아름답게 수놓은 인테리어입니다. 우리 창대교인들은 묵상훈련과 새가족 훈련과 제자훈련을 통해 신앙의 눈이 떠져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전도자로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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