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4:13-5:11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여러분 다미 선교회를 기억하십니까? 다미 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성도들은 하늘로 들림 받는다고 현혹하여 멀쩡한 사람들이 집을 팔거나 전세금을 빼서 바치고, 잘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한참 공부할 학생들이 가출하여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다미 선교회가 얼마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는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까지 했는데 휴거가 불발하자 기자들은 코미디라며 허탈해 했고 성도들은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서울지방 검찰청은 이장림을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고, 서울남부지방법원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과 2만 6천 달러 몰수 형을 선고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미 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자으로 국민들을 현혹했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잘못된 종말론으로 흔들렸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신앙생활하다 죽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죽으면 영생을 얻지 못할까요? 그것은 아니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를 궁금해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미 선교회가 말한 것처럼 어떤 특정한 날에 오실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질문을 받고 그 대답으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썼습니다. 신약성경의 ‘서’가 들어간 성경은 교회에 보낸 편지이거나 사도가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종말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신앙생활하다 죽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도 바울은 4장 13-14절을 통해 답변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사도 바울은 ‘자는 자들’이라고 말씀했는데 자는 자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합니다. 잠자는 사람은 다시 잠에서 깨어나듯이 교인들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곡하지만 교인들은 죽음은 잠깐의 이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에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별세하셨는데 장례식이 아니라 천국환송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은 죽더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다시 살아나고 지금은 헤어지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 때문에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도 예수님과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만나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를 궁금해 했는데 사도 바울은 5장 1-3절을 통해 답변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다.’고 말씀했는데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정확한 날짜와 시각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 지는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마24:36) 예수님도 모르는데 사람이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이단들의 요설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말씀을 ‘밤에 도둑 같이 온다.’고 비유합니다. 우리나라는 도둑이 낮에도 들어오지만 이스라엘은 밤에 흙벽을 뚫고 들어와 도둑질해 갔다고 합니다. 도둑은 괴도 루팽처럼 언제 도둑질하겠다고 통보하지 않고 갑자기 들어오듯이 예수님도 우리가 알지 못한 때에 갑자기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말씀을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이른다.’고 비유합니다. 요즘은 무통주사가 있어 산통을 거의 느끼지 않고도 출산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산통 때문에 초죽음을 당했습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려면 반드시 산통을 겪어야 하듯이 예수님도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그리고 반드시 재림하시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5장 6절을 통해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사도 바울은 잠은 밤에 자고 낮에는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그리고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에 집주인은 언제 도둑이 들어올지 몰라 언제나 집단속을 하듯이, 임신한 여자는 언제 아이를 낳을지 몰라 베넷 저고리를 비롯해 출산 준비물을 미리부터 준비해 놓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그리고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에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깨어 있는 거고 어떻게 하면 자고 있는 걸까요? 깨어 있는 거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이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겁니다.(마24:45)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는 겁니다. 주님이 갑자기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셔서 깨어 있는 성도를 보시면 어떠실까요? 흐뭇해하십니다. 주님은 깨어있는 성도를 칭찬하시고 더 많은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처럼 간식을 사갔는데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사장의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날 저녁 회식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깨어있는 것은 현재의 생활에 충실하면서 하늘나라 시민답게 사는 겁니다. 현재의 생활에 충실 하느라 하늘나라를 잊지도 말고 하늘나라를 생각하느라 생활을 외면하지도 말고 하늘과 땅을 조화시키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고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고 있는 거는 악하고 어리석어서 주님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지 않고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리는 겁니다. 동료를 때리는 것은 맡겨주신 사명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성도를 비난하는 겁니다.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은 직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세월을 허송하는 겁니다. 주님은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갑자기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셔서 자고 있는 성도를 꾸중하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이 기분이 좋아서 간식을 사갔는데 직원들이 농땡이를 치고 그제서 일하는 척 합니다. 사장의 마음이 탐탁지 않습니다. 봉급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달아납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목이 터져라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혹시 재림불감증에 걸리지는 않았습니까? 재림불감증에 걸리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지 않고(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동료를 때리고(성도를 비난하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낭비합니다.) 옛날엔 열심히 봉사했는데, 재림불감증이 걸려 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과거에 아무리 열심히 봉사했어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놀고 있으면 허사입니다. 과거의 수고가 감안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은 사골 곰탕이 아닙니다. 사골 곰탕도 어지간히 우려야 국물 맛이 나지 너무 우리면 맹탕이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으로 감당합시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서보다 더 많은 상급을 받읍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경각심을 갖게 하소서. 오실 때까지 직분을 감당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실 때에 기쁘게 맞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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