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1-11(3) 주가 쓰시겠다.


신약성경은 로마제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로마제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환영하기 위하여 몇 달 또는 몇 주 전부터 환영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개선장군이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를 타고 호위병에 둘러싸여 개선문으로 들어오면 로마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주피터 신전까지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과 화분이 장식되어 있었고, 꽃가루가 하늘에 흩날렸고 각종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장군 휘하의 군단병력이 오와 열을 맞추어 씩씩하게 행진했고, 전쟁터에서 빼앗은 갖가지 진귀한 전리품들이 햇볕에 반짝거렸고, 노예로 사용될 포로들이 힘없이 끌려왔습니다. 로마시민들은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을 보며 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초라한 입성행렬
개선장군의 환영행렬과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규모가 차이 났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으나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식은 몇 달 또는 몇 주 전부터 준비되었으나, 예수님의 환영식은 즉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개선장군은 화려하게 장식되고 잘 훈련된 백마를 탔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겉옷을 안장 삼아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 그것도 아주 볼품없는 새끼 나귀를 탔습니다./ 개선장군 곁에는 창검으로 무장한 호위병들이 둘러서 있었으나, 예수님 곁에는 지금은 신나 있지만 나중에는 도망칠 겁쟁이 제자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개선장군은 붉은 양탄자 위를 지나갔으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존경의 의미로 펼쳐 놓은 떨어지고 헤어진 겉옷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개선장군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과 화분이 장식되었고 꽃가루가 하늘에 흩날렸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으나,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귀한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기도 하였고 손으로 흔들기도 하였습니다./ 개선장군 뒤에는 진귀한 전리품이 실려 왔고 노예로 사용될 포로들이 끌려왔으나, 예수님 뒤에는 예루살렘에서 명절을 보내려는 시골 사람들이 앞서기도 하였고 뒤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입성행렬
그러나 개선장군의 환영행렬과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말을 탄 전쟁영웅을 환영하는 행사였습니다. 개선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적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습니다. 로마시민들의 환호 속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전쟁은 승리할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사람이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준비된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나귀를 탄 평화의 왕을 환영하는 행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슥9:9) 사람들의 찬송 속에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언된 행사였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화려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피를 묻힌 죽음의 행렬이었다면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초라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릴 생명의 행렬이었습니다./

입성행렬을 위하여 
예수님의 입성행렬을 위하여 숨은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전에 제자 둘을 보내시며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예수님은 제자 둘에게 새끼 나귀를 끌고 오라고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베다니 마을에 가 보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끼 나귀가 문 앞에 매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줄을 풀었더니 어떤 사람이 (누가복음 19장 33절을 보면 나귀 주인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주인은 나귀를 가져가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귀가 어디에 매여 있는지 주인이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시고 제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모두 나옵니다.(마21:1-11;눅19:28-40;요12:12-19)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나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귀를  빌려준 주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이 베다니 마을에 사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 집에 가끔 들려(요11:1)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전하셨기 때문에 한 번쯤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나귀 주인이 예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주가 쓰시겠다.’는 말에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선선히 내주었습니다. 고대시대에는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동물은 신성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민19:2;신21:3;삼상6:7)

주님은 주인이고 우리는 청지기
우리는 주가 쓰시겠다는 문장 중에서 ‘주’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주는 헬라어로 ‘퀴리오스’입니다. 주님은 주인이고 나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주인이고 나는 종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라는 뜻입니다. 나의 시간도 주님의 것이고 나의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가진 시간도 내 것이고 내가 가진 물질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만약 나귀 주인이 나귀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어주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나귀를 빌려서 타셨을 겁니다. 우리는 3절 하반 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난외주를 보면 ‘즉시 돌려보내리라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새번역에는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 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고 기록하였고, 공동번역 개정판은 “주님이 쓰신다 하고 곧 돌려보내실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놓으면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답니다. 물질을 내어 놓으면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답니다. 주님은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다 가 필요하시면 달라고 하시고 쓰시고 나면 다시 돌려주시겠답니다.

예전에는 시골에 수동식 우물펌프가 있었습니다. 물을 한 바가지 퍼 다가 안에 넣고 펌프질을 하면 우물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약 물이 아까워 한 바가지를 넣지 않는다면 우물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한 바가지의 물을 퍼 넣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귀하게 사용하시고 돌려주십니다. 나귀 주인이 새끼 나귀를 내주었을 때 주님은 영광스럽게 사용하시고 돌려주셨습니다. 소년이 도시락을 내주었을 때 주님은 성인남자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나 거두셨습니다. 성경에는 나귀를 빌려준 주인과 도시락을 제공한 소년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빈 공간에 우리들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할 때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반드시 돌려주실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만화 하늘에 속한 사람 윈
윈 형제.폴 해터웨이 지음, 김성겸 옮김, 리코 리벌 그림 / 홍성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하늘에 속한 사람 윈]을 읽은 독자라면 중국에서 일어난 엄청난 박해를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원작이 두꺼워 읽기 부담스런 독자들을 위해 만화로 나온 버전이다. 만화 버전은 원작이 글로 쓴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에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나도 아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신앙 생활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서 다니엘을 지켰듯이 우리도 지키시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물고기를 장시간 운반하기 위해 천적 물고기를 활어차에 넣는다는 예화가 생각났다. 적당한 고난은 우리를 정금처럼 단단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윈이 겪은 고난에 비해 우리가 겪는 고난은 얼마나 작은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신앙의 정결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블 FAQ - 성경을 공부할수록 궁금한 49가지
민영진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궁금한 내용이 너무 많다. 어떤 본문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어떤 본문은 하나님이 너무 가혹하다 싶고, 또 어떤 본문은 얼굴이 빨개져 도저히 물어볼 수도 없는 본문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목사님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목사님이라도 뾰족하게 답변하기 어렵고 하는 본문을 우리나라 최고의 구약학자인 민영진 박사가 골라내 [성경바로읽기]와 [바이블 FAQ]로 출판했다. 이 책은 [성경바로읽기]의 속편으로 독자가 질문하면 저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두 책을 같이 소개하는 이유는 속편에 없는 본문이 전편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간단하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는 "성경즐기기"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한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다빈치코드에 대한 논박도 있다. 저자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비유로 약은 생각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유를 나누라고 해석한다./ 요즘 정착된 주5일 근무제는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스라엘에서도 주5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귀띔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스적 사고에 물들어 노동의 중요성인 인식하지만 히브리적 사고인 휴식의 고귀성은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서 일한다고 알려준다. 쉬는 시간은 복 받은 시간이고 거룩한 시간이다. 휴식을 죄악시하면 안되겠다. 저자의 두 책은 성경을 오해한 독자들의 시각을 바로잡아 주는 귀중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묻고 답하는 예배학 Cafe - 성도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57가지 질문과 대답
조기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예배학에 관심이 많은데 마침 제임스 화이트 박사의 지도를 받은 조기연 교수가 예배학 카페를 펴내 출판되자 마자 구입하였다. 이 책은 예배학 분야를 성도들이 질문하면  저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묻고 답하는 가벼운 형식이지만 내용은 예배학 전문도서를 뺨칠 정도로 수준높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답에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진술들로 가득하다. 가장 이상적인 예배형식에서 저자는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에서 당시의 주일예배 순서를 찾아내 반드시 필요한 여섯 가지 순서를 제시한다./ 저자는 북미에서 공부했지만 서구교회 일변도의 예배학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예배갱신에 깊이 천착해 있다. 저자는 11시 주일낮예배를 드려야 대예배를 드린 걸로 아는 교인들에게 예배시간의 변천사를 다루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일이 중요하지 시간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예배를 몇 부로 나누어 드리는 대형교회 교인들이 솔깃할 내용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예배순서의 통일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배순서에는 신학적 의미가 담겼기 때문에 개교회에서 변형하지 말고 가급적 교파별로 통일된 예배형식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저자의 책은 예배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뚫어줄 '트레펑'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 14:28 말이 기적을 만든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듯이 말로 씨를 뿌리면 그 말대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부정적인 열매를 거두고, 긍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긍정적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13장과 14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없다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14:28) 새번역에는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이루어주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말한 대로 이루어주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을 통해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는 돋았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자 사람들이 영원토록 열매를 따 먹지 못한다고 저주하셨습니다. 다음 날 제자들은 길을 지나다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막11:22-23) 예수님은 누구든지 말한 대로 될 줄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들어주십니다. 말은 기적을 일으키는 배터리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말을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3장을 통해 베드로가 성전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말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앉은뱅이는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말씀합니다.(행3:6-7) 베드로는 돈은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으킬 수 있었듯이 우리ㄷ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보니 믿음의 말도 못합니다. 박필 목사님은 통영을 갔더니 바닷물을 방조제로 막고 덤프트럭으로 흙을 쏟아 부으니 육지가 됐다고 하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의 말을 부으면 믿어진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펄이 딱딱한 땅이 될 때까지-반신반의하던 생각이 확실한 믿음으로 바뀔 때까지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의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덤프트럭으로 흙을 쏟아 부어도 방조제들 터트리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더라도 불신의 말을 던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장을 통해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가랴 제사장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고 못 믿겠다고 말하자(눅1:18)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말을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불평하는 말을 던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14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던지 광야에서 죽는 게 좋았지 괜히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 칼에 쓰러지게 하고 처자가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원망하자, 하나님은 원망한 백성 중에 이십 세 이상은 광야에서 죽게 하셨고, 그들의 자녀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불신과 불평은 방조제를 터트리는 폭탄과 같습니다. 방조제가 터지면 흙과 돌이 바다 속으로 쓸려 들어가고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듯이, 우리들이 아무리 믿음의 말을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불신과 불평의 말을 하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이 기적을 일으키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첫째 시인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장을 통해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 성령님이 능력으로 아들을 낳는다고 말씀하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시인했습니다.(눅1:38) 그리하여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황수관 박사님은 이것을 ‘아멘 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멘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도 고쳐지고 어려운 위기도 극복됩니다. 둘째 고백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편 23편 1절을 통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왕궁에서 편하게 누워서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를 떠돌면서 쓴 시입니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먹을 것도 주셨고 잠잘 곳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셋째 선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잠언 6장 2절을 통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입으로 선포하면 얽히기도 하고 잡히기도 합니다. 풀리기도 하고 놓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선포한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십니다. 넷째 명령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통치할 권세를 위임 받았습니다. 교통경찰이 국가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차를 정차시킬 수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명령하는 말을 해야 할까요? 사탄과 싸울 때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태복음 4장을 통해 사탄이 시험을 해오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마4:10) 그러자 사탄은 물러가고 천사들이 시중들었다고 합니다. 사탄이 공격해 올 때 우리도 명령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낙심시키려는 마귀를, 우리 가정을 파괴하려는 마귀를, 우리 직장을 분열시키려는 마귀를, 우리 교회를 침체시키려는 마귀를 발로 차서 쫓아내야 하겠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가복음 4장을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가 잠기게 되자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 하라. 고요 하라.” 고 명령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막4:3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거지처럼 “해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 기도할 것이 아니라 왕자처럼 “할 지어다” 라고 명령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질병을 고칠 때도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가복음 1장을 통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자 그의 집으로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소녀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우리가 명령하면 병이 낫게 됩니다. 최근 신경의학계에선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치료에 적용하여 언어치료법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당뇨병 환자인 경우 “나의 혈당치는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고 말하면 정상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에게 언어치료법을 적용했더니 3주후 진통이 말끔히 사라졌고 암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합니다.(박필,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 32-33쪽) 우리나라는 과거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배고파 죽겠네.’ ‘아파 죽겠네.’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믿음의 말-우리 창대교회는 포항에서 제일가는 감리교회가 됩니다. 라고 선포하여 기적을 체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