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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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쓰여진 SF 소설의 유통기한은 얼마쯤 될까??
적어도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는 지금부터 수십년이 지나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더글라스 애덤스의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유머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범우주적 거대한 농담이라는 저자의 재기발랄한 문체를 읽고 있노라면 책을 보는 내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자포드 비블브락스, 트릴리안, 아서 덴트, 포드 프리펙스, 로봇 마빈 등의 별난 캐릭터들이 펼치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지만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이 모험담은 기본적으로 시니컬함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기만 하다.

'우울한' 로봇 마빈의 캐릭터는 압권인데 이 녀석의 우울함과 신경증은 인간의 그것을 초월한다. 그가 투덜대며 자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컴퓨터를 자살시키는 장면에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은하라는 광대한 세계를 여유롭게 유영하는 저자의 상상력 뿐 아니라 서양 문명에 대한 저자의 조롱과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을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솜씨가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우울할 때 읽어도 저자의 능글맞은 농담에 슬며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되어 올해 개봉한다고 하는데 책의 무한한 상상력과 유머를 어떻게 영화화 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아니, 이 책을 스크린으로 제대로 옮기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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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국사 - 반양장
케네스 O.모건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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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를 로마 시대부터 마거릿 대처 총리의 시대에 이르기 까지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인문학부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고, 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별 전문가들이 나누어서 저술했기 때문에 영국사에 관한한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역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결코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단지 영국사에 궁금증 때문에 책을 손에 들었다가는 730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의 분량과 흑백 삽화에 기가 질리고 말지도 모른다.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도판들이 구석 구석에 잘 배치되어 있고, 앙주가에서 하노버가에 이르기 까지 영국사를 이어온 군주들의 소개가 상세히 되어 있어서 번역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아키텐, 부르고뉴에 이르는 현재 프랑스 지역의 영토를 영국이 가졌다가 잃게 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백년전쟁, 앙주가와 랭커스터가의 왕권 다툼인 장미전쟁, 명예혁명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피로 얼룩진 왕과 의회의 투쟁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자국인이 쓴 자국사이다 보니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없었지만, 위대한 엘리자베스 여왕 신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만은 흥미로웠다. 이 책 한 권으로 지금의 합리적이고 보수적인 영국인을 만든 그들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저자와 번역자가 여러명이다 보니 역사에 대한 시각이 일관적이지는 못한 편이다. 게다가 통사의 성격을 가지는 책이기 때문에 시대순으로 사건들을 기술할 뿐 역사가의 관점이나 평가는 적어서 전공자가 아니면 지루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물론 역자들의 당초 취지대로 교과서로서 이용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 같긴 하다. 여러 명이 번역하긴 했지만 처음 우려와는 달리 꽤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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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타산지석 1
이식.전원경 지음 / 리수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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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명물 빨간색 2층 버스와 전통이 살아있는 왕실의 근위병 교대식, TV에 넘쳐나는 BBC의 사극과 다큐멘터리, 역사 서적이 소설만큼이나 인기가 있고, 인류 문화 유산으로 가득찬 대영박물관과 아름다운 회화 작품들이 유혹하는 내셔널 갤러리를 언제든 무료로 드나들 수 있으며, 화려한 뮤지컬의 세계가 펼쳐지는 웨스트앤드와 해리 포터와 호그와트의 마법 세계가 시작된 곳. 그곳이 바로 영국이다.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우며 번영했던 일은 둘째치고라도 나는 한반도만한 크기의 이 나라가 가지는 문화적 원동력이 다른 무엇보다도 부럽다. 영국이, 영국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잠깐이라도 엿보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들은 케임브리지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어찌보면 이방인의 눈으로 본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모습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본 영국과 영국인의 단면을 생활 속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쓸만큼만 벌어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가장 부러웠고, 근대화의 물결 속에 전통의 것을 거의 잃어버린 우리와 비교되는 옛것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이 인상적이었다. 블레어 총리가 취임한 직후 한동안 해외토픽을 장식했던 총리 공관의 고양이 이야기도 이 책에서 다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는 짤막하게 소개된 일화였지만 그 고양이로 인해 일희일비하는 영국 언론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 책을 통해 영국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겠지만 짧게나마 영국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한바탕 소나기 뒤에 싱그러운 비내음이 나는 케임브리지 거리를 걷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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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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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만 투박하고 어딘지 고집있어 보이는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책의 표지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이제부터 이런 조그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조용히 속삭이기만 할 뿐 아이는 앙다문 입을 좀처럼 벌이려 하지 않을 듯 하다.

첫 장은 왁자지껄한 첫 등교날의 풍경이다. 학교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딛는 1학년생들의 공포와 눈물이 뒤범벅된 첫날은 교사에게나 부모, 아이들 모두에게 무척 힘든 날이라는 것을 이 혼란스러운 교실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랬을까? 학교에 처음 가는 첫 날에 나도 이 아이들처럼 겁에 질린 얼굴로 금새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앉아 있었을까? 아이들 중에는 학교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도 있고,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울어대는 빈센토 같은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새학년 새학기로 이야기를 시작한 저자는 자신의 교사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어린 천사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닭장같은 교실에서 아이들의 이기심과 교사들의 잘못된 모습으로 좋지 않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펼쳐졌다. 한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 영혼들과 그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잃지 않는 나이 어린 여교사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선생님에게 어떻게든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 클레르가 마침내 작은 선물을 준비해와 기뻐할 때는 나도 클레르의 마음처럼 기뻤고, 힘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2마일이 넘는 등교길을 걸어다니는 앙드레가 비록 지각이지만 눈밭을 헤치고 발그레한 볼을 내밀며 교실로 들어설 때는 가슴이 뭉클해져버렸다.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 메데릭과 그런 아이에게 공감하는 18살의 어린 여교사의 모습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내 일상의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고, 어린 드미트리오프가 혼신을 다해 글씨를 쓸 때면 나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여러 이민자들로 뒤섞인 캐나다의 어려웠던 시기의 이야기지만 가브리엘 루아의 순수하고 맑은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그런 가난과 빈곤은 잊어버리는 듯 했다. 귀엽고 천친난만한 아이들은 그렇게...그렇게 수줍은 미소를 띄우며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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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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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운동은 중세 유럽의 가장 경이로운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을 뒤로 하고 충만한 신앙과 명예심에 휩싸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병사들과 기사들.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인 이 사건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유럽의 군소 영주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여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고자 주창하면서 시작된다. 전쟁의 후반기에는 교묘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얽히면서 십자군이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경악스러운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초창기 십자군 운동에 내재된 종교적 열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수차례의 십자군 운동 중 성공한 것은 1차 십자군 운동 뿐이다.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이끄는 십자군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라틴 왕국을 세우고 기독교 세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 세력이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술탄인 살라딘이 출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만다. 살라딘은 관대함과 뛰어남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서 시리아와 이집트로 분할되어 있던 아랍제국을 통일한다.

살라딘에게 라틴 왕국이 예루살렘마저 함락당하자 교황은 다시 한번 십자군 결성을 촉구한다. 이렇게 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저자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3차 십자군이 탄생되는 것이다. 3차 십자군의 중심 인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이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아들인 그는 사이가 나빴던 아버지와 전쟁을 하면서 일찍부터 그 용맹함을 떨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였다. 저자는 십자군 운동 자체 뿐 아니라 그 십자군을 결성한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전후 상황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들의 약혼녀였던 알레를 차지한 헨리2세와 엘레오노르의 갈등, 한때 연인이었던 리처드와 필리프의 갈등은 마치 소설을 보는 듯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리처드와 필리프에 대한 평가는 어느 쪽을 긍정적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저자는 기본적으로 리처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살라딘은 이 3차 십자군에게 초반에는 열세를 면치 못한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리처드의 용맹함과 살라딘 측의 내부 분열로 십자군은 주요 성지를 탈환하고 예루살렘을 목전에 두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와 잉글랜드 군의 갈등과 동생 존의 공공연한 왕위 찬탈 행동, 일찍 프랑스로 돌아가버린 필리프의 도발은 리처드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하고, 리처드는 귀환길에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드에게 감금되어 오딧세우스에 버금가는 전설을 남기게 된다.

리처드와 살라딘이 예의바르게 나누는 전쟁 중의 서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인물에 매력에 어느새 빠져들고 만다. 서구에서 전설적 인물이 된 리처드와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살라딘에 대해 저자는 전설을 한꺼풀 벗겨내어 이들의 인간적인 약점과 고뇌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용맹하지만 무모했던 리처드, 자비롭고 관대한 살라딘, 강인하고 현명한 엘레오노르, 교활하지만 외교력이 뛰어났던 필리프, 성전의 기치를 걸고 죽어간 수많은 기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피로 얼룩진 부질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과 고통들은 12세기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질 않은가.

저자는 그동안 서구의 시각으로만 조명되었던 십자군 운동을 유럽과 이슬람 양측 모두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때부터 시작된 아랍과 서구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어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이 이 땅을 물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목적이었겠지만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세월만큼의 원한으로 살육의 역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끊임없이 뉴스거리로 등장한다. 십자군 운동은 끝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지, 그 원한이 풀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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