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십자군 운동은 중세 유럽의 가장 경이로운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을 뒤로 하고 충만한 신앙과 명예심에 휩싸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병사들과 기사들.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인 이 사건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유럽의 군소 영주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여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고자 주창하면서 시작된다. 전쟁의 후반기에는 교묘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얽히면서 십자군이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경악스러운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초창기 십자군 운동에 내재된 종교적 열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수차례의 십자군 운동 중 성공한 것은 1차 십자군 운동 뿐이다.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이끄는 십자군은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라틴 왕국을 세우고 기독교 세계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 세력이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었고,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술탄인 살라딘이 출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만다. 살라딘은 관대함과 뛰어남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서 시리아와 이집트로 분할되어 있던 아랍제국을 통일한다.

살라딘에게 라틴 왕국이 예루살렘마저 함락당하자 교황은 다시 한번 십자군 결성을 촉구한다. 이렇게 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저자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3차 십자군이 탄생되는 것이다. 3차 십자군의 중심 인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이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의 아들인 그는 사이가 나빴던 아버지와 전쟁을 하면서 일찍부터 그 용맹함을 떨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였다. 저자는 십자군 운동 자체 뿐 아니라 그 십자군을 결성한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전후 상황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들의 약혼녀였던 알레를 차지한 헨리2세와 엘레오노르의 갈등, 한때 연인이었던 리처드와 필리프의 갈등은 마치 소설을 보는 듯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리처드와 필리프에 대한 평가는 어느 쪽을 긍정적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저자는 기본적으로 리처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살라딘은 이 3차 십자군에게 초반에는 열세를 면치 못한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리처드의 용맹함과 살라딘 측의 내부 분열로 십자군은 주요 성지를 탈환하고 예루살렘을 목전에 두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와 잉글랜드 군의 갈등과 동생 존의 공공연한 왕위 찬탈 행동, 일찍 프랑스로 돌아가버린 필리프의 도발은 리처드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지 못하고, 리처드는 귀환길에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드에게 감금되어 오딧세우스에 버금가는 전설을 남기게 된다.

리처드와 살라딘이 예의바르게 나누는 전쟁 중의 서신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인물에 매력에 어느새 빠져들고 만다. 서구에서 전설적 인물이 된 리처드와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살라딘에 대해 저자는 전설을 한꺼풀 벗겨내어 이들의 인간적인 약점과 고뇌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용맹하지만 무모했던 리처드, 자비롭고 관대한 살라딘, 강인하고 현명한 엘레오노르, 교활하지만 외교력이 뛰어났던 필리프, 성전의 기치를 걸고 죽어간 수많은 기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피로 얼룩진 부질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과 고통들은 12세기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질 않은가.

저자는 그동안 서구의 시각으로만 조명되었던 십자군 운동을 유럽과 이슬람 양측 모두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때부터 시작된 아랍과 서구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어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이 이 땅을 물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목적이었겠지만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세월만큼의 원한으로 살육의 역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끊임없이 뉴스거리로 등장한다. 십자군 운동은 끝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지, 그 원한이 풀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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