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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평점 :
그동안 현대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손쓸 방법이 없었던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DNA 구조를 밝혀내고, 효과적인 신약을 개발하고, 인간 복제에 이르기까지...그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저자는 외과의사로서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둔 현대 의학이 얼마나 '불확실성' 투성이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20대의 여성 환자 엘리노어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봉와직염으로 의심되는 바이러스성 염증을 가지고 응급실로 찾아온다. 누가 봐도 봉와직염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지만 저자는 봉와직염으로 확신하기를 주저한다. 며칠 전에 괴사로 인해 죽은 남자 환자의 경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봤을 때는 봉와직염 같았던 그 남자 환자가 사실은 괴사였고, 치료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의심 환자의 5%만이 괴사이고, 괴사인지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흉터가 남는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환자와 의사들 모두 망설인다. 결국 환자 보호자의 결단으로 조직검사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엘리노어는 봉와직염이 아닌 괴사라는 판정을 받는다.
사람의 장기 떼어내어 이식하고, 유전자 복제가 가능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의학의 현장에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무한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는 엘리노어 케이스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더라도 의사들은 오진의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엘리노어 케이스에서는 운이 좋았던 저자도 실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의사가 아무리 실력있고, 유능하다고 해도 의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똑같은 증상의 환자라도 나이와 환경, 증상의 경중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만큼 우리의 몸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사들의 이러한 고충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의사의 입장뿐만 아니라 환자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바라본 의학계의 현실에 더욱 공감이 가는 에세이였다. 레지던트들의 경험을 쌓기 위해 환자가 실습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의학계의 현실과 나쁜 의사가 되어 가는 유능한 의사들의 문제, 의사들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현대 의학이 가진 많은 문제점들을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의사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서비스에 무관심하고 불친절한 우리나라의 병원에 비해 의학계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하는 미국 의학계의 풍토가 마냥 부러웠던 점은 약간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