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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기 전엔 죽지마라 - 떠나라, 자전거 타고 지구 한바퀴 1
이시다 유스케 지음, 이성현 옮김 / 홍익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가 보기 전엔 죽지 마라'니. 도대체 어딜 가보기 전에 죽지 말라는 걸까.
저자는 잘 나가던 대기업 영업사원을 때려치고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 세계 일주를 감행한다. 알라스카에서 시작해서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인 우수아이아까지, 거기서 유럽으로 날아가서 유럽 대륙을 돌고, 모로코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까지, 그리고 다시 중동을 거쳐 아시아 대륙에 이르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는 꼬박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여행 루트를 세세히 기록한 책은 아니다. 7년간의 여행을 한 권의 책에 집어넣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런 기록은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 가이드북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신 저자는 세상을 돌면서 만난 사람들과 여행의 에피소드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이 농축된 경험담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무엇이 되었든 '세계 최고'를 찾겠다는 목표로 떠난 여행에서 저자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유적을 만난다. 유콘강, 오로라, 모뉴먼트밸리, 블랙 아프리카의 사바나, 피라미드, 그리고 저자가 세계 최고라고 느낀 티칼 유적지 등.
하지만 저자는 여행을 마치며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찾은 세계 최고는 자연이나 유적지가 아닌 바로 함께 살아숨쉬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신이 뛰어나서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루한 모습의 여행자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던 현지인들의 친절과 배려가 그 긴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었음을 고백한다.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든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해냈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마 혼자서 여행을 했다면 외롭고 심심한 여행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함께 자전거 바퀴를 굴리던 세이지, 기요타, 다케시, 준 등이 있어 이야기가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다. 결국 여행은 여행지의 추억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추억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 법이다. 자전거로 여행한 것도 대단하지만 현지 언어에 적응하고, 루어 낚시를 하고, 요리도 잘하는 저자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전거로 세계 일주도 할 수 없었겠지.
이 책은 부작용이 상당하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떠나고 싶게 만드는가 하면 기차나 버스로 여행하는 걸 시시하게 만든다. 우선 자전거부터 장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저자가 자전거 여행의 낭만 만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무방비 상태로 강도를 당하고, 쿠르드족으로 오인받아 총알받이가 될 뻔 하고, 엄청난 체력 소모를 견뎌내고, 말라리아를 극복해야 했던 경험담도 나온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추억만으로도 평생 만족스러울 것 같아 부럽기 그지 없다.
가 보기 전에 죽지 마라. 그래. 이 넓은 세상을 만나기 전에, 그 세상 속의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들을 만나보기 전에 죽지 마라. 용기를 가지고,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것에 미련을 버리고 떠나라고. 저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