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양장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신동욱 옮김 / 창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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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xus and the Olive Tree"(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이미 책이 나온지 수년이 되었고 발간당시 DJ정부때 수인이 된 사람이 옥중에서 감명깊게 읽었다고 매스컴을 타면서 더 유명해진 책. 그때는 한낱 저널리스트가 쓴 에세이 정도로 생각한데다 언론에서 부추기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혐오감으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큰 녀석이 참가하고 있는 토론회 모임에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도 원서로, 이 참에 큰 녀석과 눈높이도 맞추고 저널리스틱한 글을 통해 풍부한 교양을 쌓을 겸 도서관에서 번역서를 빌렸다. 그런데 그 두께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사전같은 두께에 800페이지에 한장이 모자라는 799페이지짜리 책이라니. 원서로는 500페이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데 국어의 표현이 많이 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떠한 내용인지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서문부터 읽고 들어가니 바로 20세기말부터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란다. 불과 얼마전에 읽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는 정반대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도래를 미래의 희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장하준 교수가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기본사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큰 녀석이 토론할 때 렉서스 이후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교재로 사용하면 아주 유용한 주장과 비판에 관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발간된 지 7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진행상황과 이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이나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이 너무 익숙해져 새로운 맛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산업의 등장과 이에 따른 전세계 국가간의 연계성 증대에 따른 미래의 전망 등은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한 듯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서평대로 세계화된 경제질서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창의적인 설명을 저널리스트의 술술 읽히는 문장과 흥미진진한 사례들이 책의 두께에도 질리지 않고 집중시켜 준다.

아둔함 때문에 책의 중간부분에 다다라서야 제목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끝부분에서 저자는 이 의미를 보다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래와 같은 사례를 통해서.

p.785. 세계화시대의 올리브 나무

그(배달업체의 흑인 남성)는 책을 상자 안에 되돌려넣으며 내게 이렇게 말을 붙였다. "흠, 그러니까 렉서스는 기술이며 컴퓨터 따위를 상징하는 말이군요?"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그리고 올리브타무는 공동체며 가정 등을 상징하는 거구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바로 이해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물어왔다. "그렇다면 말씀 좀 해보세요. 여기에서 하나님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 말입니다. 여기서 그는 어떤 존재인가요?"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따를 경우에만 모든 국가가 보다 부유해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전히 세계의 경찰이자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의 입장에서 본 세계화라는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래를 보는 눈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깊이 자극해주는 책이다. 더불어 대입 논술에서 모범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인용해야 할 부분들이 수두룩할 수도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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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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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읽고 알라딘서재를 가끔씩 돌아다니면서 수천개의 리뷰를 단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그 부지런함, 읽는 것 보다 기록으로 남기는 부지런함에 대해.

리뷰나 감상은 책을 읽은 직후에 쓰느게 가장 풍부하고 직관적인 느낌을 담을 수 있는 것 같은데 며칠 지나보면 전반적인 책에 대한 감상만 남을 뿐 구체적으로 얻은 것들을 되새기기가 참 어렵다.그러다 보면 무언가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의지나 자신감도 점차 사라지게 되고. 점덤 더 그 책에 대한 기억은 가물해진다.

지난 1년간 조선에 관한 책을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역사든 소설이든 "조선"을 배경으로 한 책이 가장 많이 출간되는 데다 역사에 관한 현존하는 기록은 조선이 대부분이라는 데 있겠지만, 참으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책들이 조선을 배경으로 쓰여지는 것 같다.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 역사사랑,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 모두 조선을 배경으로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을 참조한 소설이나 역사서가 아닌가.

강명관이 쓴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도 조선의 지독한 애서가, 다독가이자 박학한 지식인이자 교양인들을 뼈대로 쓰여진 책이다. 조선을 시작한 정도전부터 근대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신채호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종이나 정조, 박지원, 정약용 등의 실학자부터 다소 이름이 낮선 홍석주나 유만주에 이르기 까지 22명의 조선 지식인이 읽은 책이나 독서에 관한 열정이나 자세 등을 역사적 배경을 곁들여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높지않은 평가에 큰 기대를 품지않고 책을 샀지만 주말 이틀동안 지루한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독서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애서가 또는 장서가를 꿈꾸는 내게 책벌레라는 제목 자체가 어느정도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덕도 있을터이다.

몇가지 생각나는 것.

저자의 조선왕조나 왕에 대한 평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왕은 아무리 개혁적이라도 성리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체제를 흔드는 어떠한 저항도 허용치 않는다. 권력을 유지하는 한도내에서만 개혁적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조에 대해 두드러진다. 정조가 중국을 통해 서구문명이나 서적을 충분히 접했음에도 문체반정을 주도하고 정약용이나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는 무리들을 박해하는 것을 그 증거로 든다. 정조는 서양문물을 접했지만 이를 배척하고 더욱 굳건히 성리학 중심의 조선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같은 책에서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아마 여기서는 정조의 기독교도 박해가 노론과 소론, 또는 남인과의 권력투쟁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평가했던 것 같다.

또하나 저자는 모든 저자들의 새로운 사고나 사상은 책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지식이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결과로 인식한다. 특히 독창적인 글쓰기로 모두 인정하는 연암의 글조차 당시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에 있는 서점에서 들여온 최신 서적을 통해 접한 다양한 문체나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낸다. 물론 그럼에도 연암의 열하일기의 탁월성의 빛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인다.

이 책을 읽으면 조선 전기 또는 중기까지 조선이 얼마나 주자의 경전해석을 담은 주자대전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세계였는지, 책이라는 것이 주로 귀족들만이 접할 수 있는 얼마나 귀한 재산인지, 18세기가 되어서는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양명학, 고증학 등 중국의 다양한 사상을 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조선 최고의 장서가가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책읽는 사람들의 책을 대하는 자세나 책을 읽는 습관 등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며 그들의 책읽는 모습이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원하는 사람 대부분 적당한 가격에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특히 가난한 애서가이자 책벌레인 이덕무는 책을 빌려보는 일이 무척 많았든 듯 책을 빌리는 예의를 설교하고 있다. 어릴적 책이 별로 없어 세계명작 전집이 꽃혀 있는 친구의 서가를 보고 부러웠던 시절이 생각나 그 내용을 옮겨본다.

"책을 빌려주는 것의 기본정의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어 그 사람의 뜻과 사업을 키워주는 것은, 남에게 돈과 재물을 주어 그 곤궁과 굶주림을 구제해 주는 것과 같다." ... 하지만 남에게 책을 빌려주기를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남의 책이나 시문, 그림은 보고 난 뒤 빌려주기를 청할 것이며, 주인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억지로 빼앗아 소매 속에 넣고 일어나서는 안된다." .... 남의 책을 빌리면 정하게 읽거나 베끼고 기한 내에 돌려주어라. 기한을 넘기거나 주인이 독촉하는데도 돌려주지 않으면 안된다. 또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된다. 지켜야할 예의는 이것뿐이 아니다. 남의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책이나 장정이 안된 서화를 빌려서는 안된다. 완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이 손상될 수 있는 탓이다. 빌려준 사람에게 보답도 해야한다."(p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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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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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던 장하준 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중에서 내가 맨처음으로 산 책.  몇년간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그의 책이 이미 여러권 나온 데다 그의 화려한 학력과 명쾌한 분석과 거침없는 비판 덕분에 이미 매우 유명해진 모양이다. 처음에는 장하성과 혼동을 하기도 한 것 같다. 한국 경제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었기에. 

그동안 그가 쓴 책의 권수 등 무엇보다도 나를 압도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학자라는 사실이었다. 영국의 최고대학에서 동양인이 교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정운영 교수님의 칼럼집(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을 통해서였고, 10년 이상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핵심적인 경제학자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실상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보다는 그의 현재를 있게한 그의 이력이 더 궁금했다. 경제분야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고(이렇게 영어는 어느정도 극복대상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와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그의 천재성이나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된 것 같다)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학위와 함께 자리를 잡아 현재에 이른 듯하다. 물론 그 과정 사이사이에 그의 피나는 땀과 노력이 진하게 배어있었을 테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개방과 개혁을 강요하는 선진국들의 경제논리로 지난 20년간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도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대중적 비판서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몇권의 책(국가의 역할이나 사다리 걷어차기)이 학문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술술 읽히지 않는 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존의 이론체계를 집대성하면서도 일반인들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너무 술술 흥미롭게 읽혀 그의 책이 모두 그런지 알고 나중에 "국가의 역할"을 보면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선진국들의 과거 역사를 파헤치면서 그들도 했던 각종 보호주의 정책을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선전하는 그들의 신자유주의가 허구라는 것을 너무나 현실감있고 설득력있게 비판하기에 도대체 그의 사상적 근거가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분명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적 기반이 아닌데.

중간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보면서 그의 사상적 기반이 제도주의 경제학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10년쯤 전에는 제도주의 경제학과 관련해 잠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논리가 거의 그대로 이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제도주의 경제학에 대해 쉽게 이단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떤가? 꿩잡는게 매라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더욱 설득력있게 해낼 수만 있다면.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그리고 그가 영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은 영국인보다 그리고 영국인 경제학자보다 더 영국의 고전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박노자가 19세기 한국의 실학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읽으면서 어떻게 한국인인 나보다 더 해박한 지식에다 유려한 문체의 문장을 줄줄이 엮어낼 수 있는가하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과 같이 영국인들도 장하준을 볼 것 같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의 초기 저작에 나타난 경제현상을 사례를 든다. 우리가 모르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초기 저작의 내용을 파란눈을 가진 이방인이 인용한다고 생각해보라.

모름지기 아이를 키우려면 장하준 같은 아이를 만들지어다.

2008.1.22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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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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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가 쓴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내가 보려고 산 것도 아니고 딸 녀석이 친구가 재미있게 보았다고 사달라고 해서 산 책을.

녀석이 보고 나서 안방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것을 집어 들고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진도가 너무 느렸다. 전철 타는 시간 20분에 왕복으로 하루 50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웠다. 몇주전 술마시고 들어와 이른 시각부터 자다가 새벽에 몸과 머리가 불편해 깨었다가 다시 잠이 오지 않자 빠피용을 읽어 나갔다. 150페이지 정도를 읽고 이틀인가 뒤 대선일 즈음 밤에 끝을 낸 것 같다.

개미부터 시작한 그의 명성에 비하면 빠피용의 첫인상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특별한 복선이나 추리소설이 갖는 뒷부분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같은 것이 없이 서술형태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한 장이 끝나면 다음장에 대한 기대로 책을 놓을 수 없도록 하는 마력 같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읽기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할 정도는 아니다.

지구의 불안한 미래를 탈출하기 위해 140만명의 지구인을 태울 수 있는 우주선을 타고 세대를 이어가며 천년을 여행하며 새로운 지구를 찾아나선 사람들의 이야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지만 결국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과 인간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간다고 해결될 수는 없다는 주제같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활여건을 축소해 놓은 수십킬로미터 길이의 우주선 모양은 미래적이긴 하지만 그가 지주로 삼고 있다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오랫동안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멋진 풍자는 없는 것 같다.

그의 이전 소설들이 모두 이 정도라면 굳이 그것들을 애써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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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영어이야기
고종석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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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친구를 통해 학교 다닐 때부터 들었지만 볼수록 참 희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그 희한함은 그의 이력을 처음부터 제대로 알지 못하고 드문드문 그의 책을 읽어가면서 확인하게 된데서 오는 나의 혼동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겠다.

처음에는 우리글을 아주 유려하게 구사하는 토종으로 생각했는데, 언젠가 보니 떡하니 영어에 관한 책을 내놓지 않았는가. 다시 이력을 자세히 살피니 어릴적부터 영어에 한가닥 하는 재주를 뽐내고 있었고 그 결과 영자신문사 기자를 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럼 당연히 영어이야기를 엮을 경력과 경험은 인정될 듯 하다.

그런데 그 책의 체제를 보니 심상치 않다. 일주일을 구성하는 단어를 이용하여 끊없이 단어를 확대함으로써 단어공부뿐 아니라 그가 가진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을 함께 전파하고 있다. 그가 학창시절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그 영어책이 이 책의 구성과 유사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책을 보면 그 책이 연상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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