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던 장하준 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중에서 내가 맨처음으로 산 책.  몇년간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그의 책이 이미 여러권 나온 데다 그의 화려한 학력과 명쾌한 분석과 거침없는 비판 덕분에 이미 매우 유명해진 모양이다. 처음에는 장하성과 혼동을 하기도 한 것 같다. 한국 경제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었기에. 

그동안 그가 쓴 책의 권수 등 무엇보다도 나를 압도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학자라는 사실이었다. 영국의 최고대학에서 동양인이 교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정운영 교수님의 칼럼집(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을 통해서였고, 10년 이상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핵심적인 경제학자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미국에서 공부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실상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보다는 그의 현재를 있게한 그의 이력이 더 궁금했다. 경제분야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고(이렇게 영어는 어느정도 극복대상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와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그의 천재성이나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된 것 같다)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학위와 함께 자리를 잡아 현재에 이른 듯하다. 물론 그 과정 사이사이에 그의 피나는 땀과 노력이 진하게 배어있었을 테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개방과 개혁을 강요하는 선진국들의 경제논리로 지난 20년간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도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대중적 비판서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몇권의 책(국가의 역할이나 사다리 걷어차기)이 학문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술술 읽히지 않는 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존의 이론체계를 집대성하면서도 일반인들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너무 술술 흥미롭게 읽혀 그의 책이 모두 그런지 알고 나중에 "국가의 역할"을 보면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선진국들의 과거 역사를 파헤치면서 그들도 했던 각종 보호주의 정책을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선전하는 그들의 신자유주의가 허구라는 것을 너무나 현실감있고 설득력있게 비판하기에 도대체 그의 사상적 근거가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분명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적 기반이 아닌데.

중간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보면서 그의 사상적 기반이 제도주의 경제학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10년쯤 전에는 제도주의 경제학과 관련해 잠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논리가 거의 그대로 이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제도주의 경제학에 대해 쉽게 이단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떤가? 꿩잡는게 매라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더욱 설득력있게 해낼 수만 있다면.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그리고 그가 영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은 영국인보다 그리고 영국인 경제학자보다 더 영국의 고전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박노자가 19세기 한국의 실학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읽으면서 어떻게 한국인인 나보다 더 해박한 지식에다 유려한 문체의 문장을 줄줄이 엮어낼 수 있는가하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과 같이 영국인들도 장하준을 볼 것 같다. 예를 들어 장하준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의 초기 저작에 나타난 경제현상을 사례를 든다. 우리가 모르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초기 저작의 내용을 파란눈을 가진 이방인이 인용한다고 생각해보라.

모름지기 아이를 키우려면 장하준 같은 아이를 만들지어다.

2008.1.22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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