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er : 맥주 스타일 사전
김만제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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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가로운 저녁, 오빠랑 오랜만에 술이 땡긴다며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다가 맥주가 넘 맛있다며 다른 것들도 마셔보자며 슬슬 시동이 걸렸다. 편의점에 가서 수입맥주를 종류별로 사와서 신나게 마시다 결국은 둘다 취해 쓰러지고 말았던 일이 있다. 둘다 원래 술을 별로 즐기지 않았던 터라 맥주맛은 물론 브랜드도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처음으로 맥주가 맛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때부터 궁금해졌다. 맥주 맛이 종류별로 어떻게 다른지, 사람들이 국산맥주보다 수입맥주에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맥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건지 말이다. 그러던 차에 맥주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은 맥주 스타일 사전 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추석연휴 동안 즐겁게 읽었더니 덕분에 또 맥주가 땡긴다. 얼마전 마트에 가서 맥주를 박스채로 집에 사두었다는 건 비밀....

맥주 스타일 사전은 사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맥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맥주를 만드는 방법과 맛의 차이를 내는 재료들, 나라별로 유명한 맥주들과 그 공법들을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맥주들이 있다니 그림과 글로만 맥주 소개글들을 읽고 나니 그 맛이 더 궁금해진다. 내가 얼마 전 맛있다고 느꼈던 맥주는 클라우드kloud 맥주였다. 광고에서 물타지 않은 맥주라며 설현이 넘나 예쁘게 나와서 소개했던 맥주 소개를 보며 '그럼 다른 맥주는 다 물을 타는건가'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도 책을 통해 해소했다. 맥주의 기본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 4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재료들의 종류나 사용방법에 따라 맥주의 맛이 변화한다. 

홉은 식물의 한 종류인데 맥아가 내는 단맛을 잡아주고 맥주 특유의 씁쓸한 맛을 내게 해준다.  홉의 종류에 따라 맥주에 시트러스 하거나, 혹은 꽃이나 허브처럼 화사한 꽃향을 맥주에 입혀주기 때문에 홉의 종류는 맥주의 맛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맥주를 즐기는 전문가들일수록 홉이 많이 들어간 씁쓸한 맛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처음엔 입에 쓰게 느껴지지만 점점 그 맛에 중독되어 점점 더 강한맛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맥주 애호가들이 국내의 시중 맥주들을 두고 물탄 밍밍한 맛이라고 하나보다. 국내 맥주들이 거의 가볍고 라이트한 밍밍한 수준의 맥주를 만들어 내는 까닭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쉽고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맛이기 때문이란다. 거기다 원가 절감을 위해 맥주의 맥아 비율을 줄이고 곡물같은 다른 재료를 넣어서 만들고 거기에 물까지 섞기 때문에 맥주 애호가 입장에서는 더 맹물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국내 시장에도 몇 년전부터 변화가 불어와 100% 올몰트 all malt 맥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올몰트는 다른 곡물을 섞지 않고 100% 맥아로만 만들어진 맥주라고 한다. 물타지 않은 맥주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 같다. 그래서 인지 클라우드 맥주는 국내 맥주임에도 불구하고 편의점등에서도 수입 맥주와 가격대를 거의 나란히 하고 있는 편인듯 하다.  


맥주의 라이트한 맛을 최대한 살린 라거 맥주가 국내 맥주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도 맥주하면 보통은 이런 라이트한 라거맥주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한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각 나라의 특이한 맥주들을 찾아서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맥주 스타일 사전 에는 나라별, 종류별로 나눠서 수많은 맥주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쉬운 건 내가 아는 맥주의 종류가 별로 없다는 것인데 이건 내가 맥알못 이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가장 접하기 쉬운 대표적인 라거맥주인 버드와이저, 밀러, 하이네켄 같은 맥주들을 시작으로 점점 각국의 특이한 맥주들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해주고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지 여부까지 알려주기 때문에 소개를 보고 꼭 먹어보고 싶은 맥주는 세계  전문점에 가서 살짝 맛을 보면 될 듯하다. 



독일에 가면 맥주가 물보다 싸고, 거기 맥주의 맛은 우리나라 맥주에 비할바가 아니라고 하니 독일 맥주는 꼭 찾아서 먹어봐야겠다. 거기다 맥주병도 다들 얼마나 특이하고 예쁜지 맥주병을 종류별로 다 모아보고 싶은 소장욕구가 들기도 한다. 


미국 맥주 중에는 특이하게 맥주에 우유를 탄 종류도 있다고 한다. 레프트 핸드 밀크 스타우트는 마치 우유의 한 종류인 양 맥주병에 젖소가 그려져 있다. 휘핑크림이 올려진 커피나 초콜릿 티 같은 맛이 난다고 하는데 넘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긴 한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수입이 안된다고 한다. 이처럼 맥주 스타일 사전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종류의 맥주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나같은 맥알못도 자꾸만 술땡기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특히나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혹은 친구들 앞에서 나 맥주에 대해 이만큼이나 아는 사람이야 하고 잘난 척 좀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맥주관련 이야기만 조금 읽고 가서 친구들앞에 거드름 피우며 얘기해도 친구들은 '우와~ 잼있다' 하면서 들어주지 않을까? 

지나친 음주는 금물이지만 요렇게 보물찾기 식으로 신기한 맥주들을 하나씩 찾아서 맛보는 즐거움도 꽤 큰 즐거움일 것 같다. 조만간 세계맥주 전문점을 한번 들러야겠군..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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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 - 나를 위로하는 보드라운 시간
진고로호 지음 / 꼼지락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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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보드랍고 따뜻한 털이 사람에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는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지 않아도 집사의 기분이 우울해보이면 스윽 와서 골골송을 부르며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는 고양이는 그래서 모든 집사의 힐링의 존재요, 많은 사람들이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치는 이유이리라. 이 책의 저자는 고양이 다섯 마리와의 5묘한 동거를 귀여우면서도 아주 솔직한 그림과 함께 써낸 그림 에세이 이다. 고양이 밥값을 벌기위해 기꺼이 출근한다는 저자 진고로호는 이름만 보고 처음엔 일본인이거나 혹은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30대 여성이다.  퇴근하고 나서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사랑받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그녀는 회사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오늘도 고양이 밥값을 벌기위해 꿋꿋이 출근한다. 


아무리 고양이가 좋다지만 혼자서 다섯 마리나 키우는게 힘들지는 않을까. 진고로호는 처음에 고양이 두마리를 키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구조하거나 임보한 고양이를 맡게 됐다가 결국엔 엄청난 다묘 집사가 되었다. '나만 고양이 없어'가 유행어로 돌만큼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섯마리나 있는 고양이 부자인 저자는 의외로 고양이를 키우는 걸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양이의 귀여운 겉모습만 보고 키우기에는 생각보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뿜어대는 털, 각종 사료비와 병원비등 일상 생활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도 많고, 멀리 여행가는 것도 포기해야 할때가 많다.  나 또한 다림이를 키우고 나서 여행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빠른 시일 내에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여행만 겨우 다녀올 때가 많다. 더군다나 저자처럼 고양이가 많으면 맡길데가 마땅찮아서 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고양이 사랑은 눈물 겹도록 깊다. 회사에서 일을 할때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언제나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고양이들이 있는 집이다. 고양이들의 무한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크게 느낀다는 저자에게 약간은 짠한 마음도 들었다. 



저자는 자신을 새장에 길들여진 작은 새라고 표현하며 새장에 갖혀 살듯 직장에 계속 다니면 꾸준한 월급과 함께 바깥 위험도 사라지지만 영원히 날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면서 고양이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싶은 저자의 처절한 바람이 그림 에세이 전체에서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이제 이미 그림 에세이 까지 낸 현업 작가까지 된거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룬거 아닐까. 저자가 앞으로는 너무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하고 싶은거 하면서 꿈을 펼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 은 고양이와의 생활들이 너무 가감없이 드러나 있어서 섣부르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경고하는 느낌도 든다. 진고로호가 키우는 고양이 중 진고는 11년째 아무데나 오줌을 싸는 오줌싸개 고양이다. 화장실을 잘 가리기로 유명한 고양이가 아무데나 오줌을 싼다니, 덕분에 아직도 집에 카펫과 소파도 하나 못놔두고 산다고 한다. 고양이 소변은 냄새가 심하기로 유명한데 그걸 10년 넘게 감내하면서 살면서도 진고가 항상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염원하는 집사의 마음은 참 대단하고도 눈물 겹다.   고양이 때문에 얼굴에 상처가 생기거나, 고양이 목욕 시키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병원에 가게 되도 고양이 때문이 아니라 혼자 넘어졌다며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게 될까봐 걱정되서라고 말한다. 그만큼 모든 고양이에 대한 무한애정을 장착한 아름다운 사람이다. 

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 책을 읽으면서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그림 에세이는 보통 주인공을 미화해서 귀엽거나 개성있게 표현하는게 주로 많은데 여기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은 초등학생 그림처럼 지극히 평범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을 돼지코에 뚱뚱하고 평범하게 표현해 놓고, 자신은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고양이들은 한마리 한마리 다 털모양이 미세하게 다르고, 사람처럼 옷도 입고, 다양한 포즈에 표정도 다양하게 표현해놓았다. 고양이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것처럼 표현해놓은 것에서 고양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 하며 위로받는 보드라운 시간, 이 아름다운 시간을 통해 저자를 포함한 많은 집사들이 위로받길 바란다. 나 또한 매일 다림이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며 가슴 가득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받아 즐겁게 살아야 겠다. 

저자 진고로호씨, 앞으로도 오묘들과의 즐거운 동거생활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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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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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평받고 있는 드라마 사랑의 온도 원작 소설이다. 좋아하는 배우 서현진이 주인공으로 나오기에 첫방부터 보고 싶었지만 소설을 먼저 읽고 보고 싶어서 꾹 참고, 원작 소설부터 먼저 접했다. PC통신을 할때 적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니, 이야기의 배경도 꽤 예전이라 약간 올드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선 이런 얇은 소설로 어떻게 40부작 드라마를 이끌어갈까 싶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천천히 진행되다가 끝으로 갈수록 모든 일이 한꺼번에 밝혀지는 형식으로 소설보다는 시놉시스의 한 종류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적인 미학보다는 줄거리에 중점을 둔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드라마 작가인 주인공 이현수(제인)와 단짝 친구 홍아(우체통)는 PC통신 요리관련 동호회에서 착한 스프 온정선을 알게된다.  이들 친구 셋은 처음엔 아이디로 서로를 부르는 피상적인 관계였지만 자주 만나면서 서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되어간다. 정선은 현수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예쁘고 부잣집 딸로 태어나 자신감이 넘치는 홍아와 달리 스스로 여성적인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연애경험도 별로 없는 현수는 정선은 당연히 홍아를 좋아할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하지만 현수도 어느 순간 자신이 정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난생 처음으로 엄청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한번 용기를 내 정선에게 고백을 해보지만 정선은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그렇게 이들의 사랑의 엇갈림은 시작된다. 그 와중에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자 박정우는 지고지순하게 현수만을 사랑하는데, 현수에게는 오직 정선밖에 없다. 이들 사이의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이들의 사랑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사랑은 자기 자신이 심어놓은 환상을 먹고 자란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생각했던 그가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느꼈던 그가 아니다. 그저 내가 물주고 햇빛에 내놓고 키운 꽃 같은 존재다. 꽃은 원래 그대로인데 이름 붙이고 의미 붙이고 애착한 건 나다. 꽃이 내게 이름을 붙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뜻이었다. <p.180> 

사실 스토리로 따지면 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애정에만 초점이 맞춰진 아주 흔한 이야기라 소설보다는 드라마로 직접 주인공들의 얼굴 표정과 감정을 보면서 생생하게 느끼는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의 온도 작가가 원래 드라마 작가인 만큼 소설보다는 드라마로 극화했을 때 더 재미있을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나서 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소설의 등장인물에 실제 배우들의 얼굴이나 연기를 상상하며 읽었더니 드라마가 더 궁금해진다.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일 궁금해진 건, 정선이 가장 좋아한다는 양파스프 였다. 착한 스프의 그 스프가 양파스프라고 하는데,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스프라 레시피까지 찾아봤다. 소설의 원제는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인데 그는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소설에서 이미 엔딩까지 봐버린 터라 드라마를 보면 김이 샐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소설을 드라마로 어떻게 각색했을지 내 머릿속 상상 장면들과 비교해보면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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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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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심심치 않게 구매하곤 하지만, 시는 아직도 나에게 어렵기만한 영역이다. 어떻게 읽어야 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같은 요런 쿡 찌르는 제목은 안읽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구나 죽도록 인생이 싫은 날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세사르 바예호 의 이번 시선집은 오래전에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적이 있지만, 절판되고 나서 입소문 만으로 중고책 가격이 10만원을 호가할만큼 구하기 어려웠던 책이라고 한다. 첫번째 시선집이 나왔을 당시는 IMF쯤이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목으로 선정되었다는데, 이번에 나온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은 요즘 사람들의 속터지는 마음의 병을 대변한 제목일까? 제목만 봐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반전은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라는 시에도 희망적인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궁금한 분은 직접 읽어보시길ㅋ 어쨋듯 이번 시선집에는 예전 시선집에 있던 시에서 번역되지 않았던 시까지 추가로 더해서 더욱 풍성하게 나왔다고 하니 뭔지 몰라도 일단 소장각임은 분명한 듯 하다.

세사르 바예호 는 중남미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와 비견될 만큼 유명한 시인이지만, 아시아 쪽에서는 번역된 적이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인이다. 아시아 중에서는 그 당시 한국어가 최초의 번역이었다고 하니 왠지 뿌듯한 기분이다. 책에는 「검은전령」, 「트릴세」, 「인간의 노래」,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시집에 들어있는 시편들과 나머지 시들을 두루 모아 담았기에 시집치고 책도 꽤 두툼한 편이다. 


살다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 모르겠어.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 듯 … 모르겠어 

…중략

영혼의 구세주가 거꾸러지며 넘어지는 것. 
운명의 신이 저주하는 어떤 믿음이 넘어지는 것.
이 처절한 고통은 그리도 기다리던 빵이 
오븐 문 앞에서 타버릴 때 나는 소리. 
< 검은 전령 중 발췌 p.22>


살다보면 뒤통수를 치듯 아찔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시를 읽으니 어떤 믿음이 거꾸러지며 넘어지는 듯한 눈앞 캄캄한 충격을 받았던 상황이 떠오른다. 아무 생각도 안나고, 마냥 멍했던 시간들이었다. 시인이 말줄임표와 함께 '모르겠어' 라고 표현했을 만큼 뭐라 말이 안나오던 그런 상황들을 떠올리며 '그래 그랬지' 하며 읽어나갔다. 세사르 바예호는 종교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자신의 거듭된 불행에 슬퍼하며 신이 자신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며 무신론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불행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같은 이야기>라는 시에서 '나는 신이 아픈날 태어났다'며 시를 썼을까. 신이 잠시 딴데 정신을 판 사이에 자신의 삶이 진행되고 있다고 느낀걸까. 그만큼 시인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형! 오늘 난 툇마루에 앉아있어.
형이 여기 없으니까 너무 그리워.
이맘때면 장난을 쳤던 게 생각나. 엄마는 
우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지. "아이구, 얘들아…"

저녁 기도 전이면 
늘 술래잡기를 했듯 
지금은 내가 숨을 차례야. 형이 나를 찾지 못해야 하는데,
마루, 현관, 통로.
그 다음에는 형이 숨고, 나는 형을 찾지 못해야 해. 그 술래잡기에서 우리가 
울었던 게 생각이 나 

…중략

형! 너무 늦게까지 숨어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가 걱정하실 수 있잖아.
<나의 형 미겔에게 발췌 p.95> 


세사르 바예호는 어릴적 형을 잃고 누나를 읽고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슬픔과 외로움속에 살아간 인물이다. 어릴적 추억을 끝없이 되새기며 형에게 보내는 시는 어린아이의 언어라 더 슬프다. 형이랑 같이 술래잡기를 하고 싶은데 형이 없다. 얼마나 허전하고 슬플까. 어릴적 기억이 떠올랐다. TV를 보다가 당연히 뒤에 동생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동생한테 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디 가고 없는 날이었다. 그토록 자연스럽게 늘 옆에 있다고 생각했었다니,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에게 놀란 기억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파리에서 죽겠다.
그날이 어느 날인가는 이미 알고 있다.
파리에서 죽으리라. 피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오늘 같은 가을날 목요일일 거다.

오늘 같은 목요일일거다. 이 시를 쓰는 
이 목요일, 상박골이 아파오고 있는데,
내가 걸어온 이 길에서 오늘만큼 내가 
혼자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으니 말이다.
<흰 돌 위의 검은 돌 p. 200>


세사르 바예호 는 항상 외로웠고, 삶보다 죽음을 가깝게 생각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목요일에 죽겠다는 시처럼 시인은 실제로 목요일에 정신을 잃었고, 그 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고향인 페루에서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혔다가 결국엔 파리에서 외롭게 죽어간 시인. 그의 절망과 슬픔에 찬 시들을 보면 인생이 아무리 싫은 날이라도 어느정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인간은 나같은 절망을 겪는 사람에게서 더 큰 위안을 얻는 법이니까.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은 어느 날 기분이 정말 거지 같을 때 나와 같은 절망을 겪었던 사람을 느끼고 싶을 때 찬찬히 읽으며 위로를 얻으면 좋을 듯 하다. 

물론 시는 전체적으로 난해하기도 하고 어려운 시도 많다. 전문가들도 아직까지 이 시에 대해 연구와 토론을 거듭하며 분석할 거리가 많다고 할 만큼 쉽지 않긴 하지만, 적어도 읽다보면 내 마음을 긁어주는 시구는 발견하기 마련이다. 좋은 시는 노트에 적어두었다가 아주 인생이 싫은 어느 날 한 조각씩 꺼내먹으면 어떨까. 절망적인 시는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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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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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전쟁과학 이라고 하면 보통 총기, 미사일, 폭탄 등의 무기개발에 관한 것만 상상하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장 군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과학과 해법들, 저자 메리 로치는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무거운 이야기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전쟁 시 소음, 열기, 설사, 잠 등이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지 알지 못했고, 구더기가 상처치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 군인들에겐 다리가 날아가는것 만큼이나 생식기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어찌보면 광대한 '전쟁'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다루는 책이다. 

화이트는 39분동안 그 문제를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구급 헬기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거시기가 없어졌다면, 날 그냥 여기 놔두고 가.> 반쯤은 진지했지요. 아직 자식도 없거든요. 그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대원들은 그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대위님, 거시기는 괜찮다니까요> 하는 식이었지요.」  
< 전쟁에서 살아남기 p.91>

사람들은 사고로 다리가 날아간 군인에게 의족을 다는 것은 찬성하면서도, 생식기가 없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비뇨기과 의사들은 군인들의 생식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복구해 원래의 성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한다. 전쟁에서 살아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군인들에게 다리만큼 생식기도 중요한건 당연하다. 

군인들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뜨거운 태양과 습기때문에 열사병으로 쓰러질 확률도 있다. 4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매고 뜨거운 기온 속을 걷다보면 끝도 없이 땀이 난다. 사람은 생각보다 온도 조절을 위해 땀을 많이 흘린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간당 2킬로그램의 땀을 몇시간 동안 흘릴 수 있기에, 열기속에서 군인들은 하루에 10킬로그램의 땀을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많은 땀을 흘리고도 물을 제때 마시지 못하고 일을 계속 할 경우 허혈 증상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데, 이를 막기위해 과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군인들이 탈수증세 없이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1848년 멕시코 전쟁때 미국인 한명이 전투로 사망할 떄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는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거의 4배 더 많았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178> 

설사는 더 무섭다. 이질 같은 병은 화약이나 총알보다 병사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설사에 대한 연구를 위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남들이 꺼려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상처 부위의 옷을 제거하는 순간, 상처에 수많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에 나는 경악했다.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나는 서둘러서 이 끔찍해 보이는 생물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상처를 식염수로 씻자, 가장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 육아조직이 상처를 채우고 있었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208>

구더기는 죽은 고기나 썩어가는 고기를 먹고 사는데, 이 구더기들이 상처의 죽은 조직들을 먹어치움으로써 감염을 막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베어박사는 전쟁이 끝난 뒤 민간인 아이들에게 실험을 해본 후 그 실험이 성공적이자 본격적으로 파리 배양기를 만들어 구더기를 배양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전쟁에서 무기가 아닌 악취로 공격하는 방법도 있을까. 사람들이 무지 싫어할만한 화장실, 하수구, 썩은 내 등을 모아모아 사람들이 아주 불쾌해하는 악취수프를 만들어 적에게 공격하는 것이다. 그 냄새는 최소 2시간 동안 씻어도 없어지지 않고, 끔찍하게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냄새라는 것에도 맥락이라는 것이 있는지라 세계의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냄새가 어떠냐고 실험을 해보면, 그 악취를 맡고도 음식 냄새같다거나 향수 냄새 같아서 몸에 뿌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됐든 무기가 아닌 악취로 공격한다는 것은 총알이 오가는 전쟁통에서 그나마 애교있는 전술 아닐까. 

전쟁을 이런 식으로 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이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무기를 써서 말이다. 국가의 목표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도덕 방정식의 일부가 아니라면, 원자를 쪼개고 장갑을 뚫는 대신에 사기를 꺾는 방향으로 전력을 쏟아 부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악취 수프와 같은 애교 있는 범주에 속한 것이 또 있다. 라이트 패터슨 공군 기지의 물질 공학자 밥 크레인이 사막의 퐁풍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열린 비살상 무기 브레인스토미 회의에 참석하여 내놓은 안이다. 크레인은 자신의 착상에 맞는 상황을 제시한다. 적은 공격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보급선이 끊긴다. 그들은 굶주리고 외롭고 화가 치민다. 이제 아군이 비밀 무기를 꺼낸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갓 구운 빵 냄새다. 크레인은 미세 캠슐화 기술의 전문가다. 이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쓰이지만, 긁으면 향기가 나는 스티커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따라서 가루 형태의 미세한 알갱이에 냄새를 담은 뒤 전투원들이 잠자는 사이에 적 진영에 떨구는 것도 가능하다. 다음 날 그들이 미세 캡슐을 밟고 돌아다닐 때 캡슐이 깨지면서 냄새가 흘러나온다. 너무나 견디기 어렵다. 집이 그리워지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그들은 탈영하기로 마음 먹는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p.239>

책 내용이 다소 유머러스하게 쓰여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우리는 왜 계속 전쟁이란 걸 해야할까.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고 고통을 주면서 그 안에서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많은 기술들도 대부분은 전쟁 중에 발전된 기술이 많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전쟁에서 그들은 군인들에게 어떻게라도 살아남으라고,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아돌아왔으니 어떻게든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수많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궁극적으로는 전쟁 따위 이제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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