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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 이 시대엔 어떤 책이 가장 잘 팔릴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앞 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를 보고, 이 작가 아주 맘먹고 한방 제대로 날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앙리 픽 미스터리》의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어린 시절에는 책을 거의 읽은 적도 없고, 글을 쓴적도 거의 없었단다. 그는 열 여섯살에 늑막염에 걸려 수술 후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해 지내면서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문학소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오랜 습작을 거쳐 완성한 첫 소설 <백치의 반전>은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가 마침내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는데, 이후 그 소설은 프랑수아 모리아크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후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10위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유명작가가 된다.
드라마틱한 작가 자신의 경험처럼 이 소설에도 책에 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능수능란하게 펼쳐진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끝나가는게 아쉬워 '아껴읽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엄청난 가독성, 중간중간 등장하는 반가운 작가와 책에 대한 언급들, 속사정이 궁금한 출판사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깜찍한 소설의 결말까지 모든게 마음에 들었다. 재밌는 책을 발견했을 땐 이렇듯 작은 흥분과 함께 행복하단 생각까지 든다.
《앙리 픽 미스터리》는 브르타뉴 지역의 도서관 관장 구르벡이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모든 원고를 받아주는 도서관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미국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임신중절>에 나오는 도서관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실제로 미국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엔 책을 내고 싶어하는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모든 책이 출간될 수는 없는 법, 혹은 출간된다고 해도 인기를 얻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은 극소수일 뿐이다. 델핀은 수많은 작가들이 보내오는 원고를 읽으며 출간할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능력있는 편집자다. 그녀의 눈에 든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 있었으니, 프레드라는 작가 지망생의 <욕조>라는 작품이다. 그 둘은 편집자와 작가로 일 때문에 만나기 시작했지만, 곧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야심차게 출간한 프레드의 첫 소설 <욕조>는 무참히 폭망하게 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프레드와 함께 고향 브르타뉴에 휴가를 가서 다음 작품을 고민하게 되는데... 델핀과 프레드는 어느 날 동네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거절당한 책들이 모인 서가를 발견하고 둘러보다가 엄청나게 훌륭한 역작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저자가 평생 책을 읽은 적도, 글을 쓴 적도 없는 피자가게 주인 앙리 픽 이라는 점, 거기다 앙리픽은 2년전에 이미 죽었다. 대박작품이라는 걸 편집자의 촉으로 알아차린 델핀은 앙리 픽의 가족들을 찾아가 남편이 생전에 남긴 소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소설을 출간하게 된다. 그 책은 거절당한 책들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책이라는 사실과 함께, 피자집 주인의 숨겨둔 역작이라는 흥미로운 요소까지 더해져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일으키고, 전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다. 사람들은 앙리 픽이 도대체 누구인지, 언제 책을 썼는지에 관심이 쏠려 그의 아내와 딸까지 덩달아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유명세를 타게되고 점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앙리픽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평생 가족들에게 책 읽는 모습조차 보인 적이 없고, 메뉴판 글씨 조차 아내에게 쓰라고 했던 사람이 언제 러시아 작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섬세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숨겨진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게 되면 그 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원한다. 책 내용에서 어느 부분이 진짜일까, 저자의 실제 모습이 반영 되었을까 하는 질문들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다른 예술에 비해 문학에서는 끊임없이 사적인 근거를 추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의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을 빗대 '엠마가 바로 나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는 바로 나다'라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앙리 픽 미스터리 , p.71>
소설 속의 앙리 픽이 쓴 소설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에 열광한 사람들은 소설의 이야기에 열광한 것일까, 앙리 픽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열광한 것일까. 요즘 보통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을 보면 유명인이 추천한 책이라던지, 드라마에 표지가 등장한 책이라던지 뭔가 관심을 끄는 요소가 하나라도 있는 책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베스트 셀러들이 베스트 셀러인 이유는 베스트 셀러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현실에서 잘 모르는 무명 작가의 훌륭한 책을 찝어내기란 사실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출판계의 현실을 콕 찝어 아주 재미나고 유쾌한 미스터리로 풀어낸 이 소설이 그래서 너무 재밌었다. 책 속에 나오는 책들 <임신중절>이나 <HHhH> ,<2666> 같은 책도 더불어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