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5
제프리 초서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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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00여년 전 중세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600년, 길다면 길수도 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고작 600년밖에 안흘렀는데 벌써 이런 현대사회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 세월이다. 
영국 각지에서 캔터베리로 순례길에 오른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타바드 여관에서 만났다. 29명쯤의 무리가 모여 배부르게 밥도 먹고 만족스러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여관주인이 제안을 한다. 
"제가 재미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순례길에 오르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돌아가며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소? 그리고 가장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모두가 돈을 모아 축제를 벌여줍시다." 
여관주인의 제안에 모두들 동의하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자기가 아는 옛날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름하야, 중세 시대 순례길에 벌어진 토크배틀이다. 모인 사람들은 기사, 변호사, 청지기, 방앗간 주인, 신부, 의사에 이르기 까지 신분과 직업이 전부 제각각이다. 제프리 초서는 그 가운데 함께 순례길에 올라 직접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 처럼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옛날 옛적에' 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로 부터 차례대로 흘러 나온다. 우리가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가 바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캔터베리 이야기는 함께 순례길을 떠난 29명의 사람들이 펼쳐놓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이다. 하지만 본래는 한 사람당  순례길에 가는 동안 2개, 오는 동안 2개씩 이야기 하기로 되어있어 100개가 넘는 이야기가 담겨야 하지만 사실상 책에 담긴 이야기는 24개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미완성본으로 끝났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이야기가 뚝 끊기고 제프리 초서가 더이상 집필하지 않았다며 끝나는 이야기도 있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기에 쓰여졌기에 여러개의 필사본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아 이 책도 한 필사본을 가지고 번역하여 펴낸 것이라고 한다. 원문은 운문형식으로 각운을 살린 글로 쓰여져 있다고 하는데 그걸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여 운문의 맛을 살려내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이 책은 독자가 읽고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산문체로 쓰여져있다. 

기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계속해서 릴레이되는데, 이야기 속에도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생각이 녹아있어 각 사람이 이야기 할때마다 문체가 달라진다. 물론 이건 번역자가 그렇게 번역한거겠지만. 이야기를 읽으면서 '옛날 남자들은 참 금사빠였구나...' 또는 '옛날 여자들은 죄다 바람둥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르시테와 팔라몬은 둘도 없는 의형제인데 전쟁에서 지면서 감옥에 갖히게 된다. 감옥에 갖힌 그들은 우연히 궁전의 정원에서 돌아다니는 여인을 보고 보자마자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그 여인은 그 남자들이 있는지 조차 알지도 못하는데 그 남자둘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니 너는 넘보지 말라며 치고 박고 싸운다. 사랑때문에 둘이 싸우는 것을 알게된 궁전의 왕은 자기 감옥에 갖혀있던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둘에게 정식으로 결투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준다. 둘은 열심히 싸우고 아르시테가 결국은 승리하지만, 싸움이 끝난 후 아르시테는 말 때문에 부상을 당해 죽게 되고 결국엔 팔라몬이 여자를 차지하여 결혼하고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야기다ㅋㅋㅋ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좀 막장이다. 서양고전 도서이기에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오고갈 것 같지만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끼리 흥을 돋구기 위해 서로 주고 받는 희희낙낙 이야기이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가 요즘 보는 드라마를 형태만 바꿔 말로 주고 받는 식이라고나 할까. 

불륜과 바람피는 이야기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기도 하고,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베스의 여인은 자신이 5명의 남편을 어떻게 지배했는지 자랑하듯이 늘어놓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결을 지키지 않고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결혼을 할 것이며, 한꺼번에 2명의 남편을 가지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의 넘치는 패기, 머...멋있다. 

서양문학의 최고봉 자리를 가진 셰익스피어도 제프리 초서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제프리 초서가 현실과 인간성을 다루는 방법, 또 인생에 던지는 아이러니들을 이야기로 재미나게 풀어냈기에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러니'를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아 훌륭한 멋진 작품들을 많이 써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캔터베리 이야기는 제프리 초서가 세상을 떠난 1400년에 나온 작품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유럽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불린다고 한다. 고전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어렵지 않고, 막장스럽긴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심심할때마다 한 꼭지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새해엔 캔터베리 이야기로 서양고전 한번 도전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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