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에코의 글은 재미있는 듯하면서도 재미없기도 하다. 그냥 멍청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린다. 생각해보면 재미가 쏠쏠한데, 그냥 지나고 나면 그런가보다 하는 식이다.

동화에서도 역시 그런 모습이 배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들한테 읽어보라고 던져 주었더니 금방 다읽었다.

그래, 무엇이 가장 재미있던? 하고 물어보았다.

몰라..라는 대답이 나왔다.

재미없니? 하고 물었더니,

다 재미있어 라는 대답...

흠...

하긴 아토모가 부서질 때 중성자가 나와서 뭐 어떻게 된다던데, 하고 혼자 중얼거릴 때부터 약간 불안하기는 했다. 화성에 진짜로 물이 있나? 없다는 것 같았는데..할 때 생각했다. 음 어려운 문제군. 이게 러시아 글자야? 등등, 주변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역시 개가 우주에 나간 적이 있다던데 사실인가보군..하는 식이었다. 애초에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어려웠을까? 하지만 재미있다고 하지 않는가? 난 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세번째 이야기의 일부분을 옮겨 보겠다.

지구인이 우주에 어떤 난쟁이 별에 문명을 전파하러 갔다. 지구를 보여주며 자랑을 신나게 하려는 찰나

" 저것은 무엇입니까? 길 위에 길게 늘어서 있는 쇠로 만든 상자 같은 것들 말이에요."

"자동차라랍니다. 가장 멋진 발명품이지요.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아주 빨리 갈 때 이용합니다..."

"그런데 왜 움직이지 않아요?"

우주 탐험가가 당황해서 " 에, 보다시피,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종종 교통이 막히기도 하지요..."

" 그러면 길가에 누워 있는 다친 사람들은 뭡니까?"

"교통이 막히지 않을 때 너무 서둘러 달리다가 다친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지만, 이따금 사고가 나지요..."

"알겠어요. 저 상자들은 너무 많을 때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앞으로 갈 때는 사람들이 다치는군요. 안됐군요. 안됐어...."

 

 

에코다운 말이지 않은가? 

참, 그림이 제법 재미있다.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잘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미있는 착상인 것은 확실하다. 화가가 스스로 상징의 창조라고 했다는 데 그럴 듯하기도 하다. 우리 아이도 우주선을 신문지로, 글자로 표현한 것을 재미있다고 하는 걸 보니 아주 어려운 그림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충분히 즐길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말로 옮기기가 너무나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영어로 된 말장난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어떻게 해야 재미가 있을지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차피 불가능하니 영어표현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를 달라고 했다. 이미 나와 있는 완역본들 역시 그런 방법으로 옮겨져 있었다.

예를 들어 쥐가 "내 이야기는 길고도 슬퍼."라고 했을 때 앨리스가 "꼬리가 긴 건 맞는데 왜 슬퍼?"하는 부분이 있다.   뜬금없이 이야기가 길고 슬프다는데 꼬리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영어 'tale-이야기'와  'tail-꼬리'를 우리말로 옮기려니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가 되고 사오정 시리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재미난 사오정 시리즈는 차라리 재미라도 있지만.                                                                                                                                  

이런 영어의 말장난을  그대로 우리말로 써놓고 '이 부분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역주를 달면 한참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읽던 아이들이 과연 흥이 깨지지 않고 계속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야기-꼬리 정도는 약과였다. 쥐가 몸을 말리기에 가장 좋은 건조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면서 가목적어 'it'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난감했다. 역시 영어 그대로 옮기고 나서 "그것(it)이 뭔데?"하고 오리가 물으면 쥐가 동문서답을 하고 옮긴이주를 이용해 문법 강의를 해야 할 판이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대부분 그냥 대충 넘어가 버렸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햇살과 나무꾼'에서 처음 번역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내 친구 제니퍼>를 다듬고 있을 때였는데 나라는 화자가 제니퍼에게 재치있는 말장난을 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로는 'magic teacher? 'music teacher?'인데 우리말로 그대로 "마술 선생님? 음악 선생님?"하고 옮기고서 역주를 달았다. 그랬더니 열심히 지도해 주던 강무홍 선배가 "이게 말이 되느냐?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의식이 없느냐? 모름지기 우리말로도 의미가 통하면서 재미가 느껴져야 제대로 옮긴 것이 아니냐."며 야단을 쳤다.  나는 그 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내게 커다란 사명감이 생겼다. 언어의 맛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내 능력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지만 노력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결국 첫 말장난은 "마술 선생님? 미술 선생님?"으로 갔다.

지금은 내가 작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남편이다. 나처럼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 혼자서 이 작품을 옮겼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한 가지 말장난에 여러 날 밤을 고민해 가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위에서 언급한 두 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고도 슬픈 이야기지!"라고 하면 "꼬리가 길긴 기네. 그런데 꼬리가 왜 슬퍼?" 로 풀었고 가목적어 부분은 "감을 잡다"를 이용해 말장난을 살려 보았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을 두고 하는 말장난이었다. 'geology' 'seaology'는 어떡하고 'history'를 'mystery'로 장난쳐 놓은 것을 어떻게 할까? 오죽하면 남편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공모까지 했다. 과목 이름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말장난을 만들어 주면 후에 채택되는 학생은 나중에 책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입으로만 하는 말장난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말로 할 때는 뉘앙스가 살지만 글로 적어놓으면 맛이 전혀 살지 않았다. 다음에 혹시 고칠 기회가 있다면 더 고민을 해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작업을 열심히 했지만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말로는 어설프나마 말의 재미를 살리려고 한 것이 너무나 심하게 의역이 되어 원작과 차이가 나 버린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다. 비룡소 편집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고 여러 문제를 함께 의논했다. 하지만 결국 자꾸만 말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소신껏 작업을 했다. 영어의 맛을 알려면 영어로 읽는 수밖에는 없으니 번역은 최대한 우리말을 잘 살리기로.  

이 책의 옮긴이 말에도 언급했지만 앞으로도 모자란 부분을 계속해서 고치고 또 고치고 싶다. 비룡소 클래식이 가지고 있는 정신, 고전은 항상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그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정말 재미있는 책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님들의 많은 조언과 쓴말을 기대해 본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5-06-2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글을 읽어보니 번역을 하시는 분이신가봐요. 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영어의 말장난 식 대사는 번역의 묘미를 잘 살려야 그 재미가 있지요. 직역으로 번역해서 그 의도가 전혀 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글 잘 읽고 갑니다.(__)

운린현 2005-06-28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저도 세 아이의 엄마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올려놓으신 글 저도 잘 읽고 있답니다. 특히 데스페로, 학과 해오라기, 자가주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영엄마 2005-06-28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아이라 힘드신 점도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둘인데도 가끔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2005-06-28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28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당무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 홍당무를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홍당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저 그런 이야기로 생각하고 딱히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읽은 사람들이 하도 인상깊게 읽었다고 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그런 유명한 작품은 읽어야 하는데 하는 정도의 생각 뿐이었다.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비룡소 클래식에 있는 홍당무를 보고 우선 이 작품이 고전이라는 것에 놀랐다.  지금 나왔다 해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현대적이고 사실적이었다. 많은 어른들이 이런 작품은 아이들에게 읽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을 텐데도 역시 책의 힘은 위대하다. 처음 말괄량이 삐삐가 나왔을 때 그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되바라진 아이를 묘사하는 책을 보고 아이들이 절대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라며 한사코 읽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삐삐는 작가인 린드그렌을 아동 문학의 대가 자리에 앉혀 놓지 않았는가.

홍당무는 어린이 문학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놓지 않는다. 아이를 하나의 완성된 인물로 그리고 그의 삶과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이 문학이라 하여 추하고 힘든 부분은 덜 보여주고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런 작품에서 사랑을 얻고 교훈을 얻을 것 같지만 사실 자신들의 힘든 부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위로를 받는다. 주인공이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경우가 많다.

아동 학대는 매로 때리는 데서만 오는 게 아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언어 폭력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운 말만 적혀 있는 글로는 세상을 보여 줄 수 없다.  홍당무는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무시를 당하며 살지만 끝까지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고 순수함을 지켜나간다. 그 과정이 다른 이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더욱 미움을 타게 만들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억울한 경험을 할 때마다 홍당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홍당무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버티어 나갔어 라고.

아빠 르픽 씨에게 홍당무는 더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 죽겠을 때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은 엄마를 증오하는 것일 거다. 그 때 르픽 씨는 나라고 네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아느냐고 말한다. 그 말에 홍당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동 학대의 많은 부분이 친엄마에게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든 아이들을 홍당무가 대변하는 것 같았다. 또 일상이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어린이 독자는 자신이 가족에게서 사랑받는 엄청난 행운을 타고 난 것을 고맙게 여기지 않을까?

어떤 작품이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만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 문학은 어린이들이 읽고 감동을 받아야지 어른들이 재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홍당무를 읽은 아이들 중에 무슨 이런 작품이 다 있어 하고 던져 버릴 아이들도 있고 정말 특별한 책이라고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선택권쯤은 가져도 되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크면 이런 아이도 있단다 하며 꼭 보여주고 싶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래서 눈물이 나는 책을 너도 한 번 보렴 하고.  홍당무의 작가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이 글을 바쳤듯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살아있는 교육 13
윤태규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기 쓰기는 언제나 괴로움이라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일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멋진 책이다.

요즘에 초등학교의 강제적 일기검사가 인권침해라는 정당한 주장이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삶의 기록을 남기면서 인지적 정서적 기초체력을 형성해주는 일기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똑 같은 무게로 주장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기 쓰는 사람은 악해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새삼 감탄하면서 일기 쓰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만일 자녀나 학생들에게 과연 일기를 쓰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나, 어떻게 지도해야할 지 고민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이 일기지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반드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다. 세상에는 각자 전문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윤태규 선생님도 일기에 대해서는 거의 도가 통한 전문가임에 들림없다.  많이 읽어보시고 각자 자신에 맞게 적용해 보시길.

일기는 단지 글쓰기 연습이 아니지만 올바른 일기 쓰기는 엄청나게 교육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재미있다.

성석제식 입담이 절묘하게 풀어져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한 단순한 추억을 넘어선 성장소설로 읽힐 만하다.  기타 리에 얽힌 1부도 재미있지만 2부 진용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일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 느리게 가는 자가 진정 멀리가고 높이 간다는 진실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바보같이 살아가지만 천천히 살아가고 단순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이가 어쩌면 가장 튼튼한 기반을 갖추어 간다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정도면 읽을 만하다. 성장기 소설이 가지고 있는 약간 야한 구석이 있기 하지만 큰 부담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이 가진 맛이 역설과 반어가 절묘해서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작가일 것 같다는 사족도 하나 붙여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