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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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 홍당무를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홍당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저 그런 이야기로 생각하고 딱히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읽은 사람들이 하도 인상깊게 읽었다고 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그런 유명한 작품은 읽어야 하는데 하는 정도의 생각 뿐이었다.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비룡소 클래식에 있는 홍당무를 보고 우선 이 작품이 고전이라는 것에 놀랐다.  지금 나왔다 해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현대적이고 사실적이었다. 많은 어른들이 이런 작품은 아이들에게 읽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을 텐데도 역시 책의 힘은 위대하다. 처음 말괄량이 삐삐가 나왔을 때 그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되바라진 아이를 묘사하는 책을 보고 아이들이 절대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라며 한사코 읽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삐삐는 작가인 린드그렌을 아동 문학의 대가 자리에 앉혀 놓지 않았는가.

홍당무는 어린이 문학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놓지 않는다. 아이를 하나의 완성된 인물로 그리고 그의 삶과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이 문학이라 하여 추하고 힘든 부분은 덜 보여주고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런 작품에서 사랑을 얻고 교훈을 얻을 것 같지만 사실 자신들의 힘든 부분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위로를 받는다. 주인공이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경우가 많다.

아동 학대는 매로 때리는 데서만 오는 게 아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언어 폭력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운 말만 적혀 있는 글로는 세상을 보여 줄 수 없다.  홍당무는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무시를 당하며 살지만 끝까지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고 순수함을 지켜나간다. 그 과정이 다른 이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더욱 미움을 타게 만들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억울한 경험을 할 때마다 홍당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홍당무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버티어 나갔어 라고.

아빠 르픽 씨에게 홍당무는 더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어 죽겠을 때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은 엄마를 증오하는 것일 거다. 그 때 르픽 씨는 나라고 네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아느냐고 말한다. 그 말에 홍당무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동 학대의 많은 부분이 친엄마에게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든 아이들을 홍당무가 대변하는 것 같았다. 또 일상이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어린이 독자는 자신이 가족에게서 사랑받는 엄청난 행운을 타고 난 것을 고맙게 여기지 않을까?

어떤 작품이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만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 문학은 어린이들이 읽고 감동을 받아야지 어른들이 재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홍당무를 읽은 아이들 중에 무슨 이런 작품이 다 있어 하고 던져 버릴 아이들도 있고 정말 특별한 책이라고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선택권쯤은 가져도 되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크면 이런 아이도 있단다 하며 꼭 보여주고 싶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래서 눈물이 나는 책을 너도 한 번 보렴 하고.  홍당무의 작가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이 글을 바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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