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안하면 애 망친다는데...
[오마이뉴스 2004-07-26 11:10]
[오마이뉴스 이의준 기자]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에 전입해 온 후 첫 기말시험을 보았다. 과연 몇 등이나 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예전에는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옮겨와서 생긴 현상인데 학교가면 친구들이 모두 학원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친구네 집에 가도 친구엄마가 “너는 몇 등이냐, 과외는 어디서 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평소 아이들 교육에 대한 나의 신념이랄까 나의 생각은 과외를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부도 적성이 맞아야하니 크게 강요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중고교 시절 6년간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입시공부는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가끔 퇴근길에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꽤 늦은 시간임에도 학생들이 몰려나와 교문 앞에 늘어선 학원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럴 때 “나도 이렇게 피곤함을 느끼는 시간인데 이 아이들은 학원으로 가서 또 공부를 해야 하다니”하며 측은하다는 생각을 한다.
▲ 과외 대신에 TV 자리에 책 가득한 책장을 놓아주다.
ⓒ2004 이의준
모두가 경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과연 학교에서 끝나면 학원 가고 그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새벽에 나가는 생활로 청소년시절은 다 보내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생각은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아직까지 “신나게 놀 것, 그리고 공부할 것”이라고 배짱에 가까운 말을 해왔던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얼마나 갈까?
과외 안 하면 애 망친다?
최근 나의 생각을 흔드는 일이 생겼다. 큰아이가 학원에 보내달라고 보채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반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다. 아이를 달래보았다. “학원에 간다고 실력이 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성적 떨어지면 아빠가 책임져야 돼요”라며 응수했다.
우리 부부는 비상회의에 들어갔다. 아내는 “쟤 저러다 커서 부모 탓하는 것 아닐까! 다 간다는데 보내줍시다”라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아냐! 스스로 공부하는 게 최고야”라며 큰 소리는 쳤지만 역시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동네 아이의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주제는 과외공부로 접어들었다. 그 엄마는 자기 딸에게 제때에 과외공부를 시키지 못해 낭패를 봤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왜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데 안 보내느냐는 것이었다.
불안한 아내는 주변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는데 역시 반응은 같더라는 것이다. “공부 잘한다고 방심하면 안돼요. 다른 아이들은 가만 있나?”하며 불안감을 주는가 하면 “요새 민족사관고, 외고, 과학고 못 들어가면 별 볼일 없대요”라며 아예 학교를 거명하기도 하고 “똑똑한 애 바보 만들려나봐”하면서 과외 안 받으면 애 망친다는 식으로 말하더란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고민은 쌓여가고 자꾸 시간이 지나 방학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여러 가지 정황을 정리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보고 이에 답해보았다.
▲ 과외문제 고려사항(우리 집은 굵은 글씨에 해당)
ⓒ2004 이의준
그리고 내린 결론은 과외를 시키기보다 스스로 공부하도록 지도하고 모르는 것은 도와주기로 했다. 우리가 과외보다 우리 나름의 교육방식을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이가 셋이라 과외비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한 조사 결과 한 아이의 사교육비부담이 월 100만원 이상이 14.1%, 50만원 이상이 30%를 넘어섰다 한다. 봉급생활자에게 이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과외를 하지 않고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시민의 80% 이상이, 농어민들의 50% 이상이 과외를 시킨다고 하니 과외는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반면 전체의 8%가 학원 수강이나 과외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어 우리는 아이들을 이 범주에 넣어 보기로 했다.
세 번째, 주입식교육을 탈피하여 잘만 공부하면 장기적으로 유리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상급생들은 1인당 평균 3개 이상의 학원 수강 및 과외를 받는다고 하는데 과연 시간적으로 충분히 소화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계획을 스스로 짜서 하고 싶은 것과 취약한 부분에 집중하도록 유도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방침을 정하고 나서 틈틈이 아이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적당히 안내만 하되 필요시에만 적극적으로 지도하기로 했다. 아이들 스스로 월간, 주간, 하루의 계획을 짜도록 하고 몇 가지 당부를 하였다.
1) 학교 수업과 선생님을 최대한 활용하고
2) 친구들과 학습내용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3) 책을 많이 읽어 간접학습을 하게 하고
4) 놀 때는 신나게 놀되 TV와 컴퓨터는 1시간 이내에서 허용한다.
5) 정한 목표를 달성하며 자유시간을 늘리고 보상을 해주되 목표를 조금씩 높게 조정한다.
이러한 계획을 짜고 실천하도록 하는데까지 아이들을 설득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다. 과연 우리의 이러한 결정이 잘 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오가는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고 이를 자율적인 공부에 효과적으로 지원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우리 방식은 과외가 나쁘다거나 기피해야할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방식을 택해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고 과외의 압력과 학습 불안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다양한 학습의 형태를 잘 활용해서 획일화된 교육환경으로부터 부모들이 받는 중압감이 다소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이의준 기자
--------------------------------------------------------------------------------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이의준 기자는 사회혁신과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 주소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47&article_id=0000048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