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는 작업한 지 꽤 오래되었던 작품이다.

작업이 거의 끝나자 웅진에서 완역이 나왔고 원고를 넘기고서 한참 지난 후 시공에서 세라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묻혀지나 싶었는데 드디어 나왔다. 고전 시리즈에 맞게 고아한 문체로 번역해 보려 했었는데 그닥 잘 살리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당시 분위기와 만연체를 될 수 있으면 그대로 살리면서 세부적인 묘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었다. 우리말 고전번역의 수작으로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운영전'을 모델삼아 예스러운 분위기도 살려 보려 하긴 했는데...차라리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경쾌하게 전달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약간 건조한 느낌의 웅진판과 경쾌한 느낌의 시공판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독자도 있으리라. 여기서는 세라라는 익숙한 이름대신 '사라'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라에 대한 해석도 이전의 신데렐라형이라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로 해석했다. 그리고 강한 자의식과 함께 여린 감성이 결합된 평범한 아이가 시련 속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과정이 드러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움에 빠진 소녀가 상상의 힘으로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이겨내려는 것은 인간의 자긍심과 문학의 예술적 기능을 모두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사라는 문제가 없는 완벽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착한 아이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 기만에 빠진 공주병 환자는 더욱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가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지독한 오기로 견뎌나가는 성장기에 가깝다.

그래서 로마 공항에 내려선 성악가 조수미가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이라고 일기장에 썼을 때 소공녀를 떠올렸을 법하다고 생각해본다. 결국 조수미는 신이 내린 재능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소공녀의 사라도 그런 소녀였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는데....모두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얼마전에 작업한 작품.

'걱정많은 빌리' 정도가 원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빌리는 걱정이 정말 많은 아이..우리 주위에 이렇게 걱정이 많은 아이가 있다면 빌리가 사용한 방법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을 듯.

사실 아이들은 정말 걱정이 많다. 그 걱정많은 아이들을 다독여 주는 것은 부모님과 어른들의 몫...하지만 정말 어른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있기 마련.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빌리는 아주 오래된 인디언들의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역시 상상력이 없으면  활용할 수 없는 방법. 빌리의 걱정을 대신해 주는 인형들이 등장한다. 사라가 자기가 공주라고 상상하며 이겨내듯이, 파티와 난로를 상상하며 이겨내듯이 빌리도 자기를 도와주는 인형들을 생각하면서 편안함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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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9-1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겨주신 글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