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말로 옮기기가 너무나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영어로 된 말장난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어떻게 해야 재미가 있을지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차피 불가능하니 영어표현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를 달라고 했다. 이미 나와 있는 완역본들 역시 그런 방법으로 옮겨져 있었다.

예를 들어 쥐가 "내 이야기는 길고도 슬퍼."라고 했을 때 앨리스가 "꼬리가 긴 건 맞는데 왜 슬퍼?"하는 부분이 있다.   뜬금없이 이야기가 길고 슬프다는데 꼬리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영어 'tale-이야기'와  'tail-꼬리'를 우리말로 옮기려니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가 되고 사오정 시리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재미난 사오정 시리즈는 차라리 재미라도 있지만.                                                                                                                                  

이런 영어의 말장난을  그대로 우리말로 써놓고 '이 부분의 뜻은 이런 것입니다'라고  역주를 달면 한참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읽던 아이들이 과연 흥이 깨지지 않고 계속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야기-꼬리 정도는 약과였다. 쥐가 몸을 말리기에 가장 좋은 건조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면서 가목적어 'it'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난감했다. 역시 영어 그대로 옮기고 나서 "그것(it)이 뭔데?"하고 오리가 물으면 쥐가 동문서답을 하고 옮긴이주를 이용해 문법 강의를 해야 할 판이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대부분 그냥 대충 넘어가 버렸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햇살과 나무꾼'에서 처음 번역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내 친구 제니퍼>를 다듬고 있을 때였는데 나라는 화자가 제니퍼에게 재치있는 말장난을 하는 대목이 있다. 영어로는 'magic teacher? 'music teacher?'인데 우리말로 그대로 "마술 선생님? 음악 선생님?"하고 옮기고서 역주를 달았다. 그랬더니 열심히 지도해 주던 강무홍 선배가 "이게 말이 되느냐?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의식이 없느냐? 모름지기 우리말로도 의미가 통하면서 재미가 느껴져야 제대로 옮긴 것이 아니냐."며 야단을 쳤다.  나는 그 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내게 커다란 사명감이 생겼다. 언어의 맛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내 능력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지만 노력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결국 첫 말장난은 "마술 선생님? 미술 선생님?"으로 갔다.

지금은 내가 작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남편이다. 나처럼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 혼자서 이 작품을 옮겼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한 가지 말장난에 여러 날 밤을 고민해 가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위에서 언급한 두 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고도 슬픈 이야기지!"라고 하면 "꼬리가 길긴 기네. 그런데 꼬리가 왜 슬퍼?" 로 풀었고 가목적어 부분은 "감을 잡다"를 이용해 말장난을 살려 보았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을 두고 하는 말장난이었다. 'geology' 'seaology'는 어떡하고 'history'를 'mystery'로 장난쳐 놓은 것을 어떻게 할까? 오죽하면 남편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공모까지 했다. 과목 이름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말장난을 만들어 주면 후에 채택되는 학생은 나중에 책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입으로만 하는 말장난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말로 할 때는 뉘앙스가 살지만 글로 적어놓으면 맛이 전혀 살지 않았다. 다음에 혹시 고칠 기회가 있다면 더 고민을 해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작업을 열심히 했지만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우리말로는 어설프나마 말의 재미를 살리려고 한 것이 너무나 심하게 의역이 되어 원작과 차이가 나 버린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다. 비룡소 편집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고 여러 문제를 함께 의논했다. 하지만 결국 자꾸만 말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소신껏 작업을 했다. 영어의 맛을 알려면 영어로 읽는 수밖에는 없으니 번역은 최대한 우리말을 잘 살리기로.  

이 책의 옮긴이 말에도 언급했지만 앞으로도 모자란 부분을 계속해서 고치고 또 고치고 싶다. 비룡소 클래식이 가지고 있는 정신, 고전은 항상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그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정말 재미있는 책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님들의 많은 조언과 쓴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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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6-2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글을 읽어보니 번역을 하시는 분이신가봐요. 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영어의 말장난 식 대사는 번역의 묘미를 잘 살려야 그 재미가 있지요. 직역으로 번역해서 그 의도가 전혀 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글 잘 읽고 갑니다.(__)

운린현 2005-06-28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저도 세 아이의 엄마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올려놓으신 글 저도 잘 읽고 있답니다. 특히 데스페로, 학과 해오라기, 자가주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영엄마 2005-06-28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아이라 힘드신 점도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둘인데도 가끔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2005-06-28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28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