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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여행이야기
안홍기 지음 / 부표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안홍기 :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부표/ 총 263쪽)
간혹 그런 때가 있습니다. 책 곳곳에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는 듯 착각하게 되는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혼란은 혼동을 일으켜 내가 써놓은 게 아닌가, 의심이 되어서 자주 글쓴이의 활자로 박힌 이름 석 자를 확인하게 되는 책이 있습니다. 행복한 거죠. 그런 행복한 책을 부표 출판사에서 만들어냈습니다.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이하 <영화저편>)가 바로 그 책입니다. 여행정보와 감상에 균형을 잘 지켜낸 책. 그리고 영화 이야기가 담백하게 담긴 책. 사진이 아름다운 책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입니다. 책의 부제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여행이야기"가 책 전체를 잘 대변해 주는군요.
안홍기 씨는 떠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저 여행이 좋아서 떠난다. (...) 얻은 만큼 두고픈, 어떻게든 나의 한 부분을 그곳에 살게 하고 싶은 나의 객기(머리카락을 뽑아놓고 돌아온답니다.^^) (...) 때때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여행 이야기도 마치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기억에 관한 것이다. 나의 기억이 타인의 기억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이 나의 추억이 되기는 하는, 여행과 영화가 가지는 힘이리라.
이 책의 모든 여행과 영화는 한 줄이 될 수도 있다. (...) 한 줄이 되고도 남는 마음을 한숨처럼 술 한 잔에 내려놓기만 해도 족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안홍기 씨의 말씀처럼 '한 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먼저 훑어봤을 때 유독 사진에 눈이 끌립니다. 그래서 이름도 그렇고, 사진의 느낌도 있고 해서 저자가 남자일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틀렸더군요. '여자로서 여행하기'가 힘들다는 말씀에, 옆에 누군가 함께 있었나? 여동생에 호칭이 '언니'? 여성분의 책이라 여기니 존경이 샘솟더군요. 여자로서, 그 넓은 길을 걸었다 생각하니 존경스럽더군요. 하지만 존경해야 할 일은 성별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써내려가는 여정과 감상은 편협하지 않고 절제하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온화하고 깊고 따뜻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영화와 한 치 어그러짐 없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영화 저편>을 읽으면서 목마름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착각은 감동이겠죠.
"영화는 영화로 그냥 두는 편이 더 좋다. 내 여행을 하자." 누구나 사랑하게 된다는 도시, 파리에서 안홍기 씨는 현실과 이상의 벽을 인정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걷던 길을, 극적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에서의 우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피력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아멜리에>를, <비포 선라이즈>의 두 연인을 찾으려는 허망한 걸음 억누르고 그는 그의 여행에 몰두합니다. 이러한 고찰은 <여행 저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트에 옮겨 적다가 아예 책을 노트 삼기로 할 정도로 많은 말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 지는 해는 그들에게 슬픈 것이 아니라 편협한 관광객에게나 슬프다. 변변한 일거리 하나 갖지 못한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여행자에게나 슬픈 해다.(...) 부자의 여행자가 되기보다 긴 여정의 여행자이기를 선택한 나는 한 번도 나의 가난이 창피한 적이 없었다. 모두 함께 가난하면 가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난으로 지는 해는 슬프다. (...) 그들은 자신의 가난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고 웃는다. (...) 경제의 풍요가 만들어 낸 우습지도 않은 아이러니다. (...) 해가 지기 전에 (...) 동네를 나와야 했으므로,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여행자의 가련함이다. 허나 그들에게는 나도 부자였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저자는 이러한 감상을 털어놓는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으면서 그들과의 거리를 알맞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러브 인 아프리카>를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영화 <러브 인 아프리카>가 고마운 것은 아프리카를 전혀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저 바라볼 뿐이다. (...) 문제가 (...) 무겁지만 섣부른 결론을 도출하려 하지도 않는다. 모든 갈등의 화해는 초원이 대신해 준다."
이제는 <러브 인 아프리카>의 내용도 가물가물한 내게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한 영화평으로 짚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안홍기 씨의 약력을 살피게 되었다. 책표지에 있는 그의 사진, 아 이것이 그의 사진이구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 놓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의 주인공이 안홍기 씨이다. 그에를 선망하며 자주 이 책 <여행 저편>을 찾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저편>에서 소개해준 영화를 시간 나면 짬짬이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안홍기 씨의 영화평을 따라하며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왜 자꾸 떠나느냐고 묻는다. (...) 정말로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여행이 좋아서 간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 머리말 <타인의 기억으로 남기> 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