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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ㅣ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
파올라 라펠리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평점 :
파올라 라펠리 (하지은 옮김):
반 고흐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총 160쪽)
중학교 미술시간이었다. 내가 처음 고흐를 알게 된 것이 폐지했던 교복 입기가 다시금 실시되던 시대였다. 볕이 부드럽고 졸음이 오는 시간, 괴팍한 미술선생은 체육선생과의 염문을 뿌리며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 모른체하는지, 아니면 근거없는 이야기인지. 나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 그 미술선생이 먼저 생각난다. 손끝이 매워서 자주 매를 들던 미술선생은 고흐의 생애에 대해서 더없이 맛깔나는 수업을 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흐처럼 살고 싶다'
라는 생각 없는 생각을 했었다.
고흐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아마 주위사람들 갑갑증에 못 견뎌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날카로운 눈매는 무섭지만 본받을 만하다. 그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짚어낼 안목과 식견은 없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는 붓자국 하나하나가 주는 독특한 개성에 눈이 빨려들어가는 황홀을 경험하게 된다. 나를 보라, 내게로 오라. 고흐의 그림은 온몸으로 부르는 것 같다. 그러는 것 같다. 그의 작품에는 고흐는 없고 그림만이 존재한다. 그림을 모르는 터라 고흐의 여느 작품을 보더라도 고흐가 그렸겠다 추정하지 않고 그냥 말한다.
'참 신기한 그림이다. 날카로우면서, 둔탁한 느낌. 마치 붓자국 하나하나가 존엄성을 지닌 것 같다.'
'좋다.'
반 고흐 미술관은 마로니에북스의 세계미술관 기행 중 하나이다. 다른 미술관은 지명을 따 붙인 듯한데 반 고흐 미술관은 화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술관의 연역, 고흐의 생애, 고흐의 손에서 벗어난 작품들,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들을 우선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림 한편에 담긴 사연과 그림 내적인 설명에서 역사성까지. 아, 그래서 그렇구나. 익히 봐왔던 낯익은 그림들에 담긴 사연들과 그림 보는 법을 <반 고흐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왜 고흐의 작품들이 작가 사후 그토록 각광받는지, 고흐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세계미술관기행 <반 고흐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은 서문,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작품들, 미술관 안내, 화가 및 작품색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에 대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책이다. 미술관은 작품에 의해 위엄이 좌우된다. 그런 면에서 '반 고흐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미술관에 대해서 알아서 좋지만 일차적인 관심은 고흐와 그의 작품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테오에게(고흐의 동생). 지금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 그림들이 거기에 사용된 물감보다, 그리고 내 인생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현재 웃돈으로도 구입할 수 없는 많은 미술작품들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삶이 평온하지 못했다. 고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고흐의 삶이 순탄치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술가들의 삶이 대개 그러하듯 그의 고뇌는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왜 그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갔을까. 그것은, 그것이 고흐의 진실성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고흐의 모든 작품이 속물적인 잣대에 걸려 고가로 팔리고 있지만 과연 그의 그림을 소장한 사람들은 얼마나 고흐를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강인한 고흐의 갸날픈 감정이, 삶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는 작품 "꽃이 핀 아몬드 나뭇가지"가 <반 고흐 미술관>을 읽으면서 내게는 가슴 저미게 읽혔다. 귀를 자른 고흐로만, 괴팍한 예술가로만 기억되던 그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동생 테오의 아들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던 이 작품은 고흐의 다음 말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치롭다.
"(...) 너희 부부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하나 그리기 시작했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곷이 핀 굵은 아몬드 나뭇가지가 있는 그림이지... 평온한 마음과 안정적인 터치로 그랬어." 조카가 태어난 기쁨에서 고흐는 이 작품을 그랬다. 고흐는 이 작품을 연작으로 그리려고 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테오에게. 아몬드 나무의 꽃을 그리는 동안 몸이 안 좋았단다. 그림을 게속 그릴 수 있었다면 꽃이 피는 다른 나무도 그렸을 텐데. 이제 더 이상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는 없어. 나는 정말 운이 없다."
붓이 내동댕이쳐졌을 광경이 눈 앞에 선하다. 아니 붓에 앉았을 먼지가, 그 먼지 앉은 붓을 보는 힘없는 고흐의 눈이, 누운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눈 감는 순간까지도 고흐에게는 회한으로 남지 않았을까.
고흐의 많은 작품중에서 나는 새로이 "꽃이 핀 아몬드 나뭇가지"를 만났다. 분명 어느 책자에서 보았을 그림이다. 그렇지만 마로니에북스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내게로 왔고, 생명을 얻었다.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서, 나는 이 작품과 고흐의 눈물 사이에 붉은 밑줄을 그었다.
수업 절반 이상을 고흐에 할애한 그 여선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그림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새삼스레 그 사실이 그 여선생의 근황보다 더 궁금하다. 어째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제자에게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에게 "꽃이 핀 아몬드 나뭇가지"를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