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는 엄마 -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육아 코칭
이와이 도시노리, 시도 후지코 지음 / 파프리카(교문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총 191쪽)




    자녀를 양육할 때 양육자(주로 엄마)가 가져야 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관성이고, 다른 하나는 다정함입니다. (...) 일관성과 다정함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공감'을 이야기합니다. (...) 아이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이를 인정해주는 '가슴으로 공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 적극적인 관찰과 듣기입니다. (감수의 글, 가운데서)

 


    <들어주는 엄마>는 양육서이다. 일본에서 간행된 책을 우리말로 옮겨 편 번역서이다.  일본의 실용서는 필요한 알맹이만 간략하게 전달하는 강점이 있다.  물론 강점이 단점이 될 여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터이지만 <들어주는 엄마>이 가진 실용적인 측면은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임은 틀림없다.  <들어주는 엄마>는 '잘 듣는 법'을 강조하며 그에 따라 실생활에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즉 상담심리의 한 분야라 부를 수 있는 책이다.  말은 할 줄 알지만 말하는 법을 모르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유)은 부모에게 육아에 대한 목표를 심어주고, 용기와 자신감과 기쁨을 갖고 육아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다양한 사레를 소개함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육아법으로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머리말,가운데서)


 

   각 상황에는 적절한 대답이 있다.  대답은 다시 질문이 되어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곧잘 청자의 자세를 잊을 때가 많다.  말하는 사람, 상대방, <들어주는 엄마>에서는 아이의 위치보다는 청자, 양육자의 위치에 머물러 때때로 강압적인 답변을 해서 기껏 어렵게 운을 뗀 대화를 뭉개버리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이라 해도 책임은 피해가기 어렵다.  '공감'이야 말로 대화의 기본이다.  <들어주는 엄마>는 많은 사례와 말하는 법, 듣는 법을 제시하면서 아이가 얼마나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들어주는 엄마>의 집필 의도이기 때문이다.  


    '잘 듣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 (...) 첫째, 말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다. 둘째, 상대를 잘 관찰한다. 셋째, 상대가 편안히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프롤로그 '잘듣기란?'/ 29쪽)


    듣기'의 기본 조건으로 <들어주는 엄마>는 이 세 가지를 지켜달라 당부하고 있다.  <들어주는 엄마>는 이 3 조건의 기본을 기틀삼아 서술되고 있다. 다양한 사례와 상황 제시, 바람직한 모범 답변을 제공한다. <들어주는 엄마>의 큰 장점은 많은 사례와 대처법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고, 왜 그렇게 우리는 말을 배워야 하는가를 <들어주는 엄마>는 말하고 있다.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공감이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 공감과 바람직하지 않은 동정의 차이 (...) 아이가 뭔가를 해냈을 때 "그것봐! 하면 되잖아!"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표현에는 다소의 냉소가 섞여 있다. '하면'이라는 말에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자신을 바보 취급한다는 생각에 불쾌해지지는 않을까. (...) 가족이라고 해서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 (용기부여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104~106쪽)

 

     용기. <들어주는 엄마>는 적절한 행동을 아이가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아이는 의외로 빨리 자란다.  지금 당장은 아옹다옹 응응거리며 속을 뒤집어놓더라도 금방 자라 사람 구실을 한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덩치 어린 아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한 사람의 인격으로 아이를 대할 때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하게 되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고민하지 말기 바란다. (...)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문제에 집착해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해보자. 아이를 '자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면, 일단 냉정한 자신이 되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느껴보기 바란다. (...) 부모도 자식도 모두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 정말 좋은 엄마란 (...) 적당히 여유도 부리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가꿀 줄 아는 그런 엄마일 것이다. (고민은 상대와 나눌수록 줄어든다/ 171~175쪽)

    <들어주는 엄마>는 바람직한 양육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좋은 엄마, 부모의 철학적, 도리적 측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적인 상담과정보다 오히려 아이들과 직접 생활하는 양육자에게는 <들어주는 엄마>와 같은 실용서가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걱정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쉽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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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처방전 정신의학 -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 드리는
고시노 요시후미 지음, 황소연 옮김, 표진인 감수 / 전나무숲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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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총 253쪽 +)

 




    (...) 심장에 이상이 생기듯, 간에 이상이 생기듯 뇌에 이상이 생길수도 있으며, 뇌가 아파서 생기는 정신질환은 불치병이 아니라는 점,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하면 완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엑 친절하게 일깨워 주니(...)

(옮긴이의 글, 가운데서)

 

    (...)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이지만, 의외로 정신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본인이나 가족, 친척, 친구 등이 마음의 병을 앓을 때 치료가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의 글,가운데서)

 

    고시노 요시후미, 시노 야스시 공동저자로 <정신의학>은 씌어졌다. 정신병하면 우리는 보통 지랄병을 연상한다. 자연스럽다. 한국인들에게 어떤 욕이 감정을 긁어대기 알맞을까. 아무래도 "미친..."이 아닐까. 일본문화에서는 바가야로, 밥과 관련된 욕이 자제심을 마비시킨다고 들은 적이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아무래도 정신적인 측면과 관련해서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정신병은 천벌이요 환자의 가족은 천형을 치러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곤 했다. 시대가 바뀐 지금은 어떨까. 어쨌든 <정신의학>은 머리, 뇌를 다루고 있고 우리가 함부로, 그래서 무서워하는 정신질환자들을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뇌가 있다.

 

    <정신의학>은 친절한 설명과 '뇌철수'라는 가상의 인공두뇌를 등장시켜 뇌박사님과 함께 주고받는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간히 두 사람?의 대화가 어려울 생물학적 지식에서 숨통을 열어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대화는 주된 서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대화일 뿐인데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들에 활력을 더해준다는 것은, 사람이, 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대화는 '뇌', 그리고 이상병리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뇌'의 구조를 다루고 6개의 장을 통해서 뇌와 병, 치료법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신의학>은 마지막 부분에는 이 분야와 밀접한 직업들을 언급하면서 학생들에게는 향후 진로를, 일반대중에게는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범불안장애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질병이다. (...) 범불안장애의 불안은 특별한 이유나 특정한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문득 불안감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 아무리 '괜찮다'고 스스로를 타일러 보아도 통제불능이다.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면 그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걱정을 낳는다. (범불안장애/ 115~116쪽)

 

    남의 일 같지가 않다. ㅡ,.ㅡ 범불안장애를 설명하고 다음으로는 '치료'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설명하고 있다. 만약 '치료'부분이 없다면 중등교과에서 배우던 교육의 틀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의학>은 병리현상과 아울러 치료법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사례들을 들면서 이해를 돕고 있다. 범불안장애의 치료제는 'SSRI(약물)'를 이용한 치료라 한다.

 


오랫동안 지나친 불안과 걱정에 시달려  온 범불안장애 환자의 경우, 극심한 불안감을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며 질병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피곤한 성격이라고 자학하면서 생활의 반경도 점점 좁혀 간다. 결과적으로 생활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병적인 불안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범불안장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17쪽)

 

    올바른 지식이 중요하다. 병원 의료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믿어야 한다. 하지만 내 몸에서 일어나는 특이점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내 몸을 알 필요가 있다.  <정신의학>은 우리가 겪고 있는, 그러나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병의 원인, 치료법 들을 학문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뇌철수'와 '뇌박사'의 대화가 간간이 등장하면서 싱긋 웃게도 하지만 주된 내용은 묵직하다.  다소 어렵다고 느끼고 완독 후에도 뭘 읽었나 모를 정도로 난해한 어휘들이 언급되고 있다. <정신의학>은 가볍게 읽고 덮어둬도 괜찮을 책과는 그래서 차별화된 책이라 할 만하다. 내 몸의 일부, 그것도 가장 중요한 머릿속의 장기, 그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신의학>은 최대한 쉽게쉽게 설명하고자, 그렇게 읽는이와 만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건강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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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신문 큐브 타임즈, 특종을 잡아라!
김원섭.고선아 지음 / 살림어린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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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99쪽)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 사기 당하는 이야기이다. 기존적인 서사구조는 그렇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보면 재미난 과학적 상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읽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 신문이라 과학이 있어야지 당연한 소리를 한다 싶겠지만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즉 아이들이 어떻게 과학적 상식에 접근하기 좋겠는가, 저항 없이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가 <과학 신문, 큐브 타임즈...>(이하 '과학신문')이다. 당의정이라 한다. 달콤함을 덧씌워 꿀떡 삼키고 나면 속에서는 몸에 유익한 반응을 하는 약이 당의정이라 한다. <과학 신문>은 그렇다면 약물일까. 어쨌든 좋은 약물임에는 틀림없다.  처방전 대로 약을 제조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다음은 조심하십시오. 주의사항이다. 약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과학 신문> 역시 주의점이 필요하다. 

   <과학 신문>은 재미있다. 왜 이렇게 잘 읽히나,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 며칠 생각에 생각을 더해서 <과학 신문>을 다시 들춰 봤다. 과학 지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진범이 어떻게 잡힐까, 그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전세계에 있는 기자들이 큐빅 타임즈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큐빅 타임즈에서 일을 하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대우가 좋을 것이라는 그들의 짐작은 일면 현실성까지 띈다. 각국의 기자, 그들은 전자메일에 따라 움직인다. 가위바위보, OX퀴즈, 헤엄치기(ㅡ,.ㅡ) 등 사실상 보기 힘든 채용과정을 거쳐 최후 6인이 남는다. 서사구조는 흩어졌다, 모이고 흩어졌다 다시 모엿다가 흩어지는 방식으로 얼개가 짜여 있다. 그리고 4587 죄수의 면회 장면에서 다음 이야기가 있음을 암시하는 대화. 궁금하다. 어떻게 또 사기를 치고, 사기를 치는 과정에 재미난 상식을 풀어줄까. 궁금해 죽겠다. 

    나이먹은 난들 이런데 호기심에 눈빛 초롱한 아이들은 오죽할까. 다양한 집중력을 지닌 아이들, 즉 지속적으로 한데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함께 읽어주는 배려가 필요할 책이다. <과학 신문> 첫 의도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느낄 책 거부감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데에 있지 않을까. 마냥 신기해서 주위에 눈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에게 평면으로만 보이는 책은 사실 끔찍하다. 책 읽으면서 아이들도 그 나름으로 엄청난 인내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어른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인내심은, 사실 체감할 수 없다. 볼 것도 많고 따라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책은 아이들이 놀기에는 너무 좁고 답답하고, 갑갑한 놀이터일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서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말하자. 이 부분은 왜 이래서 이렇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아이들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말자. 무엇이 옳고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서지 않은 나이에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면 이 재미난 책에서도 집필의도와 다른 무언가를 아이들이 은연중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과학 신문>은 책도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이 책이 단순히 손바닥 몇 뼘 정도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책은 함께 읽는 것이다. 혼자 읽어내야 하는 과정이 있지만 책은 함께 읽는 것이다. 읽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다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치게 된다. <과학 신문>을 통해서 과학상식만을 획책하고자 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맹랑한 사기꾼의 행각을 지켜보는 것도 전부가 되기에는 좀 우습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또 왜 읽을면서 키득댈 수 있었는가. 책 읽는 동안 확고한 기준을 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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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걷다 - 비즈니스 정글을 정복한 호랑이들의 성공 법칙
프랭크 퍼니스 지음, 이정혜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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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 223쪽 )


    호랑이는 맹수다. 같은 호랑이끼리도 함께 걷지 않는, 독단자의 습성을 지닌 영물이다. 백 년 전 우리 문화에서는 호랑이를 신격화하기도, 아예 땅에 자빠뜨려 매치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에서는 친숙한 존재가 호랑이였다. 지금은 동물원 철창에 갇혀 사람 구경만 하는 녀석들, 그 호랑이가 맹수집단 경제계에서 다시 발견되고 있다. 그런 내용이 <호랑이와 걷다>이라고 하면 사기친다고 뭐라 할 것이다. 하지만 비슷하다. 우리가 아는 호랑이는 단순히 맹수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 사람들이 나약하고 지레 겁 먹어 호랑이를 신격화, 또는 친숙하게 여겼다고들 한다. 한마디로 알아서 기었다는 소리다. 그럴까? 그럴 수도 있겠지. 목숨이 중요하지... 이승의 똥밭에 구르는 것을 택하겠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전적으로 동감하지 못한다. 호랑이를 대하던 우리 선조의 생각은 참으로 기발하지 않은가. 포획의 대상으로 숨통을 끊어야 속이 후련한 서양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자연의 수확이 아니라 경쟁, 당신이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힌다는 생각은 시멘트 수풀에 밀도 있는 먼지층을 더해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선조를 존경하고, 동경하고, 기분이 좋다. 간밤에 호랑이 꿈을 꾸었으니, 우리 조상들의 마음씀이 얼마나 포근한지요. 다시금 느낀다. 

   자기계발서를 읽고는 이런 황당무계, 장광설을 펼치나. 그러나 <호랑이와 걷다>는 그러한 맥락에서 읽는다면 실업분야 권위자, 성공인들에게 호랑이라 이름을 하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자기계발서에서는 호랑이(CEO)를 단순히 맹수, 즉 인력, 인간을 절대권력으로 채용, 토사구팽으로 인간을 도구로 보지 않는다. 진정한 CEO의 자격조건이라 할까.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간혹 난감한 일들을 겪는다. 시장통에서도 그렇고 시외버스 터미널, 역 광장 주변에서 겪게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손님을 돈으로만 여긴다. 다시 오지도 않을 사람들, 잘해줘서 무슨 소용이냐. 불친절을 상덕(商德)으로 체득한 그들의 앞날은 뻔하다. 물론 장사 밑천을 완전 말아먹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시선은 당장 현실에만 고착되어 멀리 내일을 내다보지 못한다. CEO, 호랑이는 당연 우리가 바라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고 애쓰라 (201쪽)

    눈이 있어 보되 제대로 못 보는 사람. 누구라 할 것 없이 제대로 보고, 본 바를 배워 몸에 익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엄청난 주의집중과 참을성, 견딜성이 필요하다. 사람은 제 뜻대로 잘 안되면 울뚝밸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기자 들어엎어버리는 불뚝성을 잠시 누르고 사람을 보면 그에게서 미처 보지 못한 배울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배움에는 집중력(자각)이 우선됨은 물론이다. <호랑이와 걷다>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지,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 했는지 명심해야 한다. 멋진 책표지를 바르게 넘기면서 책읽는 이유를 순간 잊고 언급되는 사례에 정신을 놓으면 <호랑이와 걷다>의 좋은 점을 놓치기 십상이다. 나는 아무래도 <호랑이와 걷다>를 읽으면서 종종 삼천포로 빠졌다가 돌아오고 또 길을 읽고 했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호랑이가 되려다 호랑이 밥이 되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충고를 미리 해주고 싶다. <호랑이와 걷다>에서 언급되는 많은 이야기들은 성공사례이다. 아이의 성장, 다른 사람의 성공기는 읽는이에게 재미를 준다. 일차적인 재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읽는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업에 재능이 있어서 미다스 왕처럼 하는 일마다 성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부 자체를 창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셈인데, 이들은 손 대는 일마다 휘황찬란하게 빛낸다. 이들에게 사업은 기쁨이며, 그 기쁨을 기꺼이 사회 전체와 나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호랑이라고 부른다. (들어가는 말/ 9쪽)


   글쓴이는 호랑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부 자체를 창조'하는 것과 '사회 전체와 나눈다' 어느 문구에 집중을 하느냐에 따라 읽는이는 다른 시야를 맛볼 것이다. 앞서 언급한 터미널 식당주인은 아무래도 '부 자체를 창조'하는, 그러나 제 살 깎아 배불리는 부라고 부르고 싶다. '기꺼이 사회 전체와 나눈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CEO가 아닐까. 내가 잘해서 내가 번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한 고집스런 생각에는 여백이 없다. 

   나는 사무실의호랑이들을 몇 년 동안 관찰하면서, 비즈니스 세계의 호랑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 이 책은 조사의 결과물이다. 내가 발견한 호랑이들의 모든것을 이 책에 요약했다. 무엇이 그들을 비범하게 만드는가? (...)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특성들을 공식화해놓은 것일 뿐이다. 이 책의 도움으로 빠른 속도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적어도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말/ 10~ 11쪽]

    <호랑이와 걷다>는 즉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풍부한 사례들 뒤따라 정리를 해두고 있다. 이 정리들, 요약편들만으로도 <호랑이와 걷다>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고, 실천 방향을 얻게 된다. 모두 10개의 대단원으로 이루어진 <호랑이와 걷다>는 실제 행동하고, 사람을 관리하기까지의 전반의 행동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완독 후 정리편만을 따로 메모해 둘 정도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행동방침은 섬세하다. 게다가 각 단원 들머리에는 유명인?들의 격언, 명언들이 있어서 잠시 잠깐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의 시간을 누리게 된다.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지만 돛의 방향은 조종할 수 있다(조나단 스위프트)'. '호랑이'를 곁눈으로 봤다고 우리가 호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혹 능력 있고 천부의 기회를 억지스럽게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정말 호랑이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진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호랑이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람됨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호랑이와 걷다>에서 제공하는 많은 행동지침,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진정한 '호랑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 큰 돈을 벌고 싶어하는지, 주머니가 크고 통이 커서 욕심을 채우려는 심산이라면 이 시대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 우리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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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 정약용 시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0
정약용 지음, 최지녀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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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46쪽)

 

 


    귀한 책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들을 이렇게 만난다. 다산 선생의 유명세?에 비해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 문학, 비문학 전반에 다산 선생을 언급하는 문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써 다산 선생의 글을 찾아 읽지 않고는 게으름을 즐겨 피워댔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다산의 풍경>은 내게는 귀한 책이고, 다산 선생과의 첫 만남이며 또한 느긋이 읽을 수 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책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은 고요했다. 그렇다. 이 책은 심각하게 읽을 책이 아니다. 음미하고 시절 좋은(시국이 좋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봄바람을 벗삼아 책장을 넘겨도 좋을,  게다가 한시를 옮겨놓은 각각의 시편들은 우리말의 윤택한 사용을 보여주고 있어서 문장에 행복하고, 내용에서는 다산 선생의 진솔한 면모를 십분 누릴 수 있다.

 

   읽기에 앞서  <다산의 풍경>이 배려한 "정약용 연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산 선생의 생몰연대와 동시대 인물들, 그리고 다산 선생이 겪어야 했던 세파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책 읽기를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시집의 해설을 먼저 읽어보시라 또 부탁드리고 싶다. <다산의 풍경>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름 판단을 해서 그렇게 나는 읽고 우리말로 번역된 다산 선생의 시를 하나 한 편씩 읽기 시작했다. 색인, 연보, 해설 등 그렇게 <다산의 풍경>은 읽는이에게 많은 부분 세심한 배려를 쏟고 있다. 배려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옮긴 시편 각각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먼저 시제(詩題)를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 보기가 좋다. 달콤한 우리말, 문장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오염된 언어생활에 기갈 든 사람에게 해갈의 기회를 준다. 시제뿐 아니라 보디 다산 선생이 썼을 한시를 우리말로 풀어쓴 시편 아래에 그대로 옮겨놓은 점 또한 좋다. 원작을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할 능력이 없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능성의 시간, 언젠가,가 있다. 누구든 언젠가는 그러한 한시를 읽어낼 능력을 함양하여 다시 <다산의 풍경>을 집어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편의 말미에는 왜 이러한 시가 씌어졌고, 또 당시에 무슨 일이 있어는가, 또 옮겨쓴이의 감상까지 부연되고 있어서 다양한 책읽기를 누릴 수 있다.

 

   사람은 누구도 단독자가 될 수 없다. 다산 선생의 시편은 그러한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한다.  미시적으로는 한 가족 내에서 역할이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체감하게 된다. 아이였고 보호받아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양육하며 이끌어줄 때가 있는 것, 그것이 한울타리 가정이다. 가정이 확장되고 각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나라를 만든다.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더 나아가 '대자연 속의 나'는 또 무엇인가.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그러한 관계를 깨달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늘이 있어 내 머리를 들 수 있고

땅이 있어 발 디딜 수 있으며

물 있고 곡식 있어

그냥 배는 채울 수 있네.

("노래로 근심을 푸노라" 가운데서/ 56쪽)


 

    어렴풋이 이 시편은 정치적이겠구나, 다산 선생이 겪은 정치적 역경을 미루어 가며 읽어낸 시편이 <다산의 풍경> 전반부를 차지하는가 하면 후반부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다산의 풍경>은 제목에서 은근히 예상되듯이 다산 선생의 생활을 훔쳐보는, 그러면서 '나'와 연관해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글읽기란 내 일 아닌 것도 역시 내 일처럼 간절히 읽을 때 비로소 진정성을 얻지 않을까 싶다. <다산의 풍경>이 지금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영광과 굴욕이 한 그라로 결판나 (과거에 낙방하고/ 34쪽)

사관의 붓은 모름지기 사실을 밝히나니/ 어찌 맑고 흐림만 기록하겠나 (승정원에서/ 38쪽)

사물을 살필 때는 지극히 맑게/ 마음을 지킬 때는 지극히 공정하게 (과거 보는 선비들에게/ 40쪽]

내 스스로 바람을 따르지 않은 것이지 [사공의 탄식/ 96쪽)

처음 베를 짠 가난한 여인의 집엔/ 베틀 북에 넣을 실 한 가닥 남지 않았건만 (장인과 지녀/ 102쪽)

굶주림에 착한 마음을 잃어 (굶주리는 백성/ 108쪽)

귀한 양반 댁 부엌에서 술안주로 만드는데/(...)/ 캐려다간 솜씨 좋은 사람도 죽고 만다오 (해녀/ 111쪽)

땔나무 아끼려 찬밥을 먹기도 하고 (소나무 없애는 승려/ 120쪽)


 

    다산 선생의 시선은 세태풍자에서 우선 빛을 발한다고 일컫고 있다. 물론 그러한 시편들 역시 사회성을 짙게 띄고 있고, 전제해서 읽게 되는 것은 그가 정치인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삼정의 문란과 가혹한 착취로 당시대 민중이 겪었던, 자식 목숨을 없애 고생 좀 덜자는 말이 당시대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은 어떤가, 얼마나 바뀌고 나아졌는가. 비교해 가며 읽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산의 풍경>은 그것도 그러하겠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늘끝에 홀로 앉아"에서부터 마지막까지는 다산 선생의 시편들은 시각을 일상 다반사로 옮겨간다.

 






생김새는 내 자식 같은데

수염이 나서 딴사람 같애.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갖고 오긴 했지만

틀림없는 진짜인진 의심스러워

(8년 만에 아들을 만나/ 210쪽)


 

    가혹하다. 사형제도 역시 겨우 몇 백년 전 이전 사회에서는 빈번히 자행되었고, 지금도 사형수는 있다. 그러나 생살을 도려내듯 가족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 옳을까. 사람 도리를 저버리는 지독한 범죄자가 물론 하늘 아래 함께 우리들과생활한다. 그들과의 생활 자체가 일상성에서 지극히 벗어난, 도무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 사회적 격리로 그들의 병적인 범죄행각을 교화시킬 제도를 만드는 것이 생명을 앗아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려는 처단,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일까. 그것은 계속해서 논란거리로 말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쟁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시국상 정치범?에 해당될 것이다. 정치범으로서 다산 선생의 집필은 사실 무모하기까지 하다. 다양한 분야의 심오한 사상을 반영한 책들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지만, 선생의 필적은 당시에는 허망한 걸음이었을 것을 짐작하기 어렵잖다.  <다산의 풍경> 후반부에 읽히는 소박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시편들은 유배지에서의 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머뭇거린들 무슨 소용 있나/ 끝내 피할 수 없는 이별인걸 (사평의 이별/ 137쪽)

나이 들어 총명 줄어드니 어찌 책을 읽으랴/(...)/ 보내기 전 (책을) 만져보며 또 잠깐 정을 주네 (책 판 뒤에/ 180쪽) 

물고기 뻐끔대는 소리만 이따금 들리네 (밤에 부용당에 앉아서/ 185쪽)

흰 구름에 가을바람이 불어/(...)/ 표연히 이 세상 떠나고 싶어 (흰구름처럼/ 187쪽)

노오란 단풍잎은 꽃보다 예뻐라  (못가에서/ 191쪽)

다른 꽃들이 다투어 핀 뒤에야/ 나를 보고 방긋 웃어 주겠지 (연꽃/ 193쪽)

휴우, 그래도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세상 건너기란 본래 어려운 거니까 (집에서 온 편지/ 199쪽)

하루가 다른 새소리 이상하다 싶었지 (새해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204쪽)

그리워 않노라/ 그리워 않노라 슬픈 꿈속의 얼굴을 (아내에게/ 209쪽)

생이별과 사별(死別)이 늙음을 재촉하나/(...)/술잔 두 개 남겨 두었다 자손에게 물려주려네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며/ 211쪽)


   다산 선생의 적적함은 단순한 고독과는 좀 달리 읽힌다. 불운한 시국 때문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불운하지 않은 시국일까. 그것 역시 <다산의 풍경>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단순히 한시를 옮겨놓은 번역서로만 읽는다면 <다산의 풍경>은 정치색이 있구나, 가족이 그립겠구나 그렇게 표피적으로만 읽고 말 우려가 있다. 단순히 지적 쾌감을 위해서 읽는다는 것은 <다산의 풍경>을 모독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다산 선생을 처음 만났고, 선생을 조금씩 알아갈 터이다. 너무 거창하게 처음을 열었는가 우려 역시 있지만 지금 여기에서 몇 백 년 전의 거기를 들여다보는 눈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다시금 "8년 만에 아들을 만나"를 읊조린다. 나는 아들이 없는데,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금세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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