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rmony 조화로운 인생 - 진정한 부를 이루는 5가지 절대 조건
제임스 아서 레이 지음, 송택순 옮김 / 엘도라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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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에서는 돈 이야기가 먼저 언급된다. 돈이 뭐라 생각하느냐, 돈에 대한 중요한 주변인들의 생각으로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여과없이 듣는다면 굉장히 당당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책에 빠져든다. 가독성이 장난 아니다. 문장뿐 아니라 책 구성 역시 받아들이기 쉽도록 짜여져 있다. '진정한 부를 이루는 5가지 절대조건'을 <조화로운 인생>이 다루고 있다.

 

2. 머리글(prologue) : 인생의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루어라

 

   멀리보고 크게 행동하라_ 발생의 법칙: 모든 것에 부화 또는 잉태의 기간이 있다. 만약 떡갈나무를 키우고자 한다면 인생의 굴곡을 거치는 동안 경로를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에너지는 진동하며, 우리는 그것을 주파수라고 부른다. 끌어당김의 법칙, 발생의 법칙을 바탕으로 원하는 인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조화로운 부의 조건 : 금전, 관계, 정신, 육체 영혼 등 인생을 이루는 5대 요소가 풍요로운 것이 조화로운 부이다. '부'를 돈에 직결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말라. 돈은 부의 일부분, 부는 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려는 욕심은 버려라 : 균형이란 이 세상에서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균형이 아니라 조화가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조화는 역동적이며, 생명이 가득하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면 성공한다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관심을 진정 귀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옮겨 거기에 열정을 쏟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집중과 관심을 쏟으면 인간으로서 한 단계 성장한다. 양극의 법칙,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기록하며 인생에서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명확하게 시각화하는 작업.

 

3.

   머리글에서 책 내용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 아니 아예 설명을 다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머리글만 읽으면 된다? 아니다.  조화를 위한 다섯 조건에 대해서 본문은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각 조건에 대한 질문이 본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질문들이 참 좋았다.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하나 따져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4장, 조화로운 부의 세 번째 필요조건, 정신의 풍요에서는 내가 앓던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끌어당김의 법칙',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미 '시크릿'에서 주창되어온, 양자역학 개념이다. 그러나 <조화로운 인생>은 씨앗을 비유로 들어 '자아'의 의미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알고, 그리고 멀리까지 통제권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곧 성공이다. 물론 통제권이라 해서 남을 지배하고 억눌러 착취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상성은 피해를 주고 안 주고의 기준에 따른다. 남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다.

 

4.

   <조화로운 인생> 역시 읽는이를 귀찮게 한다. 자꾸 쓰라, 써보라고 권하고 있다. 무조건 종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만, 필기구가 없어도 상관이야 없지만 구체화 작업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속하는 데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혼자서 실천이 힘들다면 2~3인 정도의 소모임을 활성화해서 책읽기를 병행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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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 '오래 일하며 사는' 희망의 인생설계
마크 프리드먼 지음, 김경숙 옮김 / 프런티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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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년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일이라는 것이 마냥 따분하고 힘들고, 고생스럽다고만 여겼다. 젊어 고생을 왜 사서 하느냐면서 동료들끼로 회식 자리에서 키득댔다. 함께 술잔을 치며 골목에서 속을 게워내던 그들은 이제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뭐 인생 헛살앗다, 푸념은 아니고 그냥 그런 기억이 <앙코르>를 읽으면서 순간, 아주 잠시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책 덮을 때 무렵해서 또 그 골목길 축축하고 음습한 공간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직 어려서, 덜 살아서라고 할까. 미련이라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

 

2.

   목차를 본다. 1장은 일할 자유, 4장은 인생의 새로운 지도, 6장은 앙코르 사회를 향하여. 현재를 면밀히 살피고 미래를 주축으로 활동하기를 도모하는 책이라고, 나는 <앙코르>를 지금 이 순간에는 그렇게 정의한다. 

   일할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일로써 만족감보다는 오히려 좌절감이 더 많았던 경험 때문에 일보다는 멀리 떠나 유랑하듯이 살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모양이다. 자부심도 없었고 그러니 모든 의사결정은 현재 여기의 쾌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20대 중반을 나는 헛것을 탐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이 가끔이 너무 자주라서 문제다) 허황된 꿈 속에서 싱긋이 웃기도 한다. 

   <앙코르>는 지금 이순간을 먼저 타진하고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냐, 그것을 먼저 알아야 먼 후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펼치고 있다. 어떠한 시나리오를 예견하든지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동일한다. 나인 것이다. 나다. 

  <앙코르>는 내가 아니지만 나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절망에서 반동으로 성공한 사례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실질적이지는 못하지만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성공담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꿀 찾아 헤매는 벌처럼 달려들어 탐닉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3. 

  <앙코르>에서 새로운 지도를 보았다. 각양각색, 그러나 하나로 통하는 이야기들 가운데 특히 4장이 내게는 감동적이었다. 아직 살날이 더 많은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근거없는 확신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좀 더 살아야겠고, 그래서 '지도'라는 단어는 늘 생동감 있는 어감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생의 전반부가 강요받은 것이었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선택하는 것이다." (쇼쉐너 주버프)

 

   강요받은 인생이 무엇이었는지, 대부분은 수긍할 것이다. 경우야 다르지만 '강요받았다'는 것은 모두들 한결같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 나는 살아온 날을 인생의 전반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 살아갈 모든 날들은 인생의 후반부인 것이다. 

   <앙코르>에서 인생의 후반부, 나의 내일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선택하고, 움직이는지를 보게 된다. 새롭고 존경스러운, 그러면서도 멀고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냥 해보는 거다. 물론 기준점에 꽂을 깃발은 튼튼한 녀석으로, 잘 보이는 녀석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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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면허증
코르넬리아 니취 지음, 한윤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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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간 자격증이 많아서, 부모 교육하고 나면 수료증을 준다. 수료증 하나로 생색내는 양육자님들의 낯빛이 썩 좋아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웃는 게 좋다. 웃으면 여유가 생겨 좀더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만족이든 무엇이든 여유는 사람을 현명하게 해주는 한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틀림없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남에게 신경까지 쓸 수 없는 건 당연한 노릇 아닌가. 그런데 이런 극한 상황에 그 사람의 진정한 인성이 드러나게 된다. 들통나게 된다.

 

2.

   <부모 면허증>은 자격 남발이 아니다. 책 이름이야 먼허증인데, 당최 이 자격을 주관하는 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당최 모르겠다. 그러니 공부하고도 부모 면허증은 언감생심 아예 기대해서는 안된다. 대신, <부모 면허증>의 약발은 직방이다. 제대로 읽었는지 아니면 어영부영 날로 읽고 덮어버렸는지는 일상에서 곧바로 검증이 가능하다. 그러니 충실히 읽고 현실 적용해야 한다. 물론 우리 땅의 문화와는 다소 차이 나는 문화권에서 살아온 글쓴이라 우리에게 안 맞다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변명이야 늘 가능하지만 우리 역시 원하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부모 면허증>이라 해서 대상을 자녀와 양육자로 규정한다면 그것만큼 큰 실수가 또 있을까 싶다. '대상관계'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실계에 대응하는 방식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태어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제한된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극받고(외부통제 심리학), 자극을 주고, 반응하며 체득함으로써 전생애를 좌우하는 행동방침이 틀지어진다는 것이다. 무식한지라 곰곰이 생각하면 참 설득력 있다.

 

3.

  <부모 면허증>은 먼저 세 가지 원칙에서 부모, 자식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관계의 토대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실제 사례로 직행한다. 현실적용은 사례를 볼 때,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면 내 삶에 본보기로 삶을 때에 깨우침이 빨랐다. <부모 면허증>은 일상사에 발생가능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가능한 답변(행동)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요약하고 있다.

 

   마음을 읽어주는 일, 말은 쉽다. 실천은 너무 힘들다. 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여유가 있다면, 다양한 행동지침을 창의적으로 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너무 없다. 쫓기고 다급하고 힘들다. <부모 면허증>은 그래도 어른은 강자,라는 전제 하에서 펼쳐지고 있다. 만약 어린이가, 피양육자가 어른보다 더 강자라면 아이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 면허증>의 실례를 성실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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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성공을 여는 키위
크리스 프렌티스 지음, 장윤희 옮김 / 따뜻한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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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성공을 여는 키위. 표지에 책 이름을 보고 먹는 키위? 그랬다가 피식 웃는다. key wish이었다. 짧은 문구들과 함께 설명이라 할 만한 단락들이 있다. 그라시안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나 최근에 읽었던 '묘비명'이 떠오르는 구성이다.

 

2,

  짧은 명문은 울림이 크다. 그러나 속도감 있게 읽으면 오히려 감동이 반감되는 악영향도 있다. 어디 지하철에 붙어 있는 명문이라는 것이 그렇듯, 찻간에서 읽을 때는 참 좋았는데 막상 책으로 만날 때는 무덤덤해지는 경우가 있다. '키위'의 첫 느낌이 안타깝게도 그러했다. 많은 자극 속에서 혀가 미각을 잃었는지, 내 눈도 사물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어두고 며칠을 보냈다. 머릿속에 '키위'가 떠나지 않았다. 역설적 기법의 실제일까. 잠시 잊고 지내자 할수록 더 머릿속에 맴도는 이 몹쓸 엉뚱함이 도졌던 것이다.

 

3.

   '모두 대응하기 나름이다.'

   - 긍정의 힘 앞에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 좌절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그 상황이 가져 올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없게 되지요. (...)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의 키는 당신이 쥐고 있습니다.

(첫번째 열쇠/ 12~13쪽 부분 옮김)

 

   대응과 반응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찰해 둔 책을 만난 적이 있다. 참 좋았다. 읽으면서 상황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돌아서 후회하는 경우가 순식간에 펼쳐졌다가 까무러쳐 사라졌다. 내게 직관은 원래부터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연찮게 다가드는 순간적인 통찰에서 나는 쾌감을 느낀다. 물론 소극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아서 내가 느끼고 싶다고 해서 늘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쉽다.

 

  머리글을 제외한 '키위' 첫 부분에서 나는 '대응'이라는 글자에 주목한다. 그리고 옆 쪽에 풀어쓴 글들을 읽는다. 기대를 한다. 내가 경험한 대응과 반응에 대해서 다시금 감동을 주지 않을까. 나는 감동 받을 준비부터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키위'에서 핵심어는 '긍정의 힘'이다. 이 핵심어는 '키위'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는, 이미 너무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고 새로운 접근법이 없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식상할 수도 있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머물고 말, 그러한 한계의 위험성이 따르는 단어이다. 나는 '키위'에서 명확한 무엇인가를 얻었는가, 아니면 비몽사몽으로 눈이 게게풀렸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194쪽)

 

 

4.

   삶의 철학을 '키위'에서 다루고 있다. 어느 구절은 분명 어디서 들었던 것이 분명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이 우리에게 있다면, 어떠한 울림으로 부딪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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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걸인 사무엘 -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지혜에 관한 우화
브누와 쌩 지롱 지음, 이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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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우화겠지, 생각했다. 어린왕자와 비길 만한 책이라 해서, 그냥 상술인 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책장을 넘겼다.  배를 가르는 칼이 스쳤다. 창자가 뜯겨 나갔다. 나는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쓸어담느라 정신이 없다. 낯설지만, 늘 예상한 일이다. 쏟아져 나온 내장과 내가 먹은 것들, 소화되지 않은 채로 창자에 고인 그것들이 내 눈앞에 쏟아져 악취를 풍긴다. 악취가 난다. 내 배를 가를 칼은 <행복한 걸인 사무엘>이었다. 수치심에 눈물이 흐른다.

 

   읽을수록 나는 움츠러들었다. 이래서 나는 책이 싫다. 특히 내가 원하는 책을 만날 때 나는 더 싫다. 책이 싫다. 나는 준비가 안 된 상태, 그런데 책은 문장 하나하나로 파고든다. 이게 너다, 칼을 들이밀고 하는 소리는

 

  "왜 감당을 못해?"

 

  그 소리에 내 대답은,

 

  "아직 위로를 더 받고 싶어서 그래. 나를 좀  봐. 있는 그대로, 그리고 " 

 

1.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이미 나는 다양한 심리서적을 읽었다. 그리고 많은 기회를 읽어버렸다. 여러 권 책을 읽고도 여전히 사람에게 휘둘려 휘청도 끊임없으니, 비아냥이야 얼마나 당연한가.

   두 개의 이야기 속 그 사람들, 주인공의 이름을 나는 기억 못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주인공보다 주변인을 더 기억한다. 주인공, 그들의 이름은 아예 내 관심 밖 저 멀리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내가 좇아 가다가 잠시 저린 다릴 주무르고 앉아 있는, 만약 앉아 쉬지 않았다면 더 멀리 갔을 그 거리만큼 후회하는 지금의 상황과 너무 맞아떨어지고 있다. 나는 토끼의 가발(!)을 쓴 거북이다.

 

2.

  철학적 세계관을 <행복한 걸인 사무엘>은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가진 세계, 그 세계관을 탄탄하게, 소탈하게 정립시켜주고 있다. 걸인 아니면서 걸인행세를 하는 것은 쉽다. 왜냐, 다시 돌아갈 공간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감이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걸인들은 그 안정감까지 버렸다. <행복한 걸인 사무엘>은 당당하다. 걸인들이 더 당당하다. 그들은 숨쉬고, 호흡한다. 그들은 숨쉬기에 살아 있다. 책이 아쉬운 이유는 내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 그들은 대답 안해서다. 그런데, 두 주인공과 걸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내가 가졌고, 내가 너무 하고 싶다면, 그 대답은 내 주변인이 해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3.

  내게는 좋은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놓지 않을 것이다.

 

4.

  도서관을 이용한 사람은 안다. 책을 펼치고 있을 때,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바랄 것이다. 그 책 읽는 나를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이 불확실성이다.

 

 5.

   <행복한 걸인 사무엘>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갈팡질팡 이럴 줄 알았다면서 다시 고꾸라지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능력도 없다. 그런데 나는 지구력 강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을 무딘 감각을 탓하면서 잊고 있었다. 나는 부자가 아니고, 젊지도 않다. 이제 '도를 믿으십니까' 하며 다가오던 사람들도 내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안다.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침표는 언제라도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걸인이다. 행복한 걸인이다.

 

6.

  이 책 읽으면 먼저 도서관에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렌다. 이미 내가 만난 그들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를 남발하고 싶어서 속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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