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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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거에요” 생뚱맞게도 나는 누구에게나 과거에 짝사랑했던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의미의 멋진 말을 찾으려고 생각하던 중에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신동욱 씨가 했던 유행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왜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미를 되새김질 해보았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거에요”가 원래 대사였지만 “누나 가슴에 삼천원”이라고 들리게 만든 그의 어눌한 발음 덕분에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그 대사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다는 그 대사가 내 마음속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에 상처가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간에 누구나 과거의 기억은 남아있다. 이 책<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바로 그런 우리들이 가진 넓디넓은 기억의 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나 역시 저자의 요구에 순순히 내 기억 속의 선생님을 그려보았다.

기억 속의 우리선생님

중학교 1학년에서부터 2학년 사이에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쳤던 선생님. 내가 다니던 반을 담임도 동시에 맡으셨던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 들고자 너무 열심히 했던 나머지 상위 클래스로 옮기는 바람에 떨어져야 했던 선생님. 그 때는 선생님의 반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보낸 선생님.

나는 이 책의 주인공 동구처럼 동구의 박영은 선생님과 함께 하루에 한 시간씩 남아서 했던 둘만의 공부도 한 적이 없었고, 어른들의 세계에 어울려 같이 술자리를 하지도 못했고, 더욱이 동구처럼 고백 비슷한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 심윤경님은 동구와 박영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나의 과학 선생님에 대한 기억샘을 촉촉하게 자극시킨다. 그래서일까 동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심윤경님이 만들어낸 ‘상상 그 이상의 표현력’과 이리저리 반죽되어 마치 내가 과거에 동구가 된 것처럼 몰입해서 사건을 바라보도록 조종됨을 느꼈고 흔쾌히 조종당해주었다.

1980년 5월 18일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1977년부터 1981년 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영은 선생님이 할머니를 만나러 광주에 잠시 내려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문장을 보고서 지금껏 동구가 되어버린 내 머리 속은 마치 천만근의 포대자루가 가슴을 짓누르는듯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박영은 선생님……. 어찌하여 하필 그날에 내려가시나이까…….

“실은 제가 오늘 밤에 광주에 내려가야 하거든요. 19일이 할머니 생신이라서요. 그날 아침에 미역국이라도 같이 먹고 올 생각이에요. 학교에는 월요일에 휴가를 내겠다고 말씀드려 놓았어요.” (225쪽)

내려놓은 휴가 계획서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렇게 동구에게 멀어져버렸다. 주리삼촌은 믿을만한 사람의 이야기라며 박영은 선생님이 이미 돌아가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동구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이를 때쯤 저자는 희망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나는 바랜듯한 금빛 깃털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다. 나의 눈에 띄었던 금빛 가슴 털의 새, 야윈 곤줄박이는 얼음위에서 날아오르지 못하고 깡충깡충 뛰어 연못을 벗어났다. 살아있었구나, 나의 곤줄박이야. 그 어느 못된 손목이 던진 돌팔매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렇게 살아서 아름다운 정원에 남아 있었구나.” (314쪽)

저자는 이미 아이들의 돌팔매에 희생된 줄로만 알았던 곤줄박이가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암시해주면서 생사를 알 수 없는 박영은 선생님의 대한 소식에 희망을 의미하는 파란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파란불은 무너져버린 동구네의 가족사에 있어서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가족 간의 반목 그리고 영주

동생 영주가 1977년에 태어나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박맞을 년이라는 시어머니의 푸념 속에 아이를 낳았지만 남아선호사상의 희생양으로 ‘동구 동생 복자’라고 불릴 뻔한 이 여자아이는 영주가 되면서 6살 터울의 동구에게 하나의 자랑거리가 된다.  

게다가 영주는 세 살이 되면서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난독증세를 보이던 동구와 그의 가족 그리고 마음 사람들에게 신동소리를 듣게 된다. 이처럼 영주의 존재는 가족 간의 불화에 있어서 하나의 희망으로 그들을 옭아매어주는 튼튼한 버팀목이었다. 

자기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할머니. 그런 시어머니의 알력 때문에 마음 편히 살수 없는 어머니. 고부간의 싸움에 관해서는 무조건 아내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아버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생활을 불만스러워하는 동구에 박영은 선생님의 당부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분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그분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아들이 되면 어른들은 정말 기뻐하실 거야.” (117쪽)

그러나 가족 간의 불화 속에서 유일하게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애정을 받아내면서 그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던 영주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는 지금껏 엉겨붙어있던 화약고가 한순간에 폭발하듯이 그렇게 집안은 풍비박산으로 허물어져버린다. 할머니는 엄마를 지 아이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하고, 아버지는 영주가 숨진 그 자리에 분노를 느끼며 커다란 망치로 부숴버리고, 어머니는 자신을 미친년 취급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어 정말로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구는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어낸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 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유일한 존재인 박영은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했던 결과, 꿈속이지만 마치 실제로 박영은 선생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 말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주고 그렇게 동구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봐.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지 않겠니.”(300쪽)

“남을 이해하려면 네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하거든.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특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정성을 다해서 더 깊이 생각해야해. 내 생각엔 말이야. 동구 할머님은 아마 다섯, 아니 네 식구 중에 당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 (302쪽)

동구의 내면속에서 얻게 된 가르침이라는 것은 모든 행동을 이해하면서 그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구는 모두의 화목을 위해서 잠시나마 떨어져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이 떨어졌을 때, 가장 외로워하실 할머니 곁에 남아서 할머니의 고향으로 같이 가기로 결정한다.

인왕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삼층집의 쇠창살 속에서 널따랗게 펼쳐져 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렇게 다시는 볼 수 없을 정원으로 동구의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박영은 선생님이 살아 계실 것 같은 암시를 주던 ‘곤줄박이’는 그들의 가족사에 있어서도 하나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면서 그렇게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 민주화의 물결, 가족사의 비극적인 내용들을 한데 버물리는 동시에 작가 특유의 예측을 불허하는 섬세한 묘사력은 나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음을 몸이 먼저 인식해버렸다. 그리고 처음 접했던 심윤경이라는 작가의 존재감이 가슴에 커다랗게 자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볼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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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김은경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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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적부터 뭐든 기억해야 하며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어느덧 무의식적으로 망각공포증에 사로잡혀있다. 기억력이 좋아야 머리가 좋을 거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제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본다, 모처럼 노력해서 기억한 것을 잊어버리면 경쟁에서 뒤처진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176쪽)

앞서 읽은 <공부도둑>에서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언어로의 이해라고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서 그 옛날 공부 방법에 자기언어로의 이해는 없었다. 사실 교과서를 뚫어지게 정독해본적도 없다. 그저 학원에서 나눠주는 프린트 물을 달달 외웠고(외웠다기 보다는 동그라미 칠을 하면서 반복했다.), 참고서에 등장하는 단원정리를 맹신하면서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갔다.

그런데 이런 기억의 딜레마는 대학에 들어와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강도는 더욱 심하게 우리의 목을 조여 온다. 과장해서 이야기 했을 때, 대학 시험에서 학점을 따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바로 족보의 보유여부이다. 어떻게 족보를 가지고 있다면 시험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족보의 해답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달달 외우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번은 족보를 보지 않고 ‘물리화학’이라는 과목을 나름대로 책만 열심히 보고 공부해 들어갔다가 크게 낭패를 봤던 경험이 있는데 그 다음부터 그저 순순히 족보에 적힌 해답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기억력(암기력)이라는 것이 모든 것의 당락을 좌우하는가? 좀 더 산뜻하고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더 크게 작용하지 않는가? 약간의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하나를 기억하려고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조금 더 큰 틀에서 모든 지식을 흡수하고 나름대로 통합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망각의 힘>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힘과 표지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실타래처럼 어지러이 뭉쳐있는 지식들의 불쌍한 모습이 더욱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망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또한 지식을 어떤 시각에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눈에만 의존하는 교육에서 벗어나자 (방관자적인 접근법)

우리는 학습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 바로 눈이고 귀인데, 그 중에서도 눈을 사용하여 학습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눈으로 보이는 것은 겉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에 귀를 사용하는 빈도를 더욱 높여야 하며, 또한 육감과 같은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직접 배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시각적 교육을 하게 되더라도 학습 내용을 한가지의 시점으로 파악하는 것을 경계하고 만유시점. 즉, 여러 가지의 시점을 통해 본질을 파악해 보자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바둑 고수들의 대국을 예로 들어보자. 고수들의 대결에서 어떻게 해설자가 그 수를 명확히 판단하고 우리들에게 앞 수를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해설자가 그 판에서 벗어나서 얽매이지 않는 큰 틀에서 바라보는 ‘방관자적인 시각’을 보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즉, 그것은 육체의 눈으로 해석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는 마음의 눈으로 판단하자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지식의 비만에 대한 우려

“예전부터 복팔분이라는 말처럼 배불리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긴 했지만, 이런 점은 육체적 문제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부지런히 지식 습득에만 힘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 카타르, 지식 메타 증후군에 걸릴 수 있다.”(95쪽)

“명석한 두뇌는 지식의 양과 비례한다는 근거 없는 명제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부심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박식한 자가 지적인간이라는 통념이 존재하는 한, 지적 메타볼릭은 계속해서 늘어만 갈 것이다.” (95쪽)

나는 이 문장들을 보면서 일전에 “지적수준이 안되는 이들은 글을 올릴 자격이 없다”고 외쳐서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온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그 사람이 두 번째 문장을 읽어본다면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틀림없이 그는 이 문장을 씹어먹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전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지적수준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국민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는 지식 메타 증후군의 말기에 다다른 환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지식메타 증후군 말기 상태인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망각의 힘>을 발휘하여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많은 지식의 강박관념 중에 사익만을 쫒는데 사용될 지식의 일부를 내다 버렸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경쟁을 즐기고, 부를 경계하라!

저자는 나를 까다롭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을 고마운 존재로 인정하라고 한다. 물고기가 물의 흐름과 반대로 헤엄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라면 맞바람을 맞으며 전진해야 올바른 인간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쟁이 없는 상태라면 스스로 뛰어넘을 작은 벽을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는 극단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동기부여의 한 방법으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 다. 우리들에게는 이와 관련된 많은 명언들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내일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걸음만 더 내딛는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고통을 즐긴다면 아마도 없었던 장벽에 맞서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적당한 거리감

저자는 제 3자. 아니 4자적인 시각을 모든 사물에 대하여 적용시키는데 이것을 지식에 적용시키는 것은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하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다. 만약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힘든 일이 있어서 칩거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왁자지껄 병문안 오거나 이래저래 참견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행위 자체에 허례허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의들이 뜻하지 않게 약자와 강자의 상태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가정 하에 우리가 상대의 일상에 너무 개입하지 말고 망각의 묘를 발휘해서 상대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의견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솔직히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기에는 이 사실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것을 보편화해서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사람들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분명히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방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그저 편지로서 위로를 하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사리 수긍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망각의 힘>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우리에게 조금은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자는 시각적인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에 걸맞게 글의 길이도 상당히 짧고 간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정보의 바다에 떠돌고 있는 지식들에 둘러쌓여 책의 위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저자가 정보의 바다에 떠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대항법은 바로 ‘독에는 독’이라는 접근법이었다.

18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책은 나에게 있어서 무소유 이후로 이 책이 두 번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만큼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와 생각하는 맛을 제공해준 책이었다. 앞으로 이 책이 주는 교훈인 ‘망각의 힘’을 깨닫고 지식비만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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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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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을 쓰신 장회익 교수님의 이름 석 자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최무영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에서 그가 쓴 추천사를 보고서였다. 추천의 글을 보면서 내가 느낌 소감은 도저히 물리학자 같지 않은 부드러운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물리학의 내용을 마음대로 반죽하여 원하는 형태로 변형해내는 마술가적 소양이 필요하다.”

나는 추천사의 많은 문장 중에서도 특히, 그 한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 결과 이 분이 물리학 한 분야에만 얽매이지 않고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저술 활동을 하신 것을 알게 되었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의 발끝이라도 따라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공부도둑>이라는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공부도둑>. 이 책을 간단하게 평하자면, 그의 자서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전 우주의 학문창고에 들어가 학문의 정수만을 훔치고 싶은 ‘공부도둑’이고 싶다"는 말을 책에서 수차례 연급하기 때문이다. 즉, 장회익이란 물리학자는 ‘공부도둑’이기에 ‘공부도둑’이라는 제목 그 자체가 장회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책을 일독해보시면 장회익 교수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되어서 아시겠지만 만약 이 책을 프랭클린 자서전을 ‘장회익 자서전’이라 제목을 지으면 아마도 그의 모습으로 판단해보건데 손발이 오그라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는 겸손하게 자신의 자서전을 <공부도둑>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사실 그가 쉽게 관문들을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와 천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됨을 알 수도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생애에 걸친 많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동시에 공부에 관한 그의 철학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비록 전공분야는 다르지만 나 역시 더 많은 학문에 목마름을 느끼는 후학의 한사람으로서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그의 공부론을 집중적으로 탐독해나갔다.

학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가?

“너무 상심하지 말고 잘해보아라. 삼씨는 삼밭에 떨어지면 인삼이 되지만, 더 척박한 산에 떨어지면 산삼이 된다는 거 명심해 두어라.” (48쪽)

어쩌면 이 문장 하나가 <공부도둑>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그 시절. 할아버지의 압력에 의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이 2년의 시기동안 좌절하지 않았고 제도권의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부법을 깨우치는 산삼으로 자리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삼는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공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하나 있다.

“옛날에 어떤 아이가 살았는데, 우연히 만난 도인이 책을 한권 주면서, 이 책을 다 읽으면 ‘도’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동굴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다 읽지 못하면 읽은 것이 전부 무효가 되는지라 몽땅 읽어야만 했는데, 아이의 단짝 친구였던 여우가 자꾸 나와서 놀자고 졸라서 결국, 마지막 한 장을 남겨놓고 나와 버렸다고 한다.” (63~66쪽 요약)

저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동굴 속에서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외로운 싸움이고, 외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부모님들의 책 읽는 습관을 이야기해주면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고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는데, 이글을 읽는 우리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이야기는 많은 교육에 관련된 책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즉, 자녀가 어떤 것을 못하게 하려면 부모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장회익 교수의 부모님은 모두 책을 가까이 하신 분들이었는데, 특히나 그의 아버지는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보면 그 대목에서 읽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궁금증을 느껴 그렇게 왜 하느냐며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는 “그래야 다음번에 책을 펴볼 마음이 생길 것이 아닌가?” 라며 지나친 재미를 추구하면 금방 싫증이 나기 때문에 재미있는 마음을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공부도둑>이 나에게 준 것

이 책은 학문의 전 분야에 걸친 그의 나름대로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간략히 말한다면 초등학교의 경쟁 체제를 부추기는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는 그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리고 교육자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덕목에 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159페이지의 다음 구절이 제일 마음에 깊이 박혔는데, 그 구절을 고스란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물리학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와 연결해 개별과목에 대해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고 그 잠정적 결론을 자기 언어로 서술하라. 그리고 학습이 진행되는 대로 이것에 대한 수정ㆍ보완을 수행해 나가되 그 핵심은 반드시 유지하라. 이렇게 할 경우 설혹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핵심은 항상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학점관리를 해나갈 수 있다."(159쪽)

즉, 자기언어로 서술하고 자기가 자기를 납득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서평을 쓰는 이유도 책속에 들어있는 가르침을 나만의 언어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기언어'가 암시하는 것은 나중에 선생님이 되어 남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시켜 볼 수 있다. “누가 이렇게 했다”는 간접적인 교육법에 얽매여 밑줄만 치게 하는 방법에서 벗어나서 가르치는 사람이 그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여 배우는 사람에게 알기 쉽게 가르치는 것이 요구될 것이다.

위대한 물리학 발견자가 모든 이해를 하지 않고 있고 후학이 그 이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발견자의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우려를 표하면서 저자가 그의 나름대로의 언어로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우리에게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는데, 4차원적 공간을 동일한 조건을 가진 변수로 생각하고, 시간 개념에 해당하는 w를 시간과 공간 변수의 곱으로 표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통 우리가 4차원의 시공간을 생각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시간을 그냥 적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려울 때가 많은데, 저자는 깔끔하게 위치상의 같은 조건을 가진 시공간 차원을 시간과 공간 변수의 곱으로 적용해 설명하니 아직도 추상적이긴 하지만 이해는 훨씬 간단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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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2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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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를 말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제중원’에서는 의사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면서 우리에게 자세히 일러준다. 소의치병 :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치인 : 중의는 사람을 고치며, 대의치인 : 대의는 나라를 고친다. 보기에도 한 치의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기준이 아닌가?

이 책은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의사는 어떤 의사인지를 생각해보는 동시에 바람직한 인간에 개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 책의 제목을 ‘제중원’이라 지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저자 이기원씨가 <하얀거탑>이라는 일본드라마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조선이 가지고 있는 의학사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했고, 그렇게 조선의 기원을 찾던 중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도중에 저자는 ‘제중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서양'이라는 백정출신의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이 팩션(faction)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야 한다. 즉, 이 책은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두고 역사적 사실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떤 이가 원래는 나라를 팔아먹은 놈인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그려지지 않는다. “ 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의 역사의 단면을 빌려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진짜 역사로 착각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가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정의 아들 소근개

처음부터 등장하는 매맞는 소근개는 참으로 효성이 깊은 청년이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를 위해 매품을 팔아 약값을 마련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효심이 단박에 나의 가슴에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품뿐일까? 그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것이  백정에게 있어서 혼을 파는 행위인 밀도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큰일을 벌이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숨을 거두고 그는 그대로 쫓겨 다니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소의치병’. 병을 치료할 줄만 아는 작은 의사를 만난다. 그 의사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병을 수술해준 와타나베였다. 그는 소근개가 업고 온 어머니를 수술하지만 100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술비를 요구한다. 그리고 수술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을 알고 나서 치료를 거부한다. 얼마나 야비한 인간인가? 이거 완전 납치범이잖아? 목숨줄을 틀어잡고 돈을 요구하다니…….  저런 파렴치한이 어디 있을까? 소근개만 분노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와타나베의 비열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황정과 백도양

부적절한 인연으로 인해 만나게 된 소근개(황정)와 백도양. 시간이 흘러서 그들은 의학이라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되고, 그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함에 있어서 신여성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당찬 여성 유석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유석란에 대한 애정라인은 이 소설에서 크게 부각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 사이의 직접적인 애정행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시선들의 레이저와 레이저로 인해 후끈 달아오르는 공기의 변화로 인해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이와 같은 밀고 당기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선인 최초의 의사가 되기 위해 황정과 백도양은 서로 대결을 벌인다. 물론 유석란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인자가  되기위한 대결임에도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제중원에서 조수 일을 하고 있던 알렌과 황정. 그리고 나중에 제중원에 입성하게 되는 헤론과 백도양의 사랑과 성공의 대결구도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반전이 등장한다. 짐작했던 것 처럼 황정이 가지고 있던 백정이라는 신분은 그가 의사가 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방해물로 작용하는데,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어머니를 읽고 밀도살을 한 이후에 각자의 길을 걸어갔던 아버지였다.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 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병원을 찾은 아버지를 불러세우고 그에게 수술을 권유하면서도 차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황정.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며 아들의 성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괜찮다고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황급히 수술제의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 결국 황정은 쓰러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신분사회의 모순인 양반과 천민의 단면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황정이 부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좌의정 딸의 수술과정에서 빚어진 유교사상의 굴레는 또 한 번 우리에게 남녀관계에 대한 조선시대의 편협한 시각이 잘 드러나도록 그려진다. 

결국 황정은 ‘제중원’에서 쫓겨나고 밀도살했던 과거까지 드러나게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런 황정을 살리는 것은 바로 황정이 제중원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행했던 중의치인의 덕이 가장 컸다. 개인적으로 백도양을 지지했던 헤론원장은 마지막 순간에서 황정을 인정하는 부분에서, 사실 황정이 쫓겨나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 사이에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넘어가는 것이 ‘옥에 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제작할 때는 아마도 마마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황정과 백도양이 행했던 방법을 앞에 두지 말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로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도양이 마마의 예방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하인들을 이용하여 천연두를 접종했던 것과는 다르게 황정은 소년이 충분히 마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약하게 만들어서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끔 접종했다는 것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은 드러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치료했던 와타나베가 황정을 선택하여 수술할 때 백도양이 느끼게 되는 황정과의 차이점은 바로 의학적인 손재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것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황정과 도양은 암 조직을 떼어 내는 데 서로 다른 수술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도양은 암 조직을 크게 떼어 내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수술 시간이 단축되어 환자가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출혈이 많고 조직에도 손상이 간다는 단점이 있다.”

“황정은 어떻게 하면 암 조직만 떼어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이는 개복 시간이 길어 환자의 회복이 더딜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조직이 덜 상하기 때문에 출혈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꼼꼼하지 않으면 암 조직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황정은 매우 꼼꼼하게 수술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에게 수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물었을 때, 백이면 백. 황정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 수 있을 테고, 그것은 처음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의치병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무미건조하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와 무조건 검사부터 해보고 판단해보자고 할 것이다. 환자의 경제적인 입장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찍어볼 것은 다 찍어보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역시 XXX이네요. 어이 간호사 이분 수술날짜 잡아드려.”

하지만 황정과 같은 중의치인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보다 꼼꼼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몇 가지 의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 환자에게 상세히 일러주고 난 뒤에 거기에 필요한 검사항목만을 실시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안심시키고 완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대의치국이 바로 의사의 길

'제중원'에서 조선의 상황은 점점 더 서구의 열강과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싸움 속에서 혼란 속으로 치닫게 되고, 을사조약으로 인해서 결국 그 주도권은 일본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우연히 그들의 치료를 하게 된 황정은 치료를 행하면서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저 멀리 만주 벌판에서 조선을 되찾기 위한 수많은 독립군들에게 자신의 의술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박서양 의사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제중원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진짜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에 관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아마도 이 책 제중원은 우리에게 진짜 역사를 이해하려는 동기부여를 위한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사가 되고 싶은 이들과 현재 의사의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최소한 중의치인을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재 병원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진로에 있어서 이 책은 조금 더 그 시대를 알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황정과 백도양의 대립에서 그리고 있는 핵심,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함이 우선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은 감사히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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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를 말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제중원’에서는 의사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면서 우리에게 자세히 일러준다. 소의치병 :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치인 : 중의는 사람을 고치며, 대의치인 : 대의는 나라를 고친다. 보기에도 한 치의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기준이 아닌가?

이 책은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의사는 어떤 의사인지를 생각해보는 동시에 바람직한 인간에 개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 책의 제목을 ‘제중원’이라 지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저자 이기원씨가 <하얀거탑>이라는 일본드라마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조선이 가지고 있는 의학사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했고, 그렇게 조선의 기원을 찾던 중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도중에 저자는 ‘제중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서양'이라는 백정출신의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제중원의 주인공 ‘황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이 팩션(faction)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어야 한다. 즉, 이 책은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두고 역사적 사실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떤 이가 원래는 나라를 팔아먹은 놈인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그려지지 않는다. “ 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의 역사의 단면을 빌려와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진짜 역사로 착각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가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정의 아들 소근개

처음부터 등장하는 매맞는 소근개는 참으로 효성이 깊은 청년이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를 위해 매품을 팔아 약값을 마련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의 효심이 단박에 나의 가슴에 전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품뿐일까? 그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것이  백정에게 있어서 혼을 파는 행위인 밀도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큰일을 벌이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숨을 거두고 그는 그대로 쫓겨 다니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소의치병’. 병을 치료할 줄만 아는 작은 의사를 만난다. 그 의사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병을 수술해준 와타나베였다. 그는 소근개가 업고 온 어머니를 수술하지만 100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술비를 요구한다. 그리고 수술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을 알고 나서 치료를 거부한다. 얼마나 야비한 인간인가? 이거 완전 납치범이잖아? 목숨줄을 틀어잡고 돈을 요구하다니…….  저런 파렴치한이 어디 있을까? 소근개만 분노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와타나베의 비열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황정과 백도양

부적절한 인연으로 인해 만나게 된 소근개(황정)와 백도양. 시간이 흘러서 그들은 의학이라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되고, 그렇게 서로 부딪히면서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함에 있어서 신여성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당찬 여성 유석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유석란에 대한 애정라인은 이 소설에서 크게 부각되기는 하지만 주인공들 사이의 직접적인 애정행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시선들의 레이저와 레이저로 인해 후끈 달아오르는 공기의 변화로 인해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이와 같은 밀고 당기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선인 최초의 의사가 되기 위해 황정과 백도양은 서로 대결을 벌인다. 물론 유석란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인자가  되기위한 대결임에도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제중원에서 조수 일을 하고 있던 알렌과 황정. 그리고 나중에 제중원에 입성하게 되는 헤론과 백도양의 사랑과 성공의 대결구도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반전이 등장한다. 짐작했던 것 처럼 황정이 가지고 있던 백정이라는 신분은 그가 의사가 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방해물로 작용하는데,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어머니를 읽고 밀도살을 한 이후에 각자의 길을 걸어갔던 아버지였다.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 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병원을 찾은 아버지를 불러세우고 그에게 수술을 권유하면서도 차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황정.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며 아들의 성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괜찮다고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황급히 수술제의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 결국 황정은 쓰러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신분사회의 모순인 양반과 천민의 단면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황정이 부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좌의정 딸의 수술과정에서 빚어진 유교사상의 굴레는 또 한 번 우리에게 남녀관계에 대한 조선시대의 편협한 시각이 잘 드러나도록 그려진다. 

결국 황정은 ‘제중원’에서 쫓겨나고 밀도살했던 과거까지 드러나게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런 황정을 살리는 것은 바로 황정이 제중원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행했던 중의치인의 덕이 가장 컸다. 개인적으로 백도양을 지지했던 헤론원장은 마지막 순간에서 황정을 인정하는 부분에서, 사실 황정이 쫓겨나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 사이에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넘어가는 것이 ‘옥에 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제작할 때는 아마도 마마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황정과 백도양이 행했던 방법을 앞에 두지 말고, 헤론이 황정을 지지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로 부각시켜서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도양이 마마의 예방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하인들을 이용하여 천연두를 접종했던 것과는 다르게 황정은 소년이 충분히 마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약하게 만들어서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끔 접종했다는 것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은 드러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치료했던 와타나베가 황정을 선택하여 수술할 때 백도양이 느끼게 되는 황정과의 차이점은 바로 의학적인 손재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것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황정과 도양은 암 조직을 떼어 내는 데 서로 다른 수술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도양은 암 조직을 크게 떼어 내는 스타일이었다. 따라서 수술 시간이 단축되어 환자가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다. 하지만 출혈이 많고 조직에도 손상이 간다는 단점이 있다.”

“황정은 어떻게 하면 암 조직만 떼어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이는 개복 시간이 길어 환자의 회복이 더딜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조직이 덜 상하기 때문에 출혈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꼼꼼하지 않으면 암 조직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황정은 매우 꼼꼼하게 수술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에게 수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물었을 때, 백이면 백. 황정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술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 수 있을 테고, 그것은 처음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의치병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무미건조하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와 무조건 검사부터 해보고 판단해보자고 할 것이다. 환자의 경제적인 입장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찍어볼 것은 다 찍어보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역시 XXX이네요. 어이 간호사 이분 수술날짜 잡아드려.”

하지만 황정과 같은 중의치인의 단계에 있는 의사라면 보다 꼼꼼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몇 가지 의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 환자에게 상세히 일러주고 난 뒤에 거기에 필요한 검사항목만을 실시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안심시키고 완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대의치국이 바로 의사의 길

'제중원'에서 조선의 상황은 점점 더 서구의 열강과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싸움 속에서 혼란 속으로 치닫게 되고, 을사조약으로 인해서 결국 그 주도권은 일본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우연히 그들의 치료를 하게 된 황정은 치료를 행하면서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저 멀리 만주 벌판에서 조선을 되찾기 위한 수많은 독립군들에게 자신의 의술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박서양 의사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제중원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진짜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에 관해서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아마도 이 책 제중원은 우리에게 진짜 역사를 이해하려는 동기부여를 위한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사가 되고 싶은 이들과 현재 의사의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최소한 중의치인을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재 병원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진로에 있어서 이 책은 조금 더 그 시대를 알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황정과 백도양의 대립에서 그리고 있는 핵심,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함이 우선이라는 소중한 가르침은 감사히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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