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독서력 - 악착같이 읽어야 살아남는다!
방누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회사라는 정글 속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사실 1년 남짓 판매사원 경험을 조금 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뒷담화(?)들과 그 소문이 불러일으키는 촌극을 지켜보면서 이 세계가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피하는 방법을 익혔다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발을 디디지 못한 미래의 사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해서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 매일 부대끼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일 것 같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느끼면 이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선입관이 먼저 발동하면서, 그것은 벌어진 인간관계의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별것이 아닌 것이지만 그 당시의 힘겨루기 때문에 양보를 하지 않고 싸우는 경험이 평소에도 많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했던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펴낸 이 책. 이 시대의 직장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미래를 계획해보자고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생존 독서력>의 문답식 구성방법은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책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사내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가? 나는 처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 회사가 어떻게 삐걱거리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삐걱대는 것들을 관계, 도약, 변화, 그리고 미래의 크게 4가지의 범주로 묶고 나서 각각의 해결 목표를 잡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독자들의 생생한 질문을 살려내었고,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해결 방법에 대한 도움면에서 상당히 유용하다. 그 뿐만 아니라 저자가 읽고 재생산해낸 많은 이야기들과 책 소개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나름대로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책과 영화를 정리해보니 총 40작품이나 되었다. 이것을 나의 책 읽는 속도에 대입해보면 내가 약 한달 보름가량의 책읽기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을 저자는 이 책 한권에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관계, 도약, 변화, 미래에 관련된 주제에 맞도록 적당하게 편집해서 말이다.

여러 책을 통해 나만의 사고를 구축하라

역시나 이 책에서도 나만의 사고를 통한 공부를 추천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찍이 장정일의 <공부>를 통해서 미리 맛본 적이 있으며, 그리고 장회익의 <공부도둑>을 통해서 그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아직까지는 한권 이상의 책을 가지고 나만의 소스를 뽑아내는 작업이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나는 스스로 왜 같은 주제를 찾아서 통합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는데,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도달할 만큼의 방대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바로 내가 (1)의 책과 (2)의 책을 고의로 뽑아내어 서로 융합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차츰차츰 쌓이는 것들 가운데 한 점으로 요약되는 주제들을 가지고 사고의 틀을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책을 보면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과 <블루오션>이라는 책을 가지고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사고의 틀을 맞춰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두 책의 공통점인 ‘독특함’을 소재로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계를 찾아내고, 두 번째로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또 다른 논리를 찾아 생각하고, 세 번째로 책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논리구조를 만들어보아라.” (70쪽)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는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에서 광고매체가 힘을 잃어가기 때문에 독특한 뭔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도출한다. 하지만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에서는 정확한 해답을 주지 않고, ‘덤’이라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것에다가 <블루오션>의 방법론을 적용시켜 ‘독특함’의 당위성은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찾고 방법론은 <블루오션>에서 취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어떤 책을 읽으면서 해답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당히 미흡함을 느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그것을 그저 “끝이 떨떠름하다.”라고 넘어가지 말고, 따로 책의 강점과 약점을 분류하여 가지고 있다면, 다음기회에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될 때, 어렵지 않게 두 책의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 정약용 선생이 어떻게 5백 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는 책 한권을 읽더라고 책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따로 분류해서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렇게 분류된 지식들을 책을 저술 할 때마다 주제에 맞게 쉽게 찾아서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제자들과 학문적 자문을 구했던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정약용 선생은 그렇게 지식을 자신만의 색깔로 재창조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재능과 강점을 극대화하라

저자는 약점보완에 힘쓰기 보다는 강점에 주력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짐 카터라는 메이저리그 6승 투수가 자신이 가진 강점인 직구의 능력만을 극대화시켜 26승을 올렸던 사례를 들면서 왜 우리가 강점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덧붙인다.하지만 우리는 모두 짐 카터처럼 직구가 강점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고 필요하다고 하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흐르는 방향대로 우리의 인생도 흘러오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어제 ‘야심만만’에 출연한 고은아씨도 30대가 오기 전까지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지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브라운관의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그녀 자신의 재능과 강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분명히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고 또 잘하는 일을 할 때,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재능의 원천을 ‘동경’, ‘학습속도’, ‘만족감’의 세 가지로 정의한다. 즉, 재능이라는 것은 어릴 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고, 그 일을 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 일을 하고 나서 가장 행복한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인 것이다.

<리셋>이라는 책에서는 어항의 반을 갈라서 전기장치를 만든 다음 물고기의 이동경로를 제한하면 그 물고기는 전기장치를 풀고 나서도 절반의 공감에서만 활동한다는 예를 들면서 자신의 한계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필수 씨는 인간은 곧 우주이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의 한계가 없다는 그의 생각에는 동의하나 한계의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능률이 좋고, 원하는 일이 바로 내가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커가면서 특화된 부분으로의 실력을 집중시킬 수 있게 복잡다단하게 분산되어 있는 시냅스를 끊어줌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연결된 부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생존 독서력>의 의미란?

<생존 독서력>은 악착 같이 읽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무조건 읽는다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읽더라도 자신만의 언어로서 재해석하고 한가지로 집중하면서 읽어야 하고, 또한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가치관도 변하고, 관심사도 바뀐다. 게다가 머리가 복잡하면 단순한 책을 원하고,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는 재미있는 책을 찾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는 철학적인 내용을 찾게 된다. 한 시기를 보면 편식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맞는,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보는 것일 뿐이다.” (17쪽)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 손에 잡힌 책은 분명히 무의식중에 그것을 필요로 해서 읽게 된 책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한 책들 사이를 거닐면서 의식적으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꼼꼼히 찾아보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생존 독서력>의 저자 방누수님이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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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로맨스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독자들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하는 매력적인 ‘구성의 3요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현실에서의 지지부진한 연애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치명적인 유혹에 몸을 맡기고자 ‘로맨스’를 외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가정에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물, 사건, 배경이 주는 오묘한 매력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충분히 우리들을 만족시킬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이 소설은 ‘시간’이라는 절대 멈추거나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배경을 사건과 결합시켜 이리저리 제 멋대로 돌려가면서 우리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나는 이런 시간의 조각들로 구성된 여러 사건들이 스스로 퍼즐 맞추듯이 올바른 자리에 끼워 맞춰지는 것을 즐기면서 독자 스스로 새롭게 정리해나가는 소설의 서술방식이 재미있었다. 이미 <유랑가족>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와 유사한 방식의 전개를 가지는 이야기를 맛보았지만, 그 책은 인물을 가지고 퍼즐을 만들어 내었다면 이 책은 ‘시간’이라는 흐름을 통제하면서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주는 장치는 또한 주인공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시간 사이로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신기하면서도 친해지고 싶지 않을까?’ 이처럼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의 여주인공 ‘클레어’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는다.

게다가 6살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악마인지 유령인지 모를 그 인물이 시간 간격을 통해 의도하지 않게 ‘클레어’의 애를 끓이는 그런 ‘밀고 당기기’(?)의 싸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연애의 정석’이 무엇인가? 에 대한 깨달음까지 제공해 준다. 

항상 어린 ‘클레어’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헨리’는 삶의 깨달음을 먼저 맛본 어른이었고, ‘클레어’가 미처 알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많이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멘토가 바로 그였을 수도 있다.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상황에서 한 번씩 나타나는 ‘헨리’의 존재는 그녀에게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클레어’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헨리’는 그 위기의 근원을 철저히 응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로도 설명된다.

하지만 이런 시간 장치를 사용하면서도 전체적인 사건의 틀은 깨부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을 바꿔놓아 미래를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백투더퓨처’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모든 사건은 일어나게 되기 마련이며,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결정론적 시각’을 많이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교회가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간적인 배경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고,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날은 ‘헨리’에게는 어머니를 잃은 날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런 비극적인 크리스마스는 ‘결혼을 승낙받기 위한 ‘클레어’의 가족과의 만남처럼 기쁨의 날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 1>에서는 어떤 복선이 희미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헨리’와 현재의 ‘헨리’와의 차이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약간의 질투심이다. ‘클레어’가 ‘헨리’와 결혼을 하기 전. 아니 그녀의 과거에 만났던 모든 여러 나이대의 ‘헨리’는 현재의 ‘헨리’ 보다는 훨씬 보는 시각이 넓은 어른이다. 하지만 현재의 ‘헨리’는 책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문란한 행위를 즐긴 듯 하고, 한 여자를 버린 이기적인 인간인 것도 같다.

“클레어는 마래의 나와 지내는 걸 더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둘이 서로를 더 잘 알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또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어쩐지 맥이 빠진다.” (238쪽)

“나이를 먹은 나는 좀 더 마르고 좀 더 지쳐 있으며, 좀 더 단단하고 안정돼 보인다. 하지만 나와 함께 있으면 그는 거드름을 피울 수밖에 없다. 그는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나는 기껏해야 묵묵히 그가 하라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39쪽)

이런 현재의 ‘헨리’가 미래의 ‘헨리’를 질투하는 모습은 책에서 잠깐 내비치는데, <시간 여행자의 아내 1>권에서는 이런 모습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별거 아닌 것과도 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희미하게 구성시키고, 우선은 독자들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하는 ‘헨리’와 ‘클레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도 1권의 내용들은 몸 풀기 정도가 아닐까 지레짐작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2권의 페이지를 넘겨본다. 나는 2권의 50쪽도 읽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결혼을 하고 난 이후에 서로에 대해서 적응하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 같다. 어떤 반전이 숨어있을까? 미래를 알 수 없는 과거의 ‘헨리’가 미래의 ‘헨리’를 질투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나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2>를 질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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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호모 이코노미스트’는 사랑이나 미움, 기쁨이나 슬픔 같은 인간의 체취가 완전히 제거된 존재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물질적 측면일 뿐이며, 그는 오직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17쪽) 

경제학에는 인간을 매우 합리적인 동물로 묘사한다. 인간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의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한가는 것이 경제학적인 인간이 가져야 하는 특성인 것이다.

경제학은 또한 인간을 매우 이기적인 동물로 묘사한다. 인간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이런 이기심이 만들어낸 산물들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심도 물론 경제학적 인간이 가져야 하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36.5℃ 인간의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을 가진 ‘호모 이코노미스트’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 부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즉, 정말로 인간은 모든 판단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정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가? 라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고전경제학 이론의 타당성 여부를 합리적, 이기적과 같은 기본가정에서부터 다시금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 이준구 교수는 이를 위해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식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의 잣대를 적용하여 우리의 경제학적 활동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행태경제학에 빠졌다고 독자에게 고백한다. 그는 이 이론을 접하면서 좀 더 새로운 눈으로서 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도 아직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과 함께 같이 한번 공부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휴리스틱’을 들어보았는가?

우리는 경험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접했던 상황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착각이 발생한다. 인간은 이처럼 경험에 따른 판단에 매우 의존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계산해보지 않고 경험을 토대로 해서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이런 ‘휴리스틱’을 가지고 판단을 했을 때의 장점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는 통찰력을 발휘해서 일처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휴리스틱’의 단점은 이런 판단을 거친 결과가 아쉽게도 100%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예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이런 ‘휴리스틱’을 많이 이용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취업시장인 것 같다.

물론 기업들이 각각 제시하는 것들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고 다양하게 하기 위해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테스트 도구들을 많이 개발해내고 있지만, 그런 지원 자격을 만족하는 인재가 그들이 원하는 인재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도구들 거의 대부분이 ‘휴리스틱’에 의거한 것들이므로 그들이 원하는 인재가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각 기업들에게는 인재를 장기간 보면서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여러 잣대를 만들어내서 솎아내는 작업을 거쳐 인재를 선별하는 작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뽑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솎아낸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는 과거에도 같은 도구로 인재를 뽑아왔던 기억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휴리스틱’을 발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고, 자신의 기준점에 의존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일례가 되는 상황이며, 우리들은 각자 이와 같은 ‘휴리스틱’을 하나씩 소유하면서 사물을 판단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이처럼 글을 쓴다. 그러나 우리들도 정확하게 합리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닻 내림 효과’라고 들어보았는가?

이 책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인간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을 우리들에게 소개시켜준다. 분명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속임수에 속진 않겠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왜 속는지도 모르면서 비합리적인 경제활동을 벌인다.

닻 내림 효과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아무 상관없는 숫자를 보고서도 우리의 판단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숫자를 보고 그 숫자를 우리들의 결정에 있어서의 기준점으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믿기 힘들겠다면 이 책을 펼쳐보아라.  

공정성에 관한 고찰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가?' 에 대한 물음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몫나누기 게임', '싫으면 말고 게임', '독재자 게임' 등과 같이 인간의 이기심을 시험하는 여러 가지 실험장치를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만약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그 실험의 결과는 상대방에 대한 몫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이기적이라는 잣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이기적'이라기 보다는 '공정성'에 더욱 가까운 결과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기심보다 공정성을 더욱 중시한다는 사실은 내 경험으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는 어머니께서 게를 샀다면서 웃음을 띈 얼굴로 말씀하셨다.
"오늘 시장에 갔다가 트럭에서 파는 게를 봤는데, 세 마리에 얼마하는 것을 세마리는 안 산다고 해서 싸게 네 마리를 사서 친구랑 두 마리씩 나눠서 가지고 사왔다." 
나는 안그래도 싸게 파는 게 값을 왜 그렇게 깎았냐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그렇게 파시는 분 가격 깎아서 뭐하실려구요, 경제도 가뜩이나 안좋은데 그냥 사주시지..."

이것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해 본다면 판매자는 게를 싼 값에라도 네 마리를 파는 것이 아예 팔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기 때문에 어머니께 순순히 싼 값에 게를 네 마리 팔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도 역시 원래 가격 보다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구매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냥 사주시라는 말을 내뱉었을까? 

이런 일화를 통해서 본다면 판매자인 아저씨와 구매자인 어머니는 '호모 이코노미스트'에 근접한 사람이고, 나는 상당히 비합리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도 "그냥 살걸..."이라고 수긍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기심에 의거한 판단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이론으로 봤을 때, 어머니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구매당사자나 판매당사가가 될 때는 이런 이기심의 발현이 가장 극대화하여 일어나고,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이기심보다는 공정성이 우선적으로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흘러갔을 때, 공정성이 더 발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테스트 같은 경우를 판단해보자면 테스트에서 이기심이 공정성보다 더 약하게 나타난 것은 바로 그 결과가 실제로 자신의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테스트라는 막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기심이 잘 일어나지 않은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식시장

이 책은 주식투자에 대한 공략 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략법의 전제 역시 주식시장은 비합리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공간이므로, 그 틈을 공략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세부적인 투자스킬을 상세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비합리적임을 인정한다면 기회(가치주 전략, 모멘텀 전략)는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즉, 합리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효율시장이론에 따르면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비합리적인 결정을 많이 하는 투자자-가격이 떨어지면 만회하고자 계속 들고 있고, 오르면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재빨리 팔아버리는 것-들에 의해서 분명히 틈이 보인다는 그의 지론이었다.

<36.5℃ 인간의 경제학>

전작 <쿠오 바디스의 한국경제>를 읽을 당시 그는 서문에서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마음 아파했던 글을 썼었던 것 같다. 출판사나 언론에서도 원고제안이 잘 들어오지 않는 꽉 막힌 교수 중의 하나였다고 나직이 서운한 감을 내비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는 직접 홈페이지도 운영하면서 학생과 독자와의 소통을 시작했는데, 이번에 펴낸 이 책을 보니 그는 아예 더 넓은 소통의 영역으로 빠져들기로 작정한 듯싶다.

소통. 그리고 함께 공부하자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책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고전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호모 이코노미스트’ 즉.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을 부정한다. 특히, ‘F폭격기의 추억’이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휴리스틱’ 때문이라고 푸념하는, 재미있는 글도 있다.

이준구 교수는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36.5℃의 체온을 가진 따뜻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할 수 있는 휴리스틱을 숨겨둔 비합리적인 인간이며, 모든 정보를 다 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제한적 합리적인 인간이며, 이기심보다는 공정성을 더 고려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이 책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학생의 설문결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번에 도모노 노리오가 쓴 <행동 경제학>을 구입하고 나서, 지레 겁먹고 펼쳐들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때의 겁이 지금의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입문서로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인간이 왜 경제학적 인간이 아닌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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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2 - 7년 후 다시 만난 쉴라와 헤이든, 그리고...
토리 헤이든 지음, 이수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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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리와 쉴라의 두 번째 만남을 다루고 있는 <한 아이2>는 전작 <한 아이1>과 15년의 간극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었다. <한 아이1>도 그렇고 <한 아이2>도 그렇고 출간계획이란 없는 그저 단순한 추억되새김질에 불과했는데, <한 아이1>가 사회에 불러일으킨 파장은 상당히 대단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녀에게 “쉴라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만약 당신도 <한 아이1>을 보면서 ‘길들여짐’을 배운 어린 소녀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했다면, 바로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15년 터울의 이야기를 곧바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사실에 감사하면서 책을 펼쳐보자.

<한 아이1> 그리고 7년 후…….

특수학교의 추억을 뒤로 하고, 토리는 쉴라와 같은 장애아를 보살피기 위한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제도권의 틀에 박힌 수업방식은 이미 실전경험을 쌓은 그녀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공부를 위해 남자까지 포기했던 그녀로서는 상당히 손해 보는 기간이었으나 그래도 어찌하리오. 현실이 다 그런 것일진대…….

어떻게 저떻게 해서 과정을 수료한 후, 그녀는 쉴라를 만날 수 있는 지역 근처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토리와 쉴라는 7년만의 재회를 하게 된다. 쉴라는 어떻게 변해있었을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물음에 간단히 대답해보자면 쉴라는 파마머리를 한 매우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춘기의 소녀로 변해있었다.

쉴라는 토리가 떠나간 이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진 못했다.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몇 번의 위탁양육을 거치고, 어린이집 생활을 해야만 했다. 분명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미래는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그녀의 우수한 두뇌를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녀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맘껏 공부하고 있는 미래였지만, 열악한 환경이 주는 불행은 아직까지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토리와 쉴라. 두 사람의 기억차이

토리는 기쁜 마음으로 7년 전의 추억을 담은 <한 아이1>의 초고를 쉴라에게 읽어보게 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난 후, 쉴라의 반응은 토리의 예상과는 달리 미지근했다. “7년 전이면 제가 6살 때 이야기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라고 쉴라는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쉴라는 토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화들을 꺼내어 놓는데, 토리는 옛날의 추억을 공감하고 기뻐하길 원했기에 두 사람의 시각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토리는 어색함을 느껴야했다.

<망각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과거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현재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 것은 실망만을 불러일으키는 바보짓“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토리와 쉴라의 추억은 <망각의 힘>의 말처럼 과거로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재에서는 과거의 기준점을 걷어버리고 새로운 벽돌을 쌓아야 하는 것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동료의사 제프가 말한 것처럼 둘 다 7년 전의 상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과 쉴라는 둘 다 똑같은 병에 걸려있다는 거예요. 그 애가 기억하는 거라곤 자신한테 절대로 화를 안 내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당신이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깨닫자 당황한 거예요. 그렇지만 헤이든 당신도 똑같아요. 당신이 기억하는 쉴라도 쉴라가 아니라 책 속의 여섯 살짜리 어린애죠. 그게 지금 그 애에 대한 당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거구요.” (81쪽)

과연 쉴라는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쉴라는 토리와 함께 7년 전의 상황과 비슷한 교육시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쉴라는 과거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되살려낸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술과 마약에 빠진 아빠와 살았고, 동네 꼬맹이를 죽일 뻔 했고,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과거의 수렁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선생님과의 추억을…….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탐하려고 하고, 욕하고, 밀어내고 있었지만, 5개월 동안의 짧은 만남은 그녀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떠나고 나자 꿈 같이 행복했던 순간은 정말로 꿈과 같이 사라지고, 과거와 같은 시간이 다시 이어졌다. 

“왜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고 떠났나요? 당신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그 행복과 다시 찾아온 불행 속에서 더욱 힘들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모든 것을 잊자고 다짐했어요. 잊자고 다짐하면 모든 것이 정말로 잊혀지는 것 같았거든요.”

쉴라에게 행복했던 그 6개월이 희망고문이었다는 사실. 우리는 이런 비극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비록 자신의 친구에게 쉴라를 맡겨놓고 떠났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잠시 그녀의 아버지는 마약에 빠진 사람이었으며,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쉴라는 기억을 못한 것이 아니라 기억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 자체를 느끼면 미쳐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남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엄마는 도망갔고, 교도소에 들락날락 거리는 아빠는 맨날 나한테 밤마다 남의 성기를 빨게 하고……. 아 이렇게 불행한 나에게 그때의 행복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이야.’ 아마도 쉴라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울부짖는다.

“젠장. 그들은 어디 있죠? 우리엄마는 어디 있죠? 그 문제라면, 우리 아빠는요? 나한테 이런 일을 해주는 게 왜 항상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냔 말예요? 왜 우리 부모는 한 번도 날 돌봐주지 않죠? 내가 그렇게 나쁜 앤가요?” (317쪽)

쉴라는 행복했던 기억을 잊기 위해.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떠난 엄마의 기억과 선생님의 기억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았다. 엄마가 그녀를 차도에서 밀어버린 그 순간을 선생님과의 기억 속에 위치시키는 것으로 5개월간의 기억을 난도질해 놓고 난 후에야 그녀는 “행복한 기억은 없었어. 나는 오로지 버림받았을 뿐” 이라는 자기 체념의 상태로 빠져든 것이었다.  

Tiger's Child. 쉴라

그러나 쉴라는 보통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호랑이처럼 강한아이였다. 그녀는 힘에 부쳐했지만 자신의 어깨에 있는 짐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었던 아이였다.

비록, 선생님과의 재회로 예전 기억을 되살려내는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추억 때문에 힘이 들었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일말의 희망을 위해 엄마를 찾아 나섰던 결과는 허무했지만 결국 이 호랑이 같은 소녀는 자신에게 관련된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선생님은 내가 그런 일들에 길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엄마가 날 떠났다는 것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어요. 어쩌면 일어났어야 했을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요. 또 그때 선생님은 내가 용서하고 흘려보내야 한다고도 했어요.” (326쪽)

“이제 그냥 엄마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걸 알겠어요. 내가 그 문제의 일부였다는 건 그냥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는 것도요. 그리고 우리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어쨌든 전 이렇게 생각해요. 그걸 뛰어넘을 수는 없다. 밑으로 지나갈 수도 없다. 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려고 해왔지, 그러니까 갈 데까지 가보는 게 더 낫겠다고요. 이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327쪽)

“전 선생님이 흘려보내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어요.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흘려보내라고 하셨죠.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용서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흘려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요. ‘흘려보내는’ 것이 뭘 뜻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냥 앞을 보고 살아가라는 뜻인가보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요.” (328쪽)

<한 아이>가 내게 준 것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깨달음 스스로 찾아낸 쉴라의 여정은 나에게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불러 일으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물샘을 자극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결국 그들을 모두 용서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내 스스로도 그녀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얻었다.

하지만, 우리가 쉴라의 이야기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은 산더미 같이 많이 쌓여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쉴라 같은 것은 아니다. 쉴라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에 굶주려있고, 보살펴주길 원하고 있다.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들을 탄생시킨 부모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장 맞벌이에 힘들어 위탁기관에 맡긴 채 ‘모든 것이 잘 흘러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면 이 책을 보면서 부모의 사랑이 왜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인지 깨닫길 바란다. 부모가 스스로가 가방끈이 짧아서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학원에다가 무작정 떠넘기지는 말자.

공부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맺어지는 교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미 부모가 스스로 책을 읽고 공부하려는 마음가짐이 자식을 공부하게 만들고 성공으로 이끈다는 사실은 많은 책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그러니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녀와 함께하시기를 당부해드리고 싶다. 토리와 같은 선생님은 그렇게 많지 않다. 환상을 걷어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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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 1 -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 한 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이희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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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그리고 또 한 학기. 이렇게 일 년을 우리들과 함께 보냈던 담임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학창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참으로 우리는 우리들 생각 밖에 안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정들었던 선생님의 웃음과 목소리 그리고 추억들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얼마나 바로 내일로 다가온 방학의 기쁨을 만끽하려고 애를 썼던가?

토리 헤이든의 <한 아이>를 읽으면서 나는 방학이라는 기간이 왜 그렇게 길게 주어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 중에서 어떤 재미있는 것을 잊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재미난 일을 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데, 한 달가량의 방학은 선생님과 떨어져있기 싫어하는 동심을 유혹하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방학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선생님이 우리를 그리워하는 것을 외면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우리가 현재의 정에 깊숙하게 얽매이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다음 학년의 새로운 기다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아이>의 아이들은 방학이라는 즐거움 따위로는 교사와 제자들의 교감이 쌓아놓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로막질 못한다. 방학뿐 아니라 어떤 것도 쉽게 그들을 떼어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토리 헤이든과 그녀의 제자들. 특히 쉴라는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토리와 쉴라의 관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주 인용되는 셍텍쥐베리의 <어린왕자>. 그 책 속의 여우와 장미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나는 <어린왕자>를 자체적으로 읽었을 때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그 ‘길들여짐’에 대한 절절한 느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어린왕자가 길들인 여우와 장미는 왕자가 사랑을 쏟은 수많은 것들 속에서의 유일무이한 친구였다. 토리와 쉴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유일무이한 선생님이자, 유일무이한 제자 사이로 길들여짐을 알고, 쉴라는 <어린왕자>를 통해서 새로운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쉴라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 이별이 영원함이 아니라 추억임을 알아간다. 그렇게 쉴라는 내적으로 성장을 이룬다.

왜 쉴라에게는 <어린왕자>의 길들여짐이 절실했나?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땠을까? 그녀는 고작 6살의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차도에 내다 버리고나서 그녀의 동생과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는 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극빈층의 구역인 이민자 거주지에 살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쉴라는 혹여나 아버지마저 그녀를 떠나버릴까 봐서 아버지가 원치 않는 행동. 그 자체를 야기하는 모든 것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바라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매질을 쉴라는 당연히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지한다.

이렇게 비뚤어져버린 애정결핍이 낳은 그릇된 소유본능과 생존본능은 그 비뚤어짐이 점점 더 커져가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이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낳게 한다. 그녀가 다른 아이를 숨지게 할 때까지……. 그 누구도 쉴라의 이런 행동에 제동을 걸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고작 6살의 나이에 살인을 하게 된다.

그러나 토리 헤이든과 쉴라의 만남은 쉴라에게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갖게 도와준다. 뒤틀려버린 쉴라의 자아를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없었다면, 만약 쉴라가 계속 그런 인생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아마도 ‘히틀러’와 같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라고…….더욱이 그녀의 뛰어난 지능은 더욱 위험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함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히틀러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따르면 히틀러는 항상 부모의 횡포 때문에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자랐고, 그 때문에 생존본능이 그릇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으나 그것을 바로잡아준 선생님이 없었기에 그는 커서도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들과 자신의 동족에 방해가 되는 인종을 모조리 살해한 잔혹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던 쉴라에게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게끔 만들어주었던 똑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반 친구들과 그녀의 선생님. 그들의 정서적인 편안함이 가져온 <길들여짐>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한 아이>라는 책을 탐독하면서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경험이 아니었나 자문해본다.

한발 더 나가서, 유아교육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자인 토리 헤이든이 아이들을 다룰 때, 쉴라와의 마찰이 생겼을 때, 그녀가 어떻게 슬기롭게 그 상황을 무사히 넘겼는지 꼼꼼히 살펴보면서 읽어본다면 앞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순간의 여러 가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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