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1.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표지를 넘겼다. 그랬더니 "읽어보는 것도 좋다"라는 진심을 담은 문장 보라색 빛 면지에 궁서체로 박혀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감각은 추천사를 남긴 가수 요조가 놀라워했던 인과성에도 드러난다. "사람들이 서점에 오지 않는다." 이 문장 바로 다음에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라는 문장을 밀어넣는다. 천연덕스럽게.  


하바 요시타카라는 인물은 생소하다. 표지에는 이 사람을 세계적 북 디렉터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국내에서 그를 다루었던 기사는 현대카드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도서 선정 작업에 참여한 이력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실은 기사가 유일했을 정도다. 현대카드 측에서 이 사람을 초청해서 도서관의 장서 선정을 의뢰했다면 세계적인 북 디렉터라는 수식어는 과장된 말은 아닌듯 싶다.


그는 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일본의 각 지역에 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한다. 병원, 백화점, 카페, 기업 같은 곳에서 간이도서관처럼 작은 공간을 만들면, 저자 하바 요시타카는 그곳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책을 선정해서 비치하는 일을 한다. 바흐라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직접 작업에 참여한 도서관의 이미지와 그동안 썼던 칼럼을 읽을 수 있다.  


2.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에 실린 글이 홈페이지에 소개된 칼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작가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주제에 맞게 정리한 것이다.


하바 요시타카는 사람들에게 책 따위는 안 읽어도 좋지만, 읽어보는 것도 좋다라고 수줍게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가장 큰 이점은 뭐니뭐니해도 연결고리를 생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경험에서 그와 유사한 사례를 책은 무한히 생성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의 선택과 책을 읽은 후의 선택은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


그가 칼럼을 쓰는 스타일도 그렇다. 그는 어떤 주제와 거기에 관한 책을 굴비엮듯이 엮어서 한꺼번에 소개한다. 이런 방식으로 인하여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 예를 들면 [축구와 책이 만나다]라는 챕터에 실린 '고통으로서의 오락'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아스널의 광팬인 그는 닉 혼비의 책을 통해서 연결고리를 공유한다. 그리고 유대감이 더욱 강화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아스널과 열한 살의 닉 혼비가 처음 만났던 1960년 말 이후의 아스널. 보다 완벽한 아스널을 사랑한다. 폭이 넓어진다. 선택에 확신이 더해진다.


3.


이 책에 실린 모든 칼럼은 대부분 무난하게 읽혔다. 이 가운데서

- [창작자의 시선] 챕터. 어떻게 자신을 단련하는가의 고찰


40. 이렇게 물건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하는 변명을 하면서 '봤다'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 본 척'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63. 손과 마음을 쓰지 않으면 기분 좋은 장소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몸을 사용해 디자인한 것만 몸에 전해지고 기억에 남죠.


73. 늘 검은색 작은 공책과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자신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을 그대로 붙잡아둔다.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넘쳐나는 감정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흘러가는 대로.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서평. '된장국과 무라카미 하루키',


90. 스토리성을 거부한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자키 스쿠루는 차례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한 내성이 있는 만큼 사람들이 통과해 지나는 플랫폼 같은 자신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다. 색채가 없는 그는 무색의 유리그릇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 <호빵맨>에 담긴 정신을 다룬 기고문. '왜 태어났고 무얼 하며 살까',


232. 얼굴 없는 영웅이 하늘을 난다. 그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도 없고, 알아보는 것은 호빵을 받은 사내아이 한 명뿐이다. "진짜 정의는 결코 멋진 것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자신도 크게 상처를 입는다." 그림책 에필로그에서 야나세 씨는 그렇게 말한다.


232. 헌신과 살신의 안티히어로. 그것이 야나세 씨가 그리고 싶었던 호빵맨이었다.


- '전자책 사용 후기'


252. 종이에 비해 '되돌아가 읽기' 조작이 미덥지 않은 전자책은 직선적인 이야기의 재생에서는 타고난 특색을 발휘한다. 하지만 단편이 복잡하게 얽혀 몇 가지 시간축이 병행하거나 오가는 이야기는 솔직히 조금 읽기 어렵다.


이런 칼럼들은 인상깊었다.


4.


특히, '소리 내서 읽어보면' 같은 칼럼은 날짜에 맞춰 번호를 부르고, 일으켜 세워서 그렇게 읽기를 시켰지만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낭독의 진실. 낭독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지 알려줘서 감사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낭독은 글씨를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낭독을 하면서 낭독자가 완성한 그림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라고 한다.


262. 낭독자는 단순히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들려준다. (...) 시각을 포기한 채 청각으로 스며드는 말에 젖어들면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기 넓어진다. 소리가 된 영감이 자신 안의 이미지를 키워 이야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 이미지는 또렷한 윤곽을 갖고 듣는 사람 안에 뿌리를 내린다.


낭독자가 만들어낸 그림이 듣는 사람에게 정확히 닿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낭독해서는 안될 것이다. 머리로 충분히 그림을 그릴 시간이 필요하므로 읽는 속도가 빠를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결국, 읽는 것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표상하는 행위들이다. 여기서 다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만약, 그런데 이런 것이 중단되고, 모두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수용하기에 바쁘면 사람들은 더는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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