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1.
소설의 첫 문장이다.
13. 이 세상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기억과 양심, 진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도. (...) 사람들은 늘 사라진다.
이 문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고요한 밤의 눈>에서는 D의 언니가 사라졌고, X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리고 Y의 어머니의 삶이 사라졌다. 그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양심과 진실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의 시야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소설의 초반부는 15년이라는 시간을 잃은 X가 느끼는 절망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문장들이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는 이런 문장.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을 표출하는 문장은 매력적이었다.
X : 26. 그들은 나에게 질문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을 재고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예측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통해 나의 잃어버린 과거를 분석했다.
2.
행방불명 된 언니를 되찾고, 기억상실에 걸린 남자가 기억을 회복하면서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일반적인 소설들의 결말일테고, 독자로서도 어느 정도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으로의 전환. 문제해결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면서 소설을 읽게 마련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결말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행방불명 된 언니는 소설의 끝에 이르러서도 D의 결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남자가 잃어버린 15년의 기억도 회복되지 않았다. 첫문장의 말처럼 그들은 사라진 것이다. 양심과 진실을 덮으려는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말에서 철학적인 성찰이 돋보인다. 뭐랄까. 시간은 되돌릴 수없고, 흘린 물은 주워담을 수 없듯이.이 세계에서 원상태 그대로 회복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현재 상태를 딛고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제약이면 제약일 수도 있고, 고난이면 고난일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해석되었다.
3.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이라는 기준으로 층위를 나눌 때,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 X,Y,B는 권력자를 위해서 일하는 스파이. 즉,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X,Y,B의 관점으로 서술하는 챕터 속의 주변인물 역시 한때 요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D의 언니는 정신과 의사이며, D도 언니에 준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Z는 불굴의 소설가다.
B : 77. 이제 사람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유인 편을 존경을 넘어 숭배한다. (...)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태어날 때도 무이고 앞으로도 무일 사람들이 타고난 유들을 찬양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Z : 102. 나는 비겁해지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이것도 변명이고 열등감이고 패배의식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이제 이 일은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부심과 자존심만으로 버티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좁고 빈약하지만 진짜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박주영 작가가 이러한 인물들을 소설에 배치한 이유는 이제는 민중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작가는 민중의 힘은 1%를 위해 달려가는 10%의 계층의 감시와 억압과 회유에 의해 무뎌지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민중의 힘이 발휘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43. 가장 큰 적은 우리가 아니라 무관심이야. 무관심 때문에 소수의 절대적 지지만으로도 다수를 대변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수를 대변하는 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게 된 거야.
243의 문장은 B와 마주한 상부의 목소리다. 이것은 시스템을 조종하는 존재에게서 이탈을 고려하는 B를 회유하기 위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민중의 힘이 무뎌지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사람들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행위들은 의도적으로 행해진다.
다행스럽게도 B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볼 수 있었다. 유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10%에 위치한 사람들이 <고요한 밤의 눈>에서 1%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B의 독백처럼 권력자의 의도대로 사회를 통제하는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은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 같다
X : 285. 어떤 이는 절망을 봤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이는 자신의 죽음을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 미래는 반드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미래를 바꿀 수는 없을까요? 누군가는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 애쓰기 시작합니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는 현실을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런 내가 본 미래가 아주 절망적인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 사실을 확정된 미래로 받아들이고 포기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제 마음이 대답하더군요. 너무너무 절망적이라면 오히려 죽을 힘을 다해 바꾸고 싶어질 것 같지 않은가. 라고
X의 고백에서 X가 왜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능함 때문에 절망적인 미래를 봤고, 그것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에 조직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인지. 기억을 잃은 X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를 가정했을 때도 과거와 같은 선택을 내린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쯤 읽었을 때, 여기에서 첫문장의 사라짐은 타의에 의한 사라짐. 그리고 자의에 의한 사라짐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타의에 의해 사라진 사람은 정체성이 완전히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 양심과 진실과 사랑을 회복한다. 자의에 의해 사라진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계획한다.
그것은 어떤 독서클럽이라는 활동으로 구체화되는데 그들은 세상에 '패자의 서'라는 것을 남기기로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면이 되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패자의 서라는 것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통해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10. 기꺼이 패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패자의 서는 정해져 있는 책이 아니다. 이미 쓰여져 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책이 패자의 서가 될지 모른다. 패자의 서는 앞으로 쓰여질 책, 우리 모두가 쓰게 될 책이다.
4.
'패자의 서'라는 것은 패자들의 이야기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떠오른 것들이다. 카프카나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부조리를 폭로하는 소설. 앞서 읽은 한강 작가의 소설처럼 권력을 쥔 존재의 오만함과 잔인함을 폭로하는 소설들은 그 당시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 '패자의 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한국영화도 이런 것들을 잘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것들.
Z : 295. 어떤 이들은 밤을 낮처럼 즐겼고, 어떤 이들은 밤을 낮처럼 일했다. 누군가는 일 없이 휴식하고 누군가는 휴식 없이 일했다. 휴식 없이 일하는 자들로 인해 일 없이 휴식하는 자들의 자산은 늘어났다. 그들은 그 가치를 정당하게 배분하지 않았다. 독점은 습관이 되었고 당연한 이치가 되어갔다. 착취는 습성이 되었고 당연한 방식이 되어갔다.
오늘을 말하는 '패자의 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것이 앞으로 쓰여질 책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요한 밤의 눈> 이 책이야말로 패자의 서의 일부가 될 자격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5.
265. 이런 시대에 작가의 역할은?
제대로 된 관찰자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해.
인생과 소설은? 소설과 세계는?
인생은 언제나 한 가지 이유가 하나의 결과를 낳는 식으로 굴러가지 않아. 어떤 소설은 조용히 마음을 건드리고 오래도록 생각을 하게 해.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삶을, 다음에는 나의 삶을, 결국에는 이 세계를
275. 책은 위험하지. 책을 대신할 유희는 많지만 책보다 생각을 깊이 전달하는 것은 없지. 책은 만드는 데 돈이 덜 들고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떠돌면서 불어나니까. 한때 작가는 시대의 양심으로 일종의 혁명가였어. 그리고 혁명가는 거의 모두 작가야. 그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이야기를 남기지. 지배자들은 그래서 늘 책을 없애려고 해. 언제 죽을지 모를 세상에 책은 육체가 사라져도 살아남는, 영혼 같은 거거든.
279. 자신의 밥벌이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소설을 전락시키는 것. 아무도 읽지 않고 그래서 다시 쓸 수 없고, 쓰지 않으니 읽을 수 없고, 그런 악순환을 누군가가 만들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