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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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책으로 이루어진 기록물입니다. 한 책의 두께가 1.7㎝인데, 이것을 차례로 쫙 쌓아 올리면 무려 아파트 12층 높이가 되는 양이에요. 어마어마하지요? 전부 다 읽으려면 하루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답니다. (...) 1997년에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랍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 사관이 저술한 '편년체'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리되. 조선을 다스린 스물일곱 왕의 이야기를 왕가의 가계도를 통한 왕위 계승의 과정과 반정과 붕당과 세도정치라는 각기 달랐던 권력싸움의 흐름. 그리고 그 시절에 일어난 전쟁과 반란과 같은 큰 사건과 각 백성을 위한. 혹은 왕권 강화를 위한. 혹은 탕평을 위한 임금들의 노력과 업적을 기본 뼈대로 한다. 그것에다가 익살스러운 삽화나 설명.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실록 내의 자료나 야사나 다른 참고 문헌의 기록을 덧붙여 역사를 공부한 지 오래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블로거들이 남겨놓은 이런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각 임금을 다룬 마지막 페이지마다 하나씩 실려있는 표로서 설민석 작가는 이와 같은 한 장의 마인드맵으로 임금에 대한 평가와 정리를 갈무리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사실 이 마인드맵이 먼저 설정된 이후에 이 마인드맵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냉정하게 판단해서 이 책은 내용의 깊이보다는 설민석이라는 브랜드가 더 강한 책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들 역사덕후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에게는 시시한 책일 수도 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에서, 그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왕이나 귀족의 성과와 업적과 흠결에 집중한 나머지 시대적인 갈등으로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고민을 놓치는 점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인정하더라도 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이렇게 확실하게 응답한 작가는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쉽게 정리하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하룻밤에 읽는> 시리즈만큼이나 명확한 입문서가 아닌가 싶다. 특히,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와 이 책을 함께 읽으면 꽤 괜찮은 시너지가 날 것 같다.

 

3.

 

이 책을 통해 고정관념이 깨진 임금은 단연 문종이었다. 장영실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측우기도 사실은 문종의 업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조선 최고의 미남으로 유명했단다. 병자호란 이후에 불탄 궁에서 수염이 길고 풍채가 멋진 왕의 초상화 한점이 발견되었다는데 삼국지의 관우를 닮은 모습으로 단박에 문종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144. 문종은 성군 세종 밑에서 30년 동안 세자 시절을 지내며 착실하게 후계자 수업을 받은 왕이에요. 게다가 아버지를 대신해 8년 동안 대리청정을 했기 때문에, 왕이 되기 위한 수습기간도 충분히 지낸 사람이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극 속 문종은 언제나 병약하고 아들 걱정만 하는 아들 바보로 그려지고 있어요.

 

145. 임금이 말하기를, "대사헌 안완경이 이르기를, ' 『근사록』의 상을 끝마친 뒤에 마땅히 육전을 강해야 한다'고 하나, 내가 생각하건대 육전은 반드시 강할 필요가 없으나 병서는 강하고 싶다."   『문종실록』 4권, 즉위년(1450) 11월 23일

 

문종은 즉위한 해에 경연에서 병서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경연은 본래 유학의 내용을 토론하는 자리지 군사와 관련한 내용은 절대 언급되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종은 신하들에게 병서를 논의하자고 할 만큼 군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임금이었지요.

4.

이 책을 읽기 전이나 후나 고종과 순종에게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설민석이 평가하는 고종과 순종의 내용대로라면, 일제가 한반도를 침탈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아니 조선의 밝은 미래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요즘 개봉한 <덕혜옹주>의 역사왜곡 문제 (사실 원작 소설에서도 권비영 작가는 덕혜옹주를 나라를 잃어버린 채, '내선일체'의 일환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인과 결혼한 불쌍한 여인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조용히 사람들에게 잊혀져 간 여인으로 그리지. 독립운동을 계획하는 주체적이며 강한 여인. 특히, 연단에 서서 연설하는 장면은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다.)로 제법 시끌시끌 하던데. 일본제국에 붙어버린 왕족들의 기록을 애써 외면하고, 그들을 비밀결사대라는 억지설정로 묶는 이유에 공감하긴 어렵다. 영화의 흥행과 돈벌이를 위해서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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