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 1 : 신과 인간의 공존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하다 1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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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오스에서부터 시작된 문명. 그 문명은 황금과 은과 청동과 철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탐욕으로 오염된다. 서로의 몫을 질투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신들은 경쟁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점점 더 오만해진다. 제우스라는 최고의 신은 여성을 노리개 따위로 생각하면서 아무 여자나 탐한다. 누이를 자기의 아내로 삼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배우자가 있는 여인도 마음대로 빼앗고, 아름다운 여인이 보이면 여신 헤라의 눈을 피해 몰래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신과 인간의 공존을 주제로 한 <그리스로마신화가 말을 한다>에서는 비윤리적인 행동들 저지르는 신들의 이야기와 신들에 대항하는 프로메테우스나 시시포스와 같은 인간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의 열망과 바람과 좌절과 복수와 질투와 결실. 같은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 이야기들은 과거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와 구본형 선생의 <신화 읽는 시간>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완전히 까먹지않고, <그리스로마신화 말을 하다>를 읽는 도중에 관련 내용이 떠오르면서 즐겁게 읽었다.   

 

<그리스로마신화 말을 하다>의 장점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되. 가급적이면 공통적인 주제로 관련 인물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소개한다는 점과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서술한다는 점과 각 신들과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명작을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었다.

 

2.

이번에 그리스로마신화를 다시 읽으며 느낀 점은 제우스와 같은 포식자 단계의 신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였던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에게 했던 것처럼 그도 그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해한다. (물론, 둘은 서로 적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제우스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힘의 우위가 만들어낸 자리가 자기의 것이 당연한듯이 차지한다. 그러나 인간인 오이디푸스는 도덕적인 책임 때문에 자신의 친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거부하기 위해 나라를 떠났고,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기어코 신탁대로 아버지를 해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비극을 알게되자 죄책감에 휩싸여 자신의 두 눈을 찌름으로써 천륜을 저지른 자신을 벌한다.

이러한 제우스와 오이디푸스의 대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어떻게 보면 신보다 훨씬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순수한 인간들의 거의 대부분이 신의 명령을 어기거나 신에게 대항했다는 이유로 죄를 물어 인간에서 인간보다 미개한 동물과 식물 따위로 전락하거나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았다.

3.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오랜 세월동안 읽어오면서 신을 절대적인 존재라고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을 한껏 낮추었다. 신의 전지전능함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인간의 좌절감은 크게 다가왔다. 무서운 형벌의 설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신의 노여움'을 무의식에 심고,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도덕적인 일탈을 막기 위한 계몽 장치로 정당화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신의 개념은 왕족이나 귀족같은 특정계층의 기득권을 위해 악용되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신을 믿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 전체를 이롭게 하는 행동이며, 더 나아가서 지구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위하는 행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렇게 착각하거나 스스로를 다그쳤을지도 모르겠다. 1. 신과 인간의 공존은 불평등했다. 결론은 신들의 이야기는 즐거움보다 조금은 거북스러웠고, 차라리 진실한 사랑을 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었다. 얼른 영웅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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