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 이중섭의 삶과 예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예술기행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1.
허나영 작가의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은 이쪽 계통은 문외한인 나에게 이중섭 화가의 고난의 삶과 세상에 남긴 흔적으로 안내해 주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십대 시절 그녀는 이중섭 화가의 <흰 소>를 처음 마주하면서 느꼈던 흰 소의 굳건하고 의연한 인상 덕분에 미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천재화가 이중섭에 대한 짝사랑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2.
작가는 마치 순례 기행을 하는 것처럼 이중섭 화가가 생전에 머물렀던 고장(일본,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답사하고, 도시가 되어버린 현재의 공간에서 이중섭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사후 60년이 지난 뒤에서야 방문한 그곳에는 이중섭이 남긴 흔적보다는 이중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영 작가는 이중섭 화가의 어려웠던 시절의 삶과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보낸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며 절박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이중섭 화가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을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대중들에게 공개된 이중섭 화가의 작품에 대한 여러 갈래의 전문가 해설들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도 간결하게 전달해준다.
민족화가 이중섭의 한국 화공이라는 정체성과 이중섭 화가의 분신으로 평가받는 소의 몸짓을 그린 역동적인 작품, 아이들. 특히 이중섭 화가의 자식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려낸 군동화. 그가 머물렀던 고장의 목가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풍경화, 그리고 담배를 감싸는 은지에 스케치(드로잉)를 한 은지화,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에 그린 작품들까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에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3.
이 책에는 작품의 모범 답안이 있다. 그렇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느낀 것을 써보려 한다. 다음에 이중섭 화가와 관련된 작품을 다시 만났을 때를 위해서.
107. 이중섭이 그리는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특유의 간단한 윤곽선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그리고, 많지 않은 색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이중섭의 군동화는 인기가 꽤 높다. 어쩌면 우리 역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이중섭이 그린 아이들은 즐거움, 행복, 기쁨 등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하다.
이중섭 화가가 그린 군동화의 특징은 작가가 소개하는 그대로다. 대표적으로 <서귀포 환상>이라는 작품이 그렇다.
나는 이 작품의 밝음에서 이중섭 화가의 더 큰 쓸쓸함을 감지한다. 배고프고 추운 날의 추억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였었던 제주도에서의 1년 남짓한 시간. 그림에 담긴 찰나의 행복을 다른 시간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이중섭 화가는 작금의 힘든 현실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중섭 화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이러한 밝음을 과시하듯이 꺼내놓음으로써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희망을 채우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행복한 사진들처럼 말이다.
4.
이중섭 화가가 그린 소들의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는 그의 자화상을 옮겨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144. 이중섭에게 소는 가장 오랫동안 그렸던 소재로, 오산학교 시절부터 소를 그려왔다. 소를 오랫동안 그린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첫째로는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기 위한 소재로 소를 사용했다는 견해다. 일본 유학시절 당시 여자 친구였던 마사코에게 자신이 그린 것은 조선의 소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와 관련된 그림이나 연극이 공공연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중섭이 소로 한국의 민족성을 드러낸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한국의 화공이므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서 한국을 재표하는 동물로 소를 화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이중섭이 그린 소는 불알을 강조한 수소라는 점에서 화가 자신의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걸으며 그림을 그린다고 쓴다. 조카 이영진이 회상한 서귀포 단칸방 벽에 있던 시 <소의 말>에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면서, "맑에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라 쓰고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희망을 갖고자 하는 이중섭의 심경을 담았다는 것이다.
146. 특이한 점은 소만을 단독으로 그린 소 그림에서 유독 거친 붓질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군동화나 소가 아이들이나 가족과 함께 있는 그림에서는 둥근 윤곽선으로 형태를 그리고 화면도 밝은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히자만 소가 단독으로 그려진 그림에서는 유독 매우 화가 나 있는 듯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어도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우수한 작품을 남긴다면 잃어버린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이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린 소의 모습은 이처럼 거칠었지만 위풍당당한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러나 곧이어 소개하는 그림은 이중섭 화가의 자아와 그의 굳건한 믿음을 방해하려는 무언가의 싸움을 의미하듯 두 마리의 소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을 두고 허나영 작가는 예술성만 쫓고 싶은 이상적 자아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자아의 싸움으로 해석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궁핍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창작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뜻하는 흰 소와 이런 마음가짐으로 온 종일 창작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도무지 진전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뜻하는 푸른 소의 싸움이 아닌까 싶었다. 실제로 그가 그린 작품들은 팔리긴 했지만 제 값을 받지도 못하거나 돈을 떼이기가 부지기수였고, 그나마 벌어들인 돈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느라 탕진해버렸으니 말이다.
151. 이중섭에게 소는 바로 자신이다. 동시에 자신이 '한국의 화공'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듯 한국의 소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어떠한 소재보다 황소의 움직임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더 자세하게 표현했다. 이는 이중섭이 얼마나 소와 하나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머릿속으로 익히고 가슴속에 새겨 손을 통해 표현되는 경지를 넘어 자신이 울 때 함께 울고, 괴로워할 때 함께 소리쳐주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그린 동일한 배경의 황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노쇠함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이 그렸지만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 어쩌면 이중섭 화가의 말년의 비극을 예고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