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있는 <새벽의
약속>에는
절대적이며 위대한
'신'이 등장한다.
이 신은
인류를 전쟁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신들. 어리석음의
신 '토토슈' 와 절대진리의 신 '메즈자브카'. 그리고 편견과 증오의 신 '필로슈'를 혼자서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신이었다.
이토록
위대한 신이
로맹 가리를 탄생시켰다. 로맹
가리는
유대인이면서
러시아의 빈민으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상태로 태어났다. 신은
갓 태어난
로맹
가리를 품에
안고, 이상적인 국가. 프랑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를 길러냈다.
로맹
가리의 재능을 믿음으로 살펴주었으며.
그가 위대한
작가와 군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시련에 맞서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13.
나는 팔로 OOO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OOO를
위해 내가 벌이려고 하는 모든 투쟁들을 , 내가 내 인생의 새벽에 나 자신과 맺은 약속을 생각하였다. OOO
말이 다 옳았던 것이 되게끔 만들리라. OOO의
희생에 의미를 주리라, 저들과 당당히 세계의 소유권을 두고 겨루어 이긴 다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는 약속을. 나는 걸음마를 할 때부터 저들의
권능과 잔인함을 알아보도록 너무도 단단히 배웠던 것이다.
로맹
가리는 인생의
어느 새벽에
한 약속을 평생
지키겠다고, 평생동안
신의
말씀을 따르겠노라 맹세한다.
왜냐하면, 신이
자신의 곁에 머무른다면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무사히 비껴나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정체모를 확신이긴 했지만 말이다.
46.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OOO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OOO의
승리로 보았다.
아래의
문장은 전쟁 중에 그를 찾아온 신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의 공통점은 로맹 가리의 의도대로 무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의 무의식으로부터 튀어나와 그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경고음을
알렸다.
318.
OOO는
분개하였다. OOO는
잠시도 나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OOO는
화를 내고 노발대발하고 항의하였다. 나는 OOO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OOO는
내 피의 혈구 하나하나에서 흥분하였고, 내 심장의 맥박마다 화를 내고 폭동을 일으켰으며, 나를 들볶고 무엇이든 해보라고 재촉함으로써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다.
320.
OOO의
모습은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OOO의
본성 중 가장 강한 무엇이 그때까지 내게 남아 있던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무엇을 결정적으로 눌러 이김으로써, OOO가,
광폭함과 흥분과 무절제와 공격성과 제스처와 드라마에 대한 취향 등 극단적 성격의 모든 면모들을 고스란히 발휘하며, 정말 나로 화해버렸던 것은,
그 이상하고 얼룩덜룩한 군중 속을 고독하게 헤매던 긴 시간 중 어느 때 였을 것이다.
321.
OOO는
내가 가는 어디에도 따라다녔고, OOO의
목소리는 가차 없는 조롱을 품고 내 속에서 올라왔다.
2.
159.
다른 수많은 낙오자들이 그렇게 하듯 문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점점 더 웅변적이고. 점점 더 찬란하고, 점점 더 절망적인 가명으로 뒤덮인
노트들이 책상 위에 쌓여갔고, 단숨에 과녁을 꿰뚫고 싶은, 지체없이 성화를 훔쳐내어 의기양양하게 세계를 밝히고 싶은 욕망 속에서, 나는 책들의
표지 위에서 내게는 새로운 것들인 앙투안 드 셍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폴 발레리, 말라르메, 몽테를랑, 아폴리네르 같은 이름들을
읽었다.
로맹
가리는 우여곡절 끝에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그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사르트르의 경우와는 달랐다. 사르트르처럼
운명이
저절로 그를 문학이라는
본질로
이끌지 않았다.
신은
가장
먼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재능이 그에게 없음을 확인했다. 재능이
없어서 테니스
코트 위의 광대가 된 적도 있었다. 망신을 당하는
순간에도
요술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로맹 가리는 다른
수많은 낙오자들이 그렇게 하듯 문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고백한다.
134.
마지막 공은 그의 한계 밖에 있으며 그의 모든 작품들은 그 고통스런 확인의 소산인 것이다. (...)
파우스트의
진정한 비극은 자기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비극. 그것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구매자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건, 아무도 당신이 마지막 공을 손에 널을 수 있도록 도와주러
오지 않는 것이다.
재능이
없다는 절박함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작가라는 꿈.
그것마저도 실패할 수 없었던 로맹
가리는 열심히 쓰고, 읽었다.
물론, 창조주의
기대에
부응하여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로맹
가리가 유일하게 부러웠던 점은 마지막 공을 잡을 수 없어도, 그의
재능을 사주고. 재능이 꽃피도록 기다려준 구매자가
바로 곁에 있었다.
아니. 마지막
공을
잡기까지의 그 인내와 노력을
높이 평가해준 구매자가
곁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3.
신의
가호속에서 그는 조금씩 성장한다.
로맹 가리가 재능을
발견하기 전의 이야기. 성스러운
작업에
임하고 있는 위대한 거장에 대한 추억에
대한 에피소드와
사랑을
알게 되지만 그 덕분에 인간은
어떤 것을 결정적으로 획득하거나, 또는 확고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직할 수 없음을 깨닫는. 유년
시절의
순수함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맹 가리의 성장을
보여주는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훨씬 컸다.
특히, 165페이지의 유머에
대한 고찰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신에게
무조건 의지하는 방법 외에 유머로서 현실을 넘어뜨리고, 적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상징한다.
165,
본능적으로 나는 유머라는 것을 발견해내었다.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있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
나는
기꺼이 그 무기가 내 자신을 향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 나 '자아'를 통해 그 유머가 바로 우리의 근원적 조건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의 확인이다. 완전히 유머를 잃은 내 '친구들' 중의 어떤 이들은 나의 글,
나의 말 속에서 내가 이 중요한 무기로 하여금 내 자신을 향하게 하는 것을 보고 슬퍼한다. 유식한 그들은 마조히즘과 자기 혐오에 대하여 말하며,
나아가서는 내가 가까운 사람을 이 해방 작업에 끌어들이기라도 하면, 노출증과 상스러움에 대해 말한다. (...)
사실인즉,
'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자아'를 과녁으로 삼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뛰어넘는다. 인간 조건의 덧없는 모든 육화물들을 통해 내가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 조건 자체에 대해서요, 밖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여된 상황, 뉘른베르크의 어떤 법처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 법에 대하여서 인 것이다.
남들로부터
조금씩 작품을
인정받고, 전쟁 중에도 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작가의 꿈을 계속해서
이어가던 도중.
결국, 로맹 가리는 마지막 공을 잡을 수 있도록 설계해놓은 커다란
재능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244.
나의 자아 중심주의는 사실 어찌나 대단한 것인지 나는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들의 상처 속에서 아파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짐승들, 나아가선 식물들에게까지 확산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투우장에 모여 상처
입고 피 흘리는 황소를 전율도 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아니다. 나는 그 황소다.
아울러
<유럽의 교육>과 <자기 앞의 생>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인간됨의 명예'. 이것 또한 신이 그에게 선물한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213.
내 책들이 모두 존엄성과 정의에의 호소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의 인물들이 그토록 열심히, 그토록 소리 높여 인간됨의 명예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물 두 살이 되도록 병들고 지친 늙은 여인의 노동에 의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OOO가
무척 원망스럽다.
4.
179.
OOO가 내게 기대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정의를 보지도 못한 채, 무게와 척도의 인간적 법칙을
하늘에 투영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OOO가 지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에겐 양식에의, 양풍에의, 순리에의 도전이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강도 짓이요. 경찰을 부르고 도덕과 법과 권위에 호소해도 좋을 무엇인 것 같이 생각되었다.
<새벽의
약속>에서 로맹 가리는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신과의
작별의 순간을 걱정한다.
그의 불안함은 너무나
당연했다.
왜냐하면, 로맹 가리의 신은 로맹 가리처럼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의 이름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로맹 가리는
어머니가
로맹 가리 당신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을 느꼈고, 더욱
자신의
재능을 향해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의 욕심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다.
250.
시계와 겨루는 내 경주는 절망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으며, 나의 문학은 그것을 반영하였다. 세상이 놀라서 입을 헤 벌리게 할 어떤 굉장한
꽹과리를 울리고 싶은 욕망 속에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이상으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위대해지려 하다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과장에 지고 말았다.
모두에게 내 키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발 끝으로 섬으로써, 나는 내 야망의 치수만을 보여주었다. 천재성을 보여주려 결심한 나머지, 내가 도달한
것은 재능의 결여뿐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 올바르게 노래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전쟁 중 내가 죽은 줄로 알았을 때 내 원고
중 하나를 평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로제 마르탠 뒤 가르가 '성난 양'이라고 했던 것은 옳은 말이었다. 아마도 내 투쟁의 고통스런 성격을
간파했던지, OOO는
나를 돕기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였다.
그는 또
다시 좌절하고
있었다. 세상을
진정시키고, 다스릴
수 있는 유머의
힘을
발견하고, 세상의 모든 존재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내고,
그의 소설이 지닌 '인간됨의
명예'라는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는 여전히 마지막
공을 잡으려고 성급하게 글을 썼고, 설익은 원고지를 보며 슬퍼하고
있었다.
좌절의
이유는
어머니의 남은 삶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고,
반면에 그의
역사는 이제 시작되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로맹 가리에게는 신이었던
어머니의
존재는 그의 다급함을
간파하고, 로맹 가리의 의식
안에서 독립된 존재로 자리함으로써 그를
격려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가 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