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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들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프로이트 이야기
베벌리 클락 지음, 박귀옥 옮김 / 소울메이트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즘 나를 고민케하는 화두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하여 찾아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요점은 당신에게 어떤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삶에 대한 의지와 미래에 당신이 추구할 목표를 찾아낸다면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을 당시에도 그렇지만, 최근에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잘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쉽사리 정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어떤 목표를 앞에 두고, 이 행동이 옳고 저 행동은 그릇된 것을 머리는 너무나 잘 알지만 옳은 방향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반복하고 내일부터는 안 그래야지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역설적인 문제를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그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렸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나는 이 문제를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라는 기이한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반 오소킨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결과. 돈도 잃고, 사랑도 잃는다. 그렇게 나락으로 전락한 자기 신세를 한탄한다. 만약, 신이 현재의 기억을 안고 인생을 다시 살게 해준다면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기도한다. 그런 기도 후에 정말 신이 나타나서 그의 인생을 리셋시킨다. 새로 태어났음에도 그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기억을 간직한 덕분에 그 사건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지만 막지 못하고 그는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이 이야기를 읽은 후에 나에게도 그런 성향이 작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목표로부터 자꾸만 엇나가는 인간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라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빌어와 "눈앞의 작은 이익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먼 미래를 보며 계획했던 목표가 순간 흐릿해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그렇게 굳은 다짐을 했던 이반 오소킨의 결심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라고 정리를 하긴 했지만, 어느새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이반 오소킨을 회상하며 그때 쓴 리뷰를 다시 보고 나서야 되새길 수 있는 내용이다.
2.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들>. 이 책에서도 지금의 고민과 관련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54.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과연 인간이 가진 공격성의 근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으로 성 본능 뿐만 아니라 다른 본능이 존재한다고 가정. 성본능이 새로운 삶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성질과 연관되어 있다면, 또 다른 본능은 활동적인 삶 이전에 고요한 상태로 회귀하려는 충동으로써 분해와 죽음을 유도한다고 보았다.
'죽음충동'. 프로이트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에 대한 공포로 인해 "모든 삶의 목표는 죽음이다."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150. 프로이트는 전반적으로 인간의 삶에 강한 본능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특히 성장. 새로운 삶, 발전을 이끄는 성 본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하는 성 본능과 함께 물체를 파괴하고 살아있는 것을 무생물의 상태로 되돌리는 '죽음본능'이 등장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본능을 강조했다면, 그의 사후에 정립된 정신분석의 이론들은 '대상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크게 변화했다.
153. 프로이트는 섹스에 우선하는 본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초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충동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무생물로 돌아가는 죽음의 단계에서 발견된다. (중략)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예외 없이 내부 원인에 따라 죽은 뒤 무기물로 돌아간다는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생명체의 목표는 죽음이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54. 이 주장은 죽음본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반복강박'에 대해 설명한다. 생명체는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며 발전을 멈추려는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죽음본능'이라는 개념이 어쩌면 목표로 향하는 올바른 길을 막아서는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 본능은 우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상태로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죽음본능'이라는 것이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을 전부 무화시키려는 본능이 아닐까? 인간이 점차 늙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이 죽음본능이라는 것도 늙어가는 육체에 맞게 인간을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활동성을 점차 약화시키는 개념이 아닐까?
결국, 의미를 찾아가는 능동적인 활동을 통하여 쾌락을 느끼는 본능과 발전을 멈추고 아주 평온한 상태로 머물다가 죽음으로 돌아가려는 죽음본능. 이 두 가지 본능이 우리 안에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죽음본능이라는 것이 좀 더 강력하고 말이다. "누군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었는데, 자신의 안에 이미 죽음의 본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괴물을 만난 느낌이다.
3.
이 괴물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다. <왜 살찐 사람은 빚을 지는가?>에서도 할인율의 문제를 제시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과 편안함에 취해 미래의 목표에 소홀해진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미래의 목표와 연관되는 목표로 설정하면 될 일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론에 다시금 발길이 닿는다.
박웅현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라>에서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몰입>의 부제는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이 말의 뜻은 삶의 의미와 목표를 항상 자신의 가까이에 두고, 죽음본능이 당신을 유혹하기 전에 먼저 쾌락본능에 취해있는 상태를 유지하라고 조언해주는 듯하다. 이 괴물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제 죽음본능을 멀리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34. 그는 삶의 본질에 대한 고통스러운 진실을 깨달았다. 삶은 절대 성장과 발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파괴와 상실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222. 삶이 어려운 이유는 과거에 형성된 두려움과 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판단력을 상실한 채 과거에 갇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꿈을 자유롭게 다루고 현재와 미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다면 우리의 삶은 창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
235. 인간의 삶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 개인이 어느 정도 삶을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궁극적으로 스토아학자들은 정신을 개인이 장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했다. 그 결과 개인에게 일어난 일 자체보다는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236. 개인이 만족스럽게 살아가려면 자신이 속해 있는 우주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소망과 삶에 대한 태도를 맞춰나가야 한다. 세계가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인간의 소망에 맞춰 압박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실망과 불만족을 야기할 뿐이다.
"인간이 행복해야 한다는 목표는 신의 '창조'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