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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1.
346. 요컨대 인간 세상에 대해 게이타로가 가진 최근의 지식과 감정은 모조리 고막의 작용에서 온 것이다. 모리모토에서 시작하여 마쓰모토로 끝나는 몇 자리의 긴 이야기는 처음에는 넓고 얕게 게이타로를 움직이면서 점차 깊고 좁게 그를 움직이기에 이르더니 갑작스럽게 끝났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결국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게이타로에게는 그것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고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이다.
소세키는 <춘분 지나고까지>의 주인공. 게이타로의 경험을 빌어 타자의 인생 안에 들어갈 수 없었음을 이야기했지만. 완벽함을 갈구하는 인간의 형상화는 멈추지 않았다. 이 작업은 <행인>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이치로에게로 옮겨간다. 소세키의 분신. 이치로는 말한다.
138. "어떤 서간에서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영혼, 이른바 정신(spirit)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해도 내게는 연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치로는 학자였다. 그것도 아주 비상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는 서재에 파묻혀 열심히 이 세상의 구동원리에 대해서 공부했다. 날이 갈수록 그 깊이는 깊어갔고, 그에 따라서 자신감은 높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의 가장 옆에 있는 부인의 마음을 얻진 못했다. 오히려 그는 부인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기분만 들었다. 이치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는데. 그녀의 부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으로부터도 조금씩 멀어지고, 고립되고, 겉도는 느낌인 것이다.
그것의 원인은 간단했다. 부모가 점지해 놓은 인연을 아무 의심없이 따랐기 때문이었다. 애정이 존재하지 않은 자연스럽지 않은 결혼. 이것이 그가 느끼는 불안과 분리의 원초적인 원인이었다. (이것. 즉 애정없는 결혼에 대한 비판정신은 곳곳에 존재하는데 사실 이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261. "지로, 세상은 왜 중요한 남편의 이름은 잊어먹고,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만 기억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 인간이 만든 부부라는 관계보다는 사실 자연이 만들어낸 연애가 더 신성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좁은 사회가 만들어낸 답답한 도덕을 벗어버리고 커다란 자연의 법칙을 찬미하는 목소리만이 우리 귀를 자극하도록 남겨진 게 아닐까? 물론 그 당시에는 다들 도덕에 가세하지. 두 사람 같은 관계를 부정하다며 비난하고. 하지만 그건 그 사정이 생긴 순간을 치유하기 위한 도덕에 쫓긴 이를테면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것이고, 뒤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창천과 백일, 즉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야. 어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중략) 지로, 그러니까 도덕에 가세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승리자인 건 틀림없지만 영원한 패배자야. 자연에 따르는 사람은 일시적 패배자지만 영원한 승리자고..."
263. " 스모 기술을 배워도 사실 힘이 없는 사람은 안 되잖아. 그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확실한 실력만 있으면 그런 사람이 꼭 이기지. 이기는 게 당연해. 스모의 사십팔수는 인간의 잔재주 에 불과하거든. 힘은 자연이 준 선물이지..."
이치로에 비해 그의 동생 지로는 아버지의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성격을 물려받아서 사회성이 뛰어났다. 이치로는 세상이 요구하는 정신은 이치로 자신처럼 소심하고 내향적인 모습이 아니라 소탈하고 외향적인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로는 지로와 부인에 대한 불쾌한 상상을 한 것이다. 부인 나오에게 이치로 자신은 도덕과 형식이고, 지로는 자연이자 힘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나오는 그의 부인이지만, 나오에 대한 묘사를 볼 때, 그녀는 세계의 상징하는 존재의 축양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302. 그녀에게는 어쩌면 초월해야 할 담도 벽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자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또 그녀가 모든 것을 가슴속에 넣어두고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야무진 사람처럼 비쳤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는 흔해빠진 야무진 사람의 단계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그 차분함, 품위, 과묵함, 누가 평해도 그녀는 너무 야무진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놀랄 만큼 뻔뻔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떤 순간 그녀는 인내의 화신처럼 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인내에는 고통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고상함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눈쌀을 찌푸리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쓰러져 우는 대신 단정히 앉았다. 마치 그렇게 앉아 있는 자리 밑에서 자신의 발이 썩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요컨대 그녀의 인내는 인내라는 의미를 넘어서 거의 천성에 가까운 것이었다.
2.
이치로의 동생이자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체. 동생 지로는 H에게 형과의 여행에 동행해줄 것을 청하면서 형의 심리 상태를 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H는 동생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치로에 관한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이것은 엄연히 가족과 이치로의 원만한 화합을 위한 순수한 의도였는데. 이치로의 깊은 고뇌를 읽을 수 있다. H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는 논쟁은 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363.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목적이 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네."
366. " 이렇게 수염을 기르거나 양복을 입거나 시가를 물거나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못 어엿한 신사 같지만, 실제로 내 마음은 묵을 곳 없는 거지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헤매고 있네. 24시간 내내 불안에 쫓기고 있지. 한심할 정도로 진정되지 않네. 끝내는 세상에서 나만큼 수양이 안 된 딱하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런 때에 전차 같은 데서 문득 눈을 들어 건너편을 보면 자못 근심 없는 듯한 얼굴을 맞딱뜨리는 일이 있네. 내 시선이 일단 사념이 없는 멍한 얼굴에 쏟아진 순간 나는 절실하게 기쁨이라는 자극을 온몸에 받는다네. 내 마음은 가뭄에 타들어가는 벼이삭이 단비를 만난 듯 되살아나지. 동시에 그 얼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완전히 태연자약한 그 얼굴이 무척 고상해 보인다네. 눈이 처지거나 코가 납작하거나 얼굴 생김새가 어떻든 간에 굉장히 고상하게 보이는 거지. 나는 거의 종교심에 가까운 경건한 마음으로 그 얼굴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어지네. 자연에 대한 나의 태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네. 예전처럼 그저 아름다우니까 즐긴다는 마음은 지금의 내게는 생길 여유가 없네. (중략) 자네도 하루 중 손해도 이득도 필요하지 않는,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저 자연 그대로의 마음을 자연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일이 한두 번은 있겠지? 내가 고귀하다는 건 그때의 자네를 말하는 거네. 그때에 한해서야."
370. "인력거꾼이든 밀꾼이든 도둑놈이든 내가 고맙게 여기는 찰나의 얼굴이 곧 신 아닌가?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내가 숭고하다고 느끼는 순간의 자연이 곧 신 아닌가? 그 밖에 어떤 신이 있겠나?"
384. H : "왜 산 쪽으로 걸어가지 않나? 자넨 산을 불러들이는 사람이네. 불러들이고 오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지.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사람이네. 그리고 산을 나쁘게 비판하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지. 왜 산 쪽으로 걸어갈 생각은 안 하나?"
"혹시 그쪽이 이쪽으로 와야 할 의무가 있다면 어떤가?" 형님이 말했네.
H : "그쪽에 의무가 있든 말든 이쪽에 필요가 있다면 이쪽이 가면 되는 일 아닌가?" 내가 대답했네.
"의무가 없는 곳에 필요가 있을 리 없지." 형님이 주장했네.
H : "그럼 행복을 위해 가는 거지. 필요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네." 내가 다시 대답했네
내 말의 의미를 형님은 잘 알고 있었지. 하지만 시비, 선악, 미추의 구별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키워온 높은 기준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형님은 그걸 선뜻 내던지고 행복을 구할 마음이 들지 않는 거네. 오히려 거기에 매달려 행복을 얻으려고 초조해하는 거지. 그리고 그 모순도 형님은 잘 알고 있네.
H : "자신을 생활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깨끗이 내던지면 좀 더 편해질거네."
386. 나(H) : "세상일이 자기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면 거기에 자신 이외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 그리고 그 의지는 자네의 의지보다 훨씬 위대하지 않은가?"
"위대할지도 모르지, 내가 지니까. 하지만 대체로 내 의지보다 선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네. 나는 그들에게 질 리가 없을 텐데도 지네. 그러니 화가 나는 걸세."
(중략) 나(H) : " 모든 걸 위임하는 거지. 아무쪼록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면서. 이보게, 인력거를 타면 인력거꾼이 떨어뜨리지 않게 잘 끌어주겠지 하고 안심하며 그 안에서 잘 수는 없나?"
393. 형님은 신이든 부처든 뭐든 자신 이외에 권위 있는 것을 건립하는 걸 싫어하네. 그렇다고 니체처럼 자아를 주장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네. "신은 자기다"라고 형님은 말하네. 형님이 이렇게 강력하게 단안을 내리는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 뒤에서 들으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형님은 이상하게 여겨지더라도 어쩔 수 없을 만큼 격렬한 어투를 사용하네.
(중략)
형님은, 순수하게 마음의 안정을 얻은 사람은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네. 한번 그 경지에 들어가면 우주도 만물도, 모든 대상이라는 것이 모조리 없어지고 오로지 자신만 존재하게 된다고 했네. 그리고 그때의 자신은 있는지 없는지 분간할 수 없는 거라고 하네. 위대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미천한 것 같기도 하다고 하네, 뭐라고도 명명할 수 없는 거라고 하네. 즉 절대라는 거지. 그리고 그 절대를 경험하는 사람이 갑자기 경종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가 곧 자신이라는 거네. 말을 바꿔 같은 의미를 표현하자면 절대가 곧 상대가 된다는 거지. 따라서 자기 이외의 물건을 두고 남을 만들어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지고 또 괴로움을 당할 염려도 생기지 않는다는 거네.
긴 편지글의 많은 부분을 옮겨 썼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치로 형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깊게 파고 들어가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젖는 것이 일상인 슬픈 사람이다.
사실 그가 공부한 내용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364.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오네. 나아가가만 하고 그칠 줄 모르는 과학은 일찍이 우리에게 그치는 것을 허락해준 적이 없지."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지식인의 올바른 책무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형님은 자신의 절대성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을 항상 의식한다.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것이다. 누가 짊어지라고 말하지도 않은 것들을 말이다. 그 무게를 항상 안고 있기 때문에 그는 편안함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H는 당신의 의지만으로는 이 세계를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가끔씩은 다른 방향의 의지를 믿고, 내려놓기를 권하지만, 형님은 자신의 의지가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산을 보고 계속 이쪽으로 오라고 소리치는 행위이며, H가 권하는 것은 필요하다면 스스로 산으로 향해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형님도 자신의 주장이 억지스럽고, 또 크게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향엄의 일화처럼 한 순간의 번쩍이는 깨달음으로써 무게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희망도 항상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고립감이 그를 점점 안으로만 파고들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H의 설득은 실패한다. H가 가족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 달라는 주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