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험과 업에 대한 목마름
(첫
문장)
20.
게이타로는 얼마 전부터 해온 별 성과도 없는 취직 활동과 그 분주함이 다소 지겨워졌다. 원래부터 튼튼하게 생겨먹은 몸이라 그저 뛰어다니는
노력이라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거라는 건 자신도 알고 있지만, 생각한 일이 뭔가에 걸려 꼼짝 않고 버티고 있거나 또는 붙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쓰윽 빠져나가는 실패가 거듭되다 보니 몸보다는 머리가 점차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이
소설의 첫 문단은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세상으로
나갈 출구를 찾아내 그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함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절하고,
그것이 반복되어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게이타로의 처지를 설명하는 매우 효과적인 문단이다.
이런
게이타로의 이웃 중에는 같은 곳에서 하숙하면서
자주
마주치게 된 모리모토라는
뜨내기가 있는데. 한눈에
봐도 그의 말은 어딘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보이는 게이타로의 심리- 26. 모리모토의 모든 과거는 게이타로가 보기에 일종의 로맨스 냄새가 혜성의 꼬리처럼 뿌옇게
뒤덮인 채 괴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는 어쩌면 경험이 부족한 게이타로를
잘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 덧붙여 점쟁이를 만나서 나온 괴이한 점괘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까지도
말이다.
게이타로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막연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타로는 29. 세상으로
나갈 출구를 다리가
뻣뻣해지도록 찾아다니고 있다.는
소세키의 설명처럼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시도했다. 109. 남의 개로 부려지는 불명예와 부도덕함을
느끼고 겨드랑이에서는 괴로운 진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어야 했다.
갈증과
막연함은 이런
거라면
괜찮겠지 싶은 생각을 정당화시켰다.
친구인 스나기로부터 소개받은
다구치의
제안. 누군가를
감시하라는 엉뚱한
탐정놀음을 수락한다. 게이치로는 누군가의
뒤를 열심히 밟았다. 그
결과는 너무나 형편없었고, 게이치로의
존재가 그 결과의 상관없음과 동일시되어 아무런
'의미가 없음' 으로
수렴한다. 이러한
상황을 현실로
건너와서 생각하기에는
고용시장에서의 청년의 위치가. 피고용인으로서의 힘없는
을의 관계을
상징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을을 나약하게 조종하는 것은
갑의 의심이 큰 몫을 하고 말이다.
188.
원래 성품은 좋은 사람이라네.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다만 여러 해 동안 사업의 성공만 안중에 두고 그렇게 세상과 싸워온 사람이라 사람을
보는 눈이 묘하게 치우쳐 이놈은 도움이 될까, 이놈은 안심하고 쓸 수 있을까, 뭐 이런 것만 생각하는 거지.
2.
정략결혼. 자격지심. 그리고
질투
게이타로가
감시한 사람은 그와 그의 고용인에게
어떤 만족스러운 결과를 제공하진 않았다. 그저, 게이타로가 도움이 될지 어떨지 대충 탐색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설로 볼 때는 예고에
없었던 어떤
여인을 소설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했고, 그녀를 축으로 하여 게이치로에서 스나기로 소설의 이야기가 옮겨지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제
와서
말하건대. 이 소설은 크게 3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3인은 각기 다른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을 통해 사회를 읽을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첫 번째의
중심부는 게이타로의 갈증이었고, 바통을 넘겨받은 두번째
중심부는 게이타로를 다구치에게 소개해준 스나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달라지는
것은 삼인칭 화자가 아니라
스나기가 일인칭
서술자가 되는 것이다.
스나기는
직업의 문제도 고민거리였지만, 고등유민(176)으로 자신을 포장했기에 그 압박감이 게이타로보다는 덜했다.
그것보다
그를 옭아매는 문제는 애정과
결혼에 얽힌 것이었다.
스나기와
그녀의 이종사촌 지요코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스나기와 지요코는 어렸을 때부터 정략적으로 결혼하기로 말이 오간 사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스나기의 가문이 지요코의 가문보다 위세가 강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스나기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의 유산을 바탕으로 어머니와
함께 고등유민을 자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에 비해 지요코의 가문은 다구치의 사업수완으로 인하여 훨씬 부유하게 되었다.
과거와는 반대로 벌어진 격차. 그것을 보면서 스나기는 답답함을 느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생각하는 재주밖에 없었다. 그는
다분히 철학적인 인간(245)이었기 때문이다.
기울어지는
가문을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쩌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과거에 부모들끼리 말이 오갔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딱히 무엇을 내세울 수 없는 자신의
현재 모습. 이것이 그들 자격지심에 휩싸이게 했던 것이다.
243.
지요코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자다. 그리고 나는 두려움만을 알아버린 남자다. (중략) 내가 만약 지요코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아내의 눈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인정의 빛도, 사랑의 빛도, 혹은 싶은 사모의 빛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 그 빛 때문에 꼼짝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것과 같은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빛나는 것을 그녀에게 답례로 돌려주기에는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나는 너무나 모자라다.
그녀를
아끼는 마음은 컸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런데 불안한
심리의 스나기. 그와
정반대로 건장하고 활달한 성향의 다카기.
그리고 지요코. 이 세 사람이 마주했을
때, 그 아끼는 마음이 질투가 되어버렸고, 그것을 두 사람이 모두 느낀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져버렸다.
305.
내가 미적지근하고 또 융통성이 없는 남자로서 지요코에세 일종의 경멸을 받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말한 대로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의 교제는 서로
그것을 묵인한 상태에서의 친밀한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다행히도 지요코가 늘 경외하는 점을 딱 하나 지니고 있었다. 과묵함이다.
(중략) 그런데 우연히 다카기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나는 금세 이 존경을 영원히 지요코로부터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
혈통. 정략결혼에
얽힌 힘겨루기.
만들어진 자격지심.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요코와 스나기 사이에 갑자기 다카기가 들어와서 그들이 유지하고 있던 최소한의 균형마저도
무너뜨렸다. 이 균열을 제공한 다카기는 어디서 나타난 존재일까? 이 소설에서는 하나의
불안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혈통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나는
스나기에게 질투심을 유발하여 그를
무너뜨린 건
다구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방식은?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게이타로에게
감시원 역할을 맡긴 것과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인재인 다카기에게
지요코의 남자
친구의
후보정도 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312.
이치조는
세상과 접촉할 때마다 안으로 몸을 사리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이 차례로 회전하여 점점 깊고 촘촘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어디까지 파고들어도 한계를 모르는 똑같은 작용이 연속되어 그를 괴롭힌다. 끝내는 어떻게든 그 내면의 활동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랄 만큼
괴로워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저주처럼 끌려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노력 때문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혼자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안게 된다. 그리하여 미치광이처럼 지쳐간다. 이것이 이치조에게는 생명의 근간에 가로놓인 일대
불행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스나기 가문에 얽힌 진실이 공개되고, 스나기는 자신의 손을 떠난 여인을 잊고, 무너진 자존감을 치유하기
위해 타지역으로 방랑한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스나기의
외삼촌인 마쓰모토가 밝히는 스나기의 성격이자. 약점이다.
성공을
위해 사람을 가려온 다구치의 눈으로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구치는 스나기에게 자극을 던진 것이다. 자격지심을 일으킬만한 자극을... 질투에 관한 그것을 말이다.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 그를 무너뜨리면 정략결혼에서도 해방될 수 있고, 그 말은 더는 그 혈통과 얽힐 일이 없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327.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다구치 자형에게 그 남자는 어땠느냐고 물었다. 다구치 자형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다카기는 처음부터 후보자로 나선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상당한 신분과 교육이 있고 독신 남자라면 누구든지 후보자가 될 권리는 있으니까 후보자가 아니라고는 결코 단언할 수
없다고도 했다.
4.
목마름의 끝에서 알게 된 어느
가족사에서의
해방과
그리고 예방
344.
게이타로의
모험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야기로 끝났다. 그가 알고자 하는 세상은 처음에는 멀리 보였다. 요즘은 눈앞에 보인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마침내 그
안으로 들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문외한 비슷했다. 그의 역할은 끊임없이 수화기를 귀에 대고 '세상'을 듣는 일종의 탐방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금
게이타로로 돌아온 <춘분 지나고까지>. 이 소설은 제목에 그다지 중요한 의미가 없었던 걸까? 마지막에서야 언급해본다. 그의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모리모토에서 시작되어 처음에 시작한 탐정놀이까지는 그다지 영양가가 없었지만, 그 이후에 알게 되는
스나기와 마쓰모토와 다구치 가문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게이타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346.
요컨대 인간 세상에 대해 게이타로가 가진 최근의 지식과 감정은 모조리 고막의 작용에서 온 것이다. 모리모토에서 시작하여 마쓰모토로 끝나는 몇
자리의 긴 이야기는 처음에는 넓고 얕게 게이타로를 움직이면서 점차 깊고 좁게 그를 움직이기에 이르더니 갑작스럽게 끝났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결국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게이타로에게는 그것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고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완벽히 들어갈 수 없는 것. 이것은 분명 당연한 일이다. 부족해야 마땅하다. 근데 굳이 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을까? 스나기에게 닥친
비극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들음으로써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