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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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의 아버지는 뷰파인더를 통해 진실을 파헤쳤다. 120. 그것을 자신의 기억이 아닌 세상의 기억에 아로새겼다. 그녀의 아버지의 삶은 없어지는 것을 다루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을 막는 삶이었다. 아버지는 생물학적인 아버지이기 이전에 그녀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사진, 뷰파인더, 진실, 정직)을 가르쳐 준 절대적인 스승으로서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메이블 이야기를> 펼쳤을 때, 정직한 아버지는 그녀의 곁을 이미 떠난 뒤였다. 그는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 되었고, 책을 읽는 나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만 그녀의 아버지를 잠깐 동안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메이블 이야기>의 곳곳에서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고,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이것이 그녀의 상실감이 극에 달한 이유였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빈 공간이 너무나 컸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부재를 메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온화함이 있었던 어린 시절과 아버지를 잃은 차가운 현재를 이어주는 아주 특이한 접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참매였다. 그녀는 참매 사육과 참매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었고, 아버지를 기억하며 또 다시 그것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라는 기억과 상실이라는 연장선에서 그녀는 메이블이라는 실존에서의 참매와 만나게 된다.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이런 불안이 그녀의 정신 일부를 잠시 밖으로 빠져나가게 했고, 그 빈 공간을 참매에 대한 집착으로 채워야 했다.

참매는 그저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억이 묻어있는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참매와 참매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는 옳았어야 했다. 따라서 T.H. 화이트라는 인물이 쓴 매와 관련된 실패의 기록을 읽으며, 그것은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의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류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H is for Hawk. 알파벳 H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서 그녀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Hawk. 단 하나였다. 이로써 참매는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고,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빠져들어야 할 하나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바로 Hawk.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그것을 계발하는 한 인간의 정신을 다룬 작품이 아니었다.

 

257. 메이블은 내 상처를 태워 없애는 불꽃. 매 안에는 후회나 깊은 슬픔이 있을 수 없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매는 오직 현재에 살았고, 그게 나의 피난처였다. 나는 매의 줄무늬 있는 날개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것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매 안에 죽음이라는 퍼즐이 붙잡혀 있다는 것을 그 안에 나 또한 붙잡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2.

 

281. 마음을, 기술을, 영혼을 하나의 일에 매 훈련에, 경마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카드 게임에서 숫자를 맞추는 데 쏟고 난 다음 그것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 버린다. 그게 함정이다. 일단 주사위가 던져지고 말이 달리고, 매가 주먹에서 떠나면 자신을 그저 운에 맡길 뿐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해 온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 따를 거라며 달랜다. 매는 사냥감을 잡고, 카드는 패가 딱 맞고, 말은 1등으로 들어올거라고. 이 작은 망설임이라는 공간에 있기가 어색하다. 세상의 자비에 완전히 맡겨진 안전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쾌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헤맨다. 그리고 운명의 작은 가망성들을 향해, 세상이 나가는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것은 미끼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와 슬픔으로 무력해지면 마약, 도박, 술에 빠진다. 망가진 영혼의 목덜미를 뒤고 개처럼 흔들어 대는 중독에 빠진다. 메이블과 나갔던 그날 나는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뒤집어보면, 그녀는 자신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매의 허락도 없이 매를 그녀의 삶 한 가운데 끌어들였고, 메이블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특별한 존재로 정의했다. 그녀는 혼자 사랑에 빠졌고 중독되었다. 매는 인간과 감정의 교류를 할 수가 없는 동물인데.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매를 반려동물로 취급하였다. 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메이블 이야기>는 상실에서 매에 대한 집착을 통한 현실 도피. 그로 인하여 그녀의 의식은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는 대신 세상과 거리를 두고, 눈앞의 적을 제거하는 매의 습성을 닮아가는 자신. 토끼의 목을 비트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H is for Hawk. 라는 공식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H isn’t for Hawk. 인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그녀는 상실의 빈 곳을 채우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이 깨졌음을 인식하게 된다. 자신의 행위가 중독이었음을 깨우친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고, 메이블과 일체감을 느꼈던 기억에서 벗어나 다시금 타자로 분리된다.

 

428. 나는 매를 내 세계에 데려왔고 그러다가 내가 매의 세계에 사는 체 했다.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분리된 채 행복하게 각각의 삶을 공유한다.

 

<메이블 이야기>는 안식처로 삼고 있던 울타리가 무너지면 뛰어난 두뇌를 소유한 인간이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혼란스러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임을 말한다. 어쩌면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중독에 쉽게 빠질 수 있고,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중독이라는 개념이 술과 도박과 마약과 게임 같은 대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친화적인 취미. 매를 기르는 것. 이것은 분명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생물은 자연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인간은 또 인간의 삶을 살아야단다 것을 인정해야만 애완 동물에 대한 지나친 애정 투사라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아름다운 문장과 묘사를 위해 글의 중심이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 편이고, 또 이미지화가 어려워서 읽는 것 자체는 버거운 편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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