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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1. 씨앗 (seed)
한 작가의 독서 인생을 갈무리해놓은 이 책은 읽는 행위를 갈망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을 도울 책이라고 가장 처음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을 설명할 첫 번째 키워드를 씨앗으로 정했다.
<읽는 인간>에서 말하는 읽는 행위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독서. 그리고 재미만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는 진실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넘쳐흐르는 독서이며, 그 과정은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러있다.
2. HOW TO READ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읽는 인간>을 읽으면 오에 겐자부로가 추천하는 독서법을 알 수 있다. 짧게, 겐자부로는 어떤 작품이 자신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그 작품은 누군가 추천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Re-Reading는 기본 조건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Infinite-Reading을 권한다.
만약, 겐자부로의 청춘에 깊은 울림을 일으킨 작가. 예를 들면, 아르튀르 랭보, T,S. 엘리엇,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윌리엄 블레이크, 에드거 앨런 포, 단테 알리기에리, 맬컴 라우리. 마크 트웨인,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외국 작가라면, 그는 번역서를 먼저 읽고, 그 번역서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치고, 그다음. 작품의 원서를 찾아 밑줄 그은 부분이 실제로 어떤 단어로 쓰였는지. 직접 해독하는 방식을 권한다.
이러한 방식을 권하는 이유는 작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번역서보다는 원서의 단어를 직접 살펴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겐자부로'는 3년 단위로 하나의 분야나 어떤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방법을 권한다.
책을 읽어온 나의 경험에 따르면. 난해한 작가의 글을 한 번에 바로 읽어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겐자부로'는 해당 작품을 읽기 전에 그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참고할 만한 개론서. 그리고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고 하면, 기존에 존재하는 '단테'의 <신곡>을 다룬 서적들을 충분히 읽어보고, 공부할 작가를 충분히 이해한 후, 작품의 핵심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책을 쓸 당시의 작가의 심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신곡>을 읽을 때, 밑줄 친 구절. 가슴에 다가온 문장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보다 충실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가르침이었다.
3. 수상한 이인조
<읽는 인간> 안에서 뿐 아니라,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수상한 이인조'가 아닐까 싶다. 겐자부로에게 있어서 거의 최초의 단짝인 이타미 주조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그는 훗날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게 되고, 그의 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이인조의 상호작용. 오에 겐자부로의 삶은 독서라는 행위를 통한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에서의 이인조로. 그리고 대학의 공부라는 행위를 통해 교수와 제자라는 이인조의 관계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성장한다.
179. 하나의 얼굴인 동시에 수많은 얼굴이지요. 자신이 지금껏 만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동트기 전 거리에서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여러 사람과 묻고 답하기 시작하죠.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듯이 소리를 내고, 이에 역시 자기 목소리로 대답하는건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확실히는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만났던 소중한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집합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입니다.
이 문단을 읽는 순간. 나의 내면에 묻혀있었던 헤르만 헤세가 강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세상이란 기존의 것. 안주하고 있는 당신의 둥지를 파괴함으로써 성립한다고 헤세형님이 말씀하셨다. 아프락사스. 부모의 안락한 세계를 부숴버린 프란츠. 프란츠의 통제를 받는 세계를 부숴버린 데미안, 통제불능의 방종을 부숴버린 베아트리체, 자기 안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를 부숴버린 에바 부인. 모두가 아프락사스에 기인한 공간이다. <데미안 리뷰 중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성장 과정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읽었던 과정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싱클레어가 삶의 고비에서 만났던 인물들. 그 인물들과의 이인조적인 융화를 통하여 싱클레어는 성장했던 것처럼 오에 겐자부로라는 거대한 작가는 그의 곁에 누군가와 함께 성장을 거듭한다.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프란츠나 베아트리체. 그리고 에바 부인 같은 인물이 싱클레어의 내면에서 저절로 탄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읽으며, 그것은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인조의 의미로서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데미안>을 썼을 시기의 헤세. 거목으로 성장한 헤르만 헤세의 자의식이 싱클레어의 주변을 탄생시켰을 수도 있다.)
어쨌든, 위에서 열거한 작가들은 어느 한 시기에 동시다발로 만난 작가들이 아니라. 싱클레어를 찾아온 인물들처럼, 그의 생에서 어떤 점에서 집중적으로 만나서 이인조의 관계를 형성한 작가고, 그런 상호작용은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일본 작가들의 문체에서 찾을 수 없었던 닮고 싶었던 문체. 강인하고 부드러운 문체는 서양 작가의 문장을 직접 읽음으로써 발견할 수 있음을 그는 <읽는 인간>을 통해서 고백하였고, 그 문체를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겐자부로는 부단히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4. 오에 겐자부로
우리가 오에 겐자부로를 만나서 이인조의 성장이 만들어낸 산물을 직접 확인하고, 그것을 벗 삼아 독자 개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려면, 이 책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SEED. 즉, 씨앗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읽는 인간>을 읽고, 이 책을 통해 삶이라는 무게를 마주하고, 그 무게를 오에 겐자부로는 어떻게 말하는가 알고 싶다면, 겐자부로가 상호작용하며 탄생시킨 작품을 독자인 우리가 직접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읽는 인간>의 오에 겐자부로를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